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아오고 또 하루가 지나가고 계절이 변할 때마다 알 수 없는 쓸쓸함을 느낀다. 특히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되면 마치 통과의례처럼 겪게 되니 몸도 맘도 지쳐 버린다.
12월이 가고 새해가 오면 예전처럼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나. 지난해 12월 초 오른손 검지 손가락이 부러져 한 달 넘게 깁스를 하고 다녔다. 깁스를 풀면 몸도 맘도 나아질 줄 알았는데 깁스를 풀었어도 손가락이 내 맘처럼 움직여주질 않아 하루하루가 길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다. 혼자 티브이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따라 모든 게 멈춰버린 듯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다. 이리저리 채널을 바꾸다 오래전에 끝난 드라마 <이산>이 방영되고 있었다. 연기자들은 드라마 속 그 시대 인물들에 맞춰 그들에게 주어진 삶을 연기하고 있었다. 티브이 화면 가득 채워진 어느 날의 햇살과 맑은 공기, 그리고 살랑 거리며 그들 곁을 스쳐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어느 날은 비가 오고 또 어느 날에는 눈이 내리고 장면이 바뀔 때마다 내 마음이 이상했다.
어느 봄날. 비 온 뒤의 마른 대지 위에 꽃이 피고 만개한 꽃은 심술궂은 바람에 꽃잎이 이리저리 날리는 광경은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 자연스럽고 친근했다. 그 시대에 살았지는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향수에 젖어들게 하는 우리만이 가지고 느낄 수 있는 정서인가 보다.
<최종회>라는 자막이 보이고 점점 끝을 향하자 괜히 섭섭하고 아쉬웠다. 깊이 빠져있던 분위기의 익숙함에서 빠져나와 야 하는 씁쓸함 때문인가 보다.
문득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런 날에는 남편 팔짱을 끼고 집 근처 커피숍 창 옆에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한가로움을 느끼고 싶다. 웃고 떠들다 보면 머릿속에 깊게 새겨진 그 씁쓸함도 가시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