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번째 입사, 웹에이젼시로 이직하다

기획자라면 한 번은 꼭 가봐야 한다는 에이젼시, 선택은 옳았다.

by Creative Uxer

첫 번째 회사를 당차게 퇴사하고 백수가 된 나는

웹만사( www를 만드는 사람들 / https://cafe.naver.com/netmaru ) 같은 카페 도 열심히 보고 오프라인 모임도 나가보고, 각종 웹 기획 관련 블로그도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UX라는 개념보다는 '웹 기획' '웹서비스 기획'이라는 타이틀이 주로 사용되었고, 나 또한 그 타이틀을 얻고자 노력했다.


많은 정보를 찾아보던 중 계속 공통적으로 이야기되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기획자라면 웹에이젼시를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러니한 건 그 이유를 설명한 글은 찾기 힘들었음에도, 습관처럼 에이젼시는 가봐야 한다 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그 말을 하는 사람들 중 현재는 에이젼시에서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으며, 욕을 하면서도 가봐야 한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그 말에 이끌려 찾아본 몇몇 에이전시의 웹사이트 들은 눈을 끌기에 충분했다. 당시 정적인 웹사이트들이 많았을 때인데, flash로 도배된 웹사이트는 '인터렉션'이라는 것이 있었고 특이하고 예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에이젼시 몇몇 곳에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중 1세대 에이젼시 중 가장 오래되었고 유명하다던 e에 첫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내 첫 회사의 경력은 거의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냉정하게 이야기했다. 당연히 탈락이라고 생각했는데, 면접이 끝날 시점에 바로 입사할 생각이 있냐고 하면서 1800 만원의 연봉을 제시했다. 이 금액은 내가 첫 회사에서 받은 금액 보다도 작았고, 내가 알던 사람 중에 최저 연봉 수준이었다.

이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었던 부분인데 얼마 높지도 않은 연봉을 깎아서 이직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전에 먼저 이직한 첫 직장 동료들이 이직 후에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영향도 있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의미 없는 금액들의 차이였지만 이때만 해도 그 작은 차이가 너무 크게 느껴질 때였다. ( 후에 알게 되었지만 이 시기에는 1600부터 시작한 사람들도 많았고, 신입 사원에게는 한참 낮은 연봉을 제시하는 게 일종의 에이젼시 신입이 거쳐야 하는 관례처럼 이뤄지기도 했던 것 같다. ).


운명처럼 면접을 보게 된 곳에 에이젼시 a였다.

한 달이 넘어가다 보니 점점 이직이 절실해지고 있는 시기.

억수 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는 초여름 날씨에 정장이 젖었어도 짜증이 나지도 않았다.

면접장은 여의도의 h사 건물이었고, 그 건물 내 휴게실에서 1차 면접이 진행되었다.


실무 면접을 보시는 책임님은 냉정하게 내 이력을 검토하고 질문했지만, 이상하게도 적대감이 없이 수긍했던 것 같다. 이 사람이 나보다 한참 전문적이다 라는 느낌 자체에 압도당했던 것 같다.


이 건물에서 면접을 보게 된 이유가 해당 에이젼시에서 이 회사에 파견 중이었기 때문인데,

첫 회사 막판에 강남에 있는 대기업에 8시 출근을 해보면서 짧은 파견 생활을 해봤던지라 '파견도 괜찮고 자신 있어요'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비쳤다. 그리고 청담에 있는 본사의 '2차 면접', 이라기보다는 사실상의 연봉협상을 마치고 첫 번째 이직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도 이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는 '한 번은 가봐야 한다는' 웹에이젼시의 웹기획자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즐거웠고, 이전 회사를 같이 다녔던 동기들에게 나도 새 직장에 취업을 했음을 당당하게 알릴 수 있는 것도 즐거웠다.

첫 회사를 퇴사할 때 '회사들은 결국 똑같다.', '1년 경력은 인정 못 받아서 신입으로 가야 된다.', '고객센터부터 일을 해야 한다'는 각종 논리들에 빅엿을 먹인 것 같은 느낌만으로도 우월감에 잠시 도취되었다.

( 스스로 생각해도 이때는 참 어렸던 것 같다. 회사 생활에 참 많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지는 경우가 많이 있다. ).


얼마 후, h사의 건물로 출근을 시작했고, '에이젼시 주임'으로 처음 '을'을 경험하게 되었다.


'을'로 일하는 것은 기존 회사에서 업무 수행을 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치열하게 내부에서 고민했지만, '갑'의 높으신 분 ( 너무 유명하신 분인데 이때는 얼굴도 거의 보지 못함 )의 의사결정에 따라 방향성이 확확 바뀌어 나갔다.


또한 에이젼시에서는 기획-디자인의 논쟁(조금 더 심하게 말하면 가끔은 싸움 수준)도 많았고, 치열했다.

그 과정 내에서 매일같이 하는 야근은 필수적이었다.

저녁마다 함께 일하는 사람과 술을 먹고 고민을 하기도 했는데, 이때 만난 동료들 만큼 일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난 적이 이후에도 별로 없었다.

현재까지도 이 업을 해나가는데 계속 함께할 동료들을 만난 것이 어떤 것보다 큰 축복이었다.


힘은 들었지만 즐거웠다. 모든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었고, 내가 첫 회사에서 하던 화면 설계가 얼마나 허접했는지 알 수 있었고, 기획의 여러 분야를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 업을 같이 하는 여러 기획자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또 토론하고, 또 발전시켜 가며 일할 수 있었다. 매일 같이 야근을 해도 야근수당보다 좋은 건 내가 기획일을 하고 있다는 그 사실, 그리고 첫 번째보다는 두 번째 프로젝트를, 두 번째 보다는 세 번째 프로젝트에 조금 더 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첫번쨰에는 벤치마킹이 뭔지도 의미를 몰랐던 내가, 화면설계 몇장이 안되는 것을 만드는대도 줄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던 내가, 디스크립션을 자주 빼먹어 개발자들을 피곤하게 했던 내가..

프로젝트가 시작하기도 전에 벤치마킹을 끝내놓고, 화면설계 템플릿이라는 걸 만들어서 업무 속도를 높히고, 다른 배경의 선배들에게 논리로 대응하기위해 할말은 하는 기획자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3개의 프로젝트를 연달아 수행하였고, 처음에는 서포트 위주로 업무를 시작했었지만, 이제 적어도 메이저 한 섹션 하나쯤은 나 혼자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첫 회사와는 다르게 나에 대한 평가도 좋아지고, 기획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고, 수행했던 프로젝트가 당시의 좋은 에이젼시/좋은 웹사이트의 기준이었던 웹어워드의 좋은 평가도 받으면서 기획자로써의 자리를 점점 잡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이 길을 갈 것으로 생각하던 어느 날,

뉴스 하나가 또 한 번 나의 회사생활을 뒤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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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국내 출시(아이폰 3GS 국내 출시)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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