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과 소신을 지킨 선택, 상처투성이 되어도후회는 없다.
6번째 회사생활은 정말 성공적으로 흘러갔다.
회사 대표로 미국 출장도 가고 ( 컨퍼런스 명목이었지만 사실상은 관광이었던 ),
최연소(적은 나이가 아닌데 최연소라는 게 조금 우습지만 어쨌든. )로 직책자로 보임이 되기도 했고,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긍정적인 결실들을 맺게 되었다.
가장 좋았던 건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고, 좋은 후배들과 즐겁게 일할수 있는 환경이었다.
현업뿐만 아니라 외주까지 파트너십 기반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며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
'그 환경'을 만들고 유지될 수 있었음이 행복이었다.
지금까지도 그 많은 사람들이 서로서로 좋은 인연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그 좋은 상황이 깨어지기 시작한 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낸 전혀 다른 문제들 때문이었다.
그 핵심은 '과도한 수익화'였다.
이 회사의 서비스는 당초 수익을 목적으로 운영되던 서비스가 아니었다.
회사 자체가 대기업 산하에서 창의적이고 새로운 일을 하는 계열사로 운영을 하는 것이 방향이었다.
하지만 어느 기업이나 마찬가지로, 회사가 어려워질수록 허리띠를 졸라매게 되고, 초기 방향만큼의 지원은 이어지지 않았다.
회사에선 수익을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야 했는데, 결국 잘 돼있다는 모바일 앱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사실 어쩌면 당연한 방향이다. 회사에 잘 진행되는 서비스기 있으니 그것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을 너무 무리하게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
컨셉추얼 했던 메인 화면은 광고 배너로 뒤덮여 선전지 화 되었고, UX의 최적화를 위해 어렵게 만든 로직들은 하나둘 hidden 되었으며, 고객들이 원하지 않는 정보들이 우선 배치되었다.
서비스가 잘될 때의 선순환 구조에서
'고객이 많이 오고 > 서비스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 바이럴이 일어나고 > 고객만족도가 높아지고 > 다시 고객이 많이 오는 흐름'
서비스가 안 될 때의 악순환 구조를 타기 시작했다..
'광고로 뒤엎이고 > 고객이 불만을 가지고 > 고객이 서비스를 참여하지 않고 > 재방문율이 떨어지는 흐름'
그렇게 무리한 수익화 목표를 설정하고 맞춰가려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제휴 업무들이 등장했다.
당사에 유리하지 않은 계약 조건이 들어왔고, 그중에는 회사의 방향에서도 비용적인 부분에서도, 중요하고 큰 계약 건도 있었다. 이 업무들이 부조리함을 확신한 건 지저분한 영업이 동반되었음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있는 이야기들은 소설로 써도 영화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많은 스토리와 한이 담겨 있다.
적어도 '미생'에서 나왔던 일들이 허구가 아님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 하지만 현실에서의 난 '오 과장'도 '장그래'도 될 수 없었다. 현실이니까. )
내 소속을 밝히고 쓰는 글도 아니지만 기업의 일이기도 하니, 브런치에서 구체적으로 모두 밝힐 수 없는 없다.
그럼에도 글을 남겨 두는 건 이 모든 과정이 내 회사 이야기와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획자로써의 자존심이자 정의감을 건드리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그 중심에 피하지 못하고 내가 엮이게 되었는데, 업무와 서비스가 연결되기도 했고, 그만큼 내가 맡고 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 한마디로, 잘 나간 게 독이었다. )
결론적으로 나는 이 방향들에 항명을 했다.
현실과 타협하는 게 현업이라지만, 썩은 기획자가 되고 싶지 않았기에 나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잘못되는 방향임을 어필하고,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했다.
그 항명에 대한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공격으로 돌아왔다.
담당 팀장과 임원이 나에게 각종 압박을 했고, 보호해줘야 할 회사조차 그들과 같은 입장을 이야기했다.
불공정한 업무를 이끈 팀장이 대표를 찾아가 내 욕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그 사이에서 무슨 편 가르기 싸움처럼, 자기편에 들어오면 도와주겠다는 악당들도 끊임없이 있었다
( 그만큼 대기업은 정치가 심한 것이었는데, 그 세계를 내가 너무 알지 못했다. 아니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
하루하루 전쟁을 하는 기분이었다.
결과는 완패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심리적인 데미지를 받았다.
직장 패닉이었다.
회사 건물 앞에만 서면 심장이 빨리 뛰고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불안감이 찾아왔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다양한 불안 증상이 찾아왔다. 높은 곳에 있으면 누가 등을 밀어서 떨어질 것 같고, 가만히 뛰는 가슴이 아프다는 느낌이 드는 증상들..
'공황장애'라는 게 이런 건가 싶었는데, 주말에 집에 있을 때 또는 밖에서는 멀쩡했고, 회사에만 가면 증상이 찾아왔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공황장애를 해석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화병'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기획자로써의 자존감이 높았던 내게
그 세상의 부조리를 경험하고 나서 참을 수 없는 화가 났음에도 해소가 되지 않았기에 증상이 나타났다.
유일한 취미가 볼링이었는데, 손가락이 아플 만큼 공을 던지고 나서, 기합을 내뱉으며 공을 던지고 나서 그렇게 화를 풀고 나야 오히려 진정이 됨을 느끼고 더 그렇게 조금 더 확신했던 것 같다.
화를 내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들이 화를 쌓게 되었을 때, 그것을 풀지 못하면 언젠가는 고통이 찾아온다.
수시로 화를 풀어야 한다. 그 방법이 무엇인지 요즘도 고민하고 있다.
그리고 조금 더 상태가 심해졌을 때,
병원에서 조심스럽게 약을 처방해주었다. 바로 공황장애 약이었다.
이름도 잊히지 않는 이 약을 받아놓고 한동안 고민했다.
사실 조금은 무서웠다. 약효를 신뢰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공황장애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 내가 한번 더 무너질 거 같다는 생각이 있었다
( 이게 잘못된 판단이기도 했는데, 지금 정보를 더 얻고 나서는 이 쪽 질환은 오히려 빠르게 인정하고 의료진의 도움을 받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
결국은 약을 먹지는 않았다. 아니 먹지 못했다.
스스로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쳤다.
종교도 없지만 절에 가서 앉아도 있어보고, 이유 없이 돌아다녀도 보고, 도서관에서 책도 많이 봤다. 심리에 좋다는 각종 일들을 찾고 해 봤던 것 같다.
그러다 그나마의 해답을 찾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Mindfulness'였다.
'마음 챙김'이라는 이 개념은 '명상'을 주 방법으로 시행하는데, 내 마음에 일어나는 일들을 알아차리고 관찰하는 게 주 내용이다. ( 'Mindfulness'의 경험은 너무 많아 번외 편에서 별도로 글을 쓰려고 한다. ).
각자의 사용방법이 다르겠지만
내가 사용한 방법은 스스로 마음을 보면서 내 자아(자존감)를 생각하고, 그 자아를 공격하는 것들 중 필요 없는 것들, 나에게 찾아온 고통을 지나가는 일로 만들 수 있게 하고, '다 괜찮다. 지나갈 것이다'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때로는 10분, 때로는 한 시간-두 시간씩 그 과정을 거치면서 멘탈을 회복했다.
이것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회복될 상황을 만들기 위해 버틸 수 있는 힘을 조금 얻을 수 있었다. 이 과정을 통해 스스로 50-60% 정도 회복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아이덴티티 중 하나가 프로 이직러 아니었던가.
다른 회사에 면접을 보기 시작했고, 나를 인정하는 회사들을 만나면서 70-80%까지 컨디션을 올릴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회사로 얻은 상처는 결국 회사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라는 결론도 얻었다.
그렇게 회사들을 알아보고 나서, '여섯 번째 퇴사'를 하게 되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건 좋은 인연, 좋은 후배들과의 헤어짐이었다.
파국으로 치닫은 회사와의 관계에서 모든 인연들을 충분하게 챙길 여력이 없었고,
우산이 되어주지 못해 내가 나온 이후에, 그 조직의 많은 친구들이 또 같은 업무로 괴롭힘을 받고 힘들어하다가 다른 회사를 택했다.
심지어 그 문제를 일으키던 사람들까지 모두 그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그들을 옹호하던 윗사람들에게 '당신들이 원한 것이 이런 것이었나. 나야 그렇다고 치고 그 많은 팀원이 퇴사하고 조직이 무너지는 걸 지켜보는 게 당신들의 소임이었나' 원망감이 많이 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 회사의 '감사' 절차를 통해 그 일들이 바로 잡혔다.
관련자들의 징계와 함께..
정의는 살아있음을 느껴서 다행이기도 했고.
그리고 나서야 '나'는 정말 '나'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아니, 이 글을 쓰기 위해 돌이켜서 생각해보면서, 아직도 불안감이 조금씩 찾아오는 걸 보면 100%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이제는 스스로의 상태를 관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차이가 있을 뿐. )
돌이켜 생각해보면,
프로세스를 혁신하면서 달려 나가며 너무 튀면서 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기도 했는데
( 조금 재수 없게 표현하자면, 잘 나가서 타깃이 됐다는 생각 ).
내가 조금만 눈을 감았더라면 모두가 ( 팀원들과 내가 ) 더 행복했을까.라고 생각해 본다.
하지만 어차피 그렇게 선택해도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기획자로써의 '자존감' 에는'정의감' 이 바탕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선배들에게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성장했고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상처투성이가 되었어도 양심과 소신을 지킨 선택이었기에 후회는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경험을 기반으로 더 성장한 기획자가, 성장한 사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렇게 많은 추억과 사건과 생각을 뒤로하고,
6번째 회사 생활을 마무리했다. 다른 휴식 없이 7번째 회사생활이 바로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