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날다.

나무 타기 절대 금지.

by 금다요

이른 아침부터 왁자지껄한 소리에 놀라 창밖 마당을 내려다보니 그녀가 개집 앞에 앉아 해피를 교육시키고 있었다. 한 손에는 가느다란 회초리를 들고 땅바닥을 한 번씩 치며 해피에게 뭐라 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 광경이 궁금해 방을 나와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 뒤에서 가만히 들어보니 밥 먹을 때 흘리지 말고 깨끗하게 먹으라고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보고 있음 저런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졌다.


병원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날부터 하루도 조용하게 지나간 날이 없었다. 병원 업무야 정해진 대로 움직이면 되지만 그녀는 정말 예측할 수도 없고 적응하기 힘든 상대였다. 이른 아침부터 잠이 드는 시간까지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뛰어다니며 온갖 장난을 치니 수습하기도 어려웠다.


오늘은 이 병원에 오고 처음 맞는 개원기념일이었다. 강당에서 조촐하게 자축 기념식이 끝나자 당직자를 제외한 다른 직원들은 병원 밖으로 우르르 몰려 나갔다. 나는 특별히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없기에 두 모녀와 병원에 남아 있기로 하였다.


병원과 가까운 절에서 개원 기념일을 축하한다며 시루떡이 든 나무 도시락을 한가득 차에 싣고 왔다. 입원 중인 환자들에게 나눠주기 위해 난 그녀를 데리고 환자 병동으로 갔다. 그곳은 갑자기 날카로워지는 환자들 때문에 잠금장치가 되어 있었다. 그녀는 이런 분위기가 익숙한지 뒷짐을 지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녀는 노란 고무줄로 묶은 나무 도시락 하나와 나무젓가락 하나씩을 일일이 환자 손에 쥐어주고 뭐라 뭐라 작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그녀가 나눠 준 도시락을 받은 환자들도 그녀에게 뭐라 얘기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상하게 환자들도 그녀의 천진난만하게 웃는 얼굴을 보며 마음의 평온을 찾는 듯싶었다. 상자 안에 있던 도시락을 다 나눠주자 그녀는 나의 손을 잡아끌며 마당으로 나갔다.


나를 쳐다보던 장난기가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봤을 때 숙소로 돌아갔어야 했다. 그녀의 귀여운 모습에 반해 항상 후회를 하면서도 그녀의 맑은 미소 때문에 그녀의 손을 잡고 병원 뒷산으로 올라갔다.



girl-1246690__340.jpg pixabay - 어린 시절


마당에서 뛰어노는 거처럼 가볍게 산길로 내달리는 그녀를 보니 들에서 뛰노는 어린 야생마 같았다. 어린 아이라 몸이 가벼워서인지 비탈진 산길인데도 쉼 없이 뛰어 올라갔다. 그녀를 따라 빠르게 걷다 보니 숨은 차오르고 입에서는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10여분쯤 올라가자 평평하고 넓은 풀밭이 보였다. 그 옆으로 오래되어 보이는 고목 한 그루가 눈에 띄었다. 가지가 양 옆으로 벌어져 있고 중앙에는 어린아이가 앉을 수 있을 정도의 자리가 보였다. <혹시 저기를 올라가자고 하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녀는 나를 향해 씩 웃더니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녀는 나무 아래까지 달려가더니 그곳으로 올라가기 위해 나무를 품에 안았다. 마치 개구리헤엄을 치듯 나무 헤엄을 치고 있었다. 그녀는 나뭇가지가 갈라진 중앙까지 올라가자 아래에 있는 나를 쳐다보며 올라오라 재촉했다.


몇 번을 내려오라 말했지만 그녀는 들은 척도 않고 어딘가만 쳐다보고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도 나무 헤엄을 쳐 그녀가 앉아있는 곳까지 갔다. 그녀 옆에 앉아 땀을 닦고 그녀가 바라보던 곳을 바라봤다. 눈앞에는 푸르른 논과 밭들, 그 사이에 난 길에는 소달구지 등이 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손을 의지해 한참을 나무 위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었다.


나쁜 일은 왜 예상대로 이루어지는 걸까. 바람이 세지더니 비가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서둘러 내려가야 할 생각으로 맘이 급해졌지만 그녀는 내 맘과 다르게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은 채 태연하게 앉아있었다. <비 오는데 우리 내려갈까.>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나를 빤히 쳐다보던 그녀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씩 웃었다. <비 많이 안 올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날씨는 그녀의 말과 정반대로 상황이 더 나빠졌다. 후드득후드득 숲 속의 나무 잎새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더 이상 나무 위에 있다가는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그녀를 어깨에 태우고 나무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돌아섰다. 그녀의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비에 젖은 나무는 안 젖었을 때보다 더 미끄럽고 발을 딛기가 힘들었다. 땅에 도달할 때쯤 결국 미끄러져 내동댕이쳐졌다. 그녀의 얼굴은 날카로운 풀잎에 베였는지 피가 배어나고 있었다. 그녀를 업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렸다.


병원 입구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물에 빠진 생쥐 같은 신세로 나타난 우리의 모습을 보고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박 선생님! 숲에 가셨었어요?>

<네. 죄송합니다. 비가 올 줄 모르고 나갔다가........>

<다행이에요. 상처가 깊지 않은 거 같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애가 짓궂어서 선생님 많이 힘드시죠.>

그녀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과는 생각하는 게 달랐다. 그녀의 말괄량이 기질 때문인지 베이고 다치고 상처가 나는 거에 두려움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데리고 숙소로 올라갔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그녀의 상처가 걱정되어 그녀의 방으로 건너갔다. 오늘은 그녀도 피곤했는지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길게 하얀 거즈가 붙어 있었다. 꿈을 꾸고 있는지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그렇게 짓궂더니만 자는 얼굴은 천사의 얼굴 그대로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내 앞에 놓았다.

<박 선생님도 따뜻하게 차 한 잔 하세요. 감기 들면 크게 고생해요.>

<감사합니다. 금방 그칠 비는 아닌가 봐요.>

<네. 아무래도 가을장마가 시작된 거 아닌가 싶어요. 시내로 나간 직원들이 걱정되네요. 오후 늦게라도 비가 그쳐졌으면 좋겠는데.>


나는 창 밖을 쳐다봤다. 먹구름이 계속 밀려오고 있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도 시간이 흐를수록 거칠어졌다. 비바람은 우리의 바람대로 그쳐주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되었던 거다.


저녁때쯤 밖으로 나간 직원들이 돌아왔는지 1층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2층 난간에서 1층을 내려다보니 비에 흠뻑 젖은 직원들이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서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나도 저들도 오늘 이 시간은 잊을 수가 없을 거 같았다.




fantasy-3237644__340.jpg pixabay - 어린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