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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들에 의한, 나

오늘도 눈을 떠 달력을 본다. 어제 저녁에 그어놓은 빨간 선, 한 칸 더 진행됐다. 작은 성취감이 가슴을 간질인다. 누가 봐도 별 거 아닌 일이겠지만, 나에겐 소중한 의식이다.


출근길, 차 안에서 라디오를 튼다. 어제보다 한 곡 더 들을 수 있게 됐다. 교통체증 때문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5분 일찍 나서서 인 걸까. 그것도 모르겠다. 그냥 좋다.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본다. 목에 걸린 넥타이 매듭이 어제보단 반듯하다. 언제부턴가 넥타이 매는 게 숙제가 아니라 즐거움이 됐다. 이런 것도 성장이라 할 수 있을까?


점심시간, 복사기 앞에 선다. 종이 걸림 없이 깔끔하게 복사본이 나온다. 작은 환호성을 내지르려다 참는다. 옆자리 동료가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니까.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는다. 영어 단어장을 펼친다. 어제보다 두 개 더 외웠다. 머릿속에 새겨지는 알파벳들, 그게 내 뇌의 주름을 하나 더 만드는 것 같다.


저녁 식사 후 설거지를 한다. 그릇을 닦는 손놀림이 조금 더 능숙해졌다. 언제부턴가 설거지가 짐이 아니라 명상의 시간이 됐다. 물 흐르는 소리에 잡념도 함께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다.


잠들기 전, 오늘 하루를 되돌아본다. 특별한 건 없었다. 하지만 어제와 똑같지도 않았다. 미세하게, 아주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 변화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이런 날들이 모여 어떤 미래를 만들어낼까. 큰 꿈을 꾸지 않는다. 그저 오늘보다 내일 조금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랄 뿐이다. 그게 쌓여 언젠가 내가 꿈꾸는 모습에 가까워지겠지.


잠들며 생각한다. 내일은 또 어떤 작은 성장을 할 수 있을까. 기대감에 가슴이 설렌다. 이런 게 중독이라면, 평생 이 중독에서 헤어 나오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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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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