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험이 자산이 되어 멤버십 서비스/플랫폼을 혁신하다
프리랜서를 그만두는 과정(앞의 글)에서도 썼지만,
6번째 입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대기업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잡았다.
( 물론 방향을 잡는다고 다 되는 건 아닐 텐데, 갈팡질팡하면서 갑을병정 돌아다녔음에도 백수 되지 않고 끊임없이 기회를 얻은 건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절대 후배들에게 이렇게 이직하면서 성장하는 방향으로 커리어를 쌓는 걸 추천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운이 없다면 실패하기 딱 좋은 방법이니까 )
여러 오퍼 중 가장 눈에 들어온 건 대기업 계열사이면서 멤버십 서비스를 하던 M이었다
( 여기서 M으로 명명한 건 실제 기업의 이니셜이 아니라, 대기업 계열사 중 대표적인 멤버십 사는 몇 개 없어서 보안상 Membership의 대표 철자를 선택하였다. ).
M이 매력이 있던 첫 번째는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 계열사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분명 이번 이직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또한 계열사 분리를 통해 새로 플랫폼을 구축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의 도전 욕구를 자극하기도 했다. 실리적인 선택을 하면서도 원하는 바를 채워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한쪽 마음에 걸리는 건 많이 알려진 대로 이 회사의 보수적인 문화였는데,
한때는 자유로운 디지털 노매드를 꿈꾸며 프리랜서를 하던 내게, 이 문화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그럼에도 이 회사를 택하게 되었는데, 그건 아마도 지금의 와이프에 대한 사랑의 결과였다
( 오글거리는 표현이고, 업무 중심의 이직 스토리를 담은 본 매거진의 성격에는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더 이상의 정의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그것 때문이었으니까. )
이 회사의 면접 과정에서 재미있던 건 1on2 이 아닌 2on2(면접관 2/지원자 2)였다.
아마도 요즘에 이런 면접을 봤다면 신입사원도 아닌데 상당히 예의 없는 면접이라고 치부될 것이다.
아무튼 진행된 면접에서 나에게는 거의 질문이 많이 없었고, 대부분의 질문은 같이 면접을 본 다른 분에게 집중이 되었다. (6:4에서 7:3 정도?) 대기업에 들어가려면 꼭 있어야 한다는 토익점수가 나는 없었고, 그분은 높은 점수를 이미 가지고 있었다. 무 토익이지만 실무 능력으로 커버하겠다는 자신감으로 8년 넘게 버텨왔지만. 사실 스스로를 위로하는 게으름과 핑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때 처음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면접을 본 그분이 '요청에도 없었고 예정에도 없던' 과제를 해왔다. 스스로 이 서비스에 대해 고민해봤다는 말과 함께. 이때 이 면접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에 입사하려면 저런 것도 해야 되는 건가?
하지만 면접관으로 들어온 임원분은 그 과제를 열어보지도 않고 옆에 두고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
( 이 마저도 의외의 연속이었는데, 나중에 돌고 돌아 이 임원분과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일을 물어봤더니 기억하지도 못하셨다. 혹시 평가지를 잘못 작성하신 건 아닐까. 여러 번 의심은 했던 것 같다. )
그러다 결정적인 질문은 private push와 public push의 차이점에 대한 질문이었다. 사실 나도 이 질문의 답을 모르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정작 나에게는 그 질문이 오지 않았고, 그분이 전혀 다른 대답을 했을 때 비로소 희망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 살면서 결정적인 장면이라고 느껴지는 순간들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데, 그 날의 분위기와 멘트 공기까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만큼 나는 비장했고, 간절했었나 보다. )
그렇게 면접을 끝내고 잘 본 느낌은 아니었었는데, 합격 전화를 받게 되었고, 결국 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하고 보니 회사 내에 UX/서비스 기획 전문 기획자가 전무한 상태였다. 어쩌면 내가 선택된 건 조금 더 많은 경험을 통해 가시밭길을 이겨 나갈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건 아니었을까 싶었다.
첫 직장에서 프리랜서 생활 때도 경험했지만, 생각보다 이런 회사들이 많기에 그저 놀랍지는 않았다.
입사하자마자 확인한 것으로는 외주 프로젝트가 착수되어 흘러가고 있었는데 컨설팅까지 했음에도 좋은 전략과 방향은 보이지 않았고, 마구잡이로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분명 모바일앱을 만들고 있는데 과정과 결과물은 웹 기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거기에 그룹 내 IT계열사에게 업무 하청을 맡기고 나 몰라라 하면서도, 새로운 일은 하기 싫어하는 현업부서, 이해가 되지 않는 업무 프로세스와 보수적인 문화가 가져오는 피로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과연 여기에서 적응할 수 있을까? 반문하면서 시작했던 것 같다.
일단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해야 했다. 주어진 유일한 일이었으니까. 사실상의 현업 PM을 바로 떠맡으면서, 내부 팀장/임원들의 생각들과 외주업체의 컨디션을 조율하면서 가능한 기획 방향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때 몇 가지의 서비스를 기획하기도 하였는데, 그중 하나는 출석체크 모듈을 통해 마케팅을 하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룰렛 기반으로 추가 포인트 적립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모션이었다.
당시에는 동종 업계 벤치마킹 결과에서 해당 서비스를 전혀 찾을 수 없을 만큼 새로운 시도였다. 이때의 앱이 UX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 서비스(프로모션) 시도들 만큼은 의미가 있었다.
그 이유는 업계의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런 서비스들의 시작점에 있었으니까
이런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내가 게임 회사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말로는 mash-up 또는 collaboration이었고,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그것들 밖에 없기도 했다. ( 참고로, 게임회사에서 제일 많이 이용하는 프로모션 모듈이 가챠 시스템이다 ( 랜덤 확률로 아이템을 구매/지급하는 모델 ). 지금이야 넓은 시야로 많은 서비스를 보고 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때까지만 해도 게임회사에서 수행했던 경험을 많이 써먹을 때였다.
이 서비스가 이 회사에서 얼마나 파격적인 시도였냐면, 이 회사의 멤버십 서비스는 다수의 고객을 기반으로 포인트 적립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매일매일 들어오는 다수의 고객을 막지 못해 매번 같은 시간대에 서비스 트래픽 장애가 발생하였고, 매번 같은 시간 대에 임원 방 앞에서 벌을 섰다 ( 매일 같이 해당 시간만 되면 장애가 났고, 매번 장애 보고를 했다. )
새로운 시도를 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욕이 넘쳤지만,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고객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었다. 이 프로모션 모듈들은 buzz를 일으켰고, 잠잠하던 앱 서비스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고객의 민원까지도 많이 증가했지만 앱스토어의 댓글과 앱 트래픽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당연히 내부의 평가가 좋았고, 고객의 평가도 좋았다. 하지만 아쉬웠던 건 이 앱의 퀄리티였는데, 프로젝트 중간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퀄리티를 끌어올리는데 한계가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에이전시 출신이었던 지난 경험을 다시 써먹기 시작했다. ( 그러고 보면 다양한 회사를 다닌 경험은 계속 어딘가 써먹을 곳이 있었다. )
외주에 맡기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화면을 기획하고 UI를 설계했다. 전반적인 메뉴 구조와 화면 구조를 바꾸고 프로모션들을 정교하게 고도화했다. 회사 내에서는 당연히 처음 있는 시도였고, 자연스럽게 UX기획자로써의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시점에 UX업무환경을 바꾸기 위해 수십대의 iMAC을 구입하기도 했는데, 이런 투자를 이끌어 내고 업무 문화를 바꾸는 시도들도 했다. 1년 정도 이렇게 운영하다 보니 UX업무를 리딩 하는 직책으로 보임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이전에 뒤늦게 투입된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썩 좋지 않았기에, 토대를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내가 입사한 이후 충원된 UX 팀원들이 저연차였기에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는 모멘텀도 필요했다. 다양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돌릴 수 있는 플랫폼의 부재도 항상 아쉬웠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해결하면서, 제대로 사고 한번 내보겠다는 마음으로, 회사에 수십억이 드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 대기업의 구조상 이 과정은 기안이라고 불렸고. 수없는 보고와 설명회를 통해 예산을 받아냈다. )
앱 어워드에서 좋은 상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지만 실속이 없었던 기존 UX를 전면 리뉴얼하고, 개인화라는 코드를 제대로 심어내어 마케팅 기능을 강화하는 프로젝트를 착수하였다 ( 이 이상의 정보는 기업 정보라 공개하지 못함 ).
당시 인정받는 UX에이젼시를 모두 직접 만나고 업계 최상위권인 업체와 파트너십을 구축하여 UX 컨설팅을 진행하였는데, 당시 시장에서 악명 높은 그룹 내 IT계열사가 장벽이었다. 갑을병정 계약에 병으로 들어오게 되면 UX 퀄리티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 첫 프로젝트에서 이미 그 상황을 봤기에 )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좋은 업체를 소싱하는 것부터가 숙제였고, 이를 위해 업체 대표와 상호 간의 삼고초려를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지원해주신 임원분의 신뢰도 결정적이었다. ( 대기업의 임원들이 고루하다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생각보다 깨어있는 분들도 간혹 있다. 물론 그 사상을 함께 하기에는 많은 과정과 설득이 필요하지만, 시도하다 보면 길은 열리는 것 같다. )
UX 기획 리더이자 총괄 PM으로써 개발사 과 외주 UX에이젼시 - 팀원 20명 / 프로젝트 50명 이상을 1년 반 이상 관리하며(프로젝트가 확장되어 1년 넘게 진행하게 됨) UX와 모바일 마케팅을 오가며 Multi-Player로써 최선을 다했다. 필수적인 핵심 요건은 경영진을 설득하여 관철시키고, 부수적으로 도움이 되나 프로젝트의 목표에 맞지 않는 사항은 과감하게 걷어내었다.
이에 대한 성과로 업계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할만한 UX 완성도를 이뤄내었고, 사내에서도 수익 창출 및 고객 유입 확대 등에 있어 유의미한 지표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기존 관성에 따라 진행하는 회사 내 프로세스를 '혁신' 한 결과 , 고객/전문가/기업 내부 등 모든 곳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플랫폼이 구축되었다.
( 지금도 가장 좋은 플랫폼 서비스는 고객/전문가/기업 내부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단기간에 돈을 벌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래도록 사랑받는 서비스가 되는 거니까. )
그야말로 전성기였다.
경쟁사 및 좋은 회사들의 오퍼들을 받기도 했으며, 심지어 소속되어있는 대기업 계열사의 UX담당자들이 하나둘 찾아와서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묻기도 하고, 가이드를 받아가기도 했다. 집요하게 찾아와서 식사를 대접하면서 노하우를 가져가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모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였고, 영화 쪽을 서비스하던 계열사에서는 소개를 통해 실제 프로젝트로 연결되기도 하였는데,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의미 있고 즐거운 과정이었다.
아직도 이 프로젝트가 나에게 가장 대표 프로젝트인 상태인데, 무엇보다 누구 하나의 능력이 아닌 내부 직원/외주를 막론하고 팀원/파트너들과의 서로를 존중하며 함께 해결책을 도출한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때의 인연들이 지금까지도 잘 이어지고 있는 것이 가장 보람되었다고나 할까.
초기 시작은 불완전했지만, 프리랜서부터 대기업까지, 에이전시부터 현업까지, PA부터 PM까지, 웹부터 모바일까지, 페이지부터 플랫폼까지, 커머스에서 게이미피케이션까지, 갑을병정까지 내 지난 회사생활의 모든 경험을 총동원해서 멤버십 서비스를 꽃피웠고, 나를 비롯한 후배들과 플랫폼이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성공적인 회사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꽤 오래 지속될 것 같았던, 이 회사생활은 생각만큼 오래가지는 못했는데,
너도 나도 발을 얹으려 했던, 악의 무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다른 싸움 아니..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