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해외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을 좋아하고 군대도 잘 다녀왔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인생은 내게 좋은 기회가 별로 없을 거라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해외라고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인생을 새 출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는 사업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일자리를 만들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주 간단한 일이다. 사업을 해봤니, 어떻게 할 줄은 아니,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사업을 뜯어말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그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걱정되면서도 성공확률이 낫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무언가를 말리거나 포기하는 것을 강요할 때는 그만큼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다. 한 번의 선택으로 많은 것들을 잃을 수 있을 때, 혹은 나라도 내 주변 사람이 무언가에 위험한 투자를 하고자 할 때는 한번 정도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항상 옳은 선택만 할 수 없다. 짬뽕과 짜장면 중에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어려운데,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여자 친구를 만나는 것부터, 내가 원하는 과에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내가 원하는 목적으로 향하는 여정이 된다. 나 역시도 순수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서양화를 다뤘지만 지금은 전혀 다른 일들을 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직업은 그저 어떤 업무나 일을 설명하기 위한 이름에 불과하다. 같은 직업이라도 하는 일이 다를 수 있고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도 있다. 디자이너라고 한다면 그 사람이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지,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는지 알 수 없으며, 디자인이라는 것은 영어로 설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건축도 포함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국에서 익숙한 재무와 관련된 직업들도 모두 디자인, 또는 디자이너가 된다. 이렇게 포괄적 개념으로 봤을 때, 우린 모두가 디자이너인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자기의 인생을 디자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직업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부동산 전문가, 일러스트 디자이너, 웹사이트 제작자, 프로그래머, 유튜버, 작가, 마케터, 기획가, 바리스타 등 꽤 많은 일들을 해왔으니 멋대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물론 수준 차이는 조금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불러주면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천체과학자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이 말을 몇 년 동안 많은 사람에게 나의 타이틀처럼 이야기했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비슷했다. 비웃음, 어린아이의 헛된 꿈 정도로 여겼었다. 나이를 먹어서도 나는 그 꿈을 버리지 않았다. 여전히 우주는 내게 신비롭고 정말 중요한 비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돈을 벌기 위해서 했던 일들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해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좋아서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제공해주는 제공자가 되기 위함이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고자 하는 경우일 뿐이다. 적어도 한국에서의 직업은 프라이드를 느끼기엔 조금 어렵다고 여기게 되었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장단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의 우수한 전통과 장점을 알리기 위해서 노력하며, 다른 나라에 없는 불편한 것들을 한국의 시스템을 통해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특히, 인터넷 작업을 많이 하는 사람은 해외 어디를 가도 한국처럼 만족스럽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수준, 물리적 거리 또는 인프라, 투자지원 등 너무나도 복합적인 것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생각하더라도 내가 한국을 떠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한국은 자유로운 생각을 배제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나와 다르면 배척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크다. 시스템이나 투자지 원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생각이 더 무서운 것이다.
오히려 창의적인 일들을 도모할 수 있게, 국가적인 시스템은 정말 잘 마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청년들의 자유로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지원사업이 연계되고 있고, 조금씩 투자시장이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전혀 나아가지 못하는 기분을 느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다른 방법으로 풀어낼 수도 있는데, 오로지 정답만을 요구하는 교육시스템이 많은 사람들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을 구성하여 내가 생각했던 방식이 아니라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크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공장에서 찍어낸 로봇처럼 행동하는 것이 나는 보기가 싫다. 똑같이 대학을 가야 하고, 똑같이 회사에 취직해서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급여를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더 이상 보기가 힘들다.
내 눈에 비치는 모습과 사람들의 써 내려간 단어들을 보면, 비슷한 인생, 비슷한 생각, 비슷한 과정, 비슷한 고민, 비슷한 생활… 아니, 어쩌면 그게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곳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시간이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내 인생을 잘못됐다.
내가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고, 비슷하게, 평범하게 살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게 쉽지 않아 떠나는 것임을 안다. '다르다'와 '틀리다'는 '아'와 '어'만큼 아무 작은 차이였다. 점 하나를 제대로 찍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