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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Jul 01. 2018

이상한 나비효과

0630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했다. 그 바람이 점점 거새져 바람을 타고 날아가 내가 지금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 나비 한 마리는 팀장님이었다. 과연 날갯짓이라고 해야 할지 난도질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팀장님의 날갯짓으로 나는 하루 만에 퇴사를 결정했다. 의욕 없이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계속 이건 아닌데 이렇게 살면 안 되는데 생각은 수도 없이 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매달 일정 금액을 통장으로 보내주는 장소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는데, 그 날갯짓 한 번으로 자유로워진 나.

퇴사 후의 가장 큰 성과이자 좋은 바람의 결과는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거다. 막연하게 대학시절부터 꼭 가보고 싶은 나라. 닿지 않을 꿈같았고 언젠간 가볼 수 있겠지. 생각만 하던 장소가 당장 티켓을 끊으면 갈 수 있는 곳 이란 걸 알게 됐다. 출국 전 혼자 떠나는 여행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는 막상 다녀오고 나니 아프리카, 이집트 아니면 어디든 혼자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전 세계 어디든. 이  될 수 없는 건  아직 내 여행 경험과 담력이 그 정도까지 밖에 안되기 때문인가 보다.

이탈리아라는 나라에서 그들의 종교를 접하고 예술을 접했다. 과거를 유지하고 보존하며 가꾸는 모습이 어떨 때 보면 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렇게 열심히 보호하고 가꾸는 가치에 대한 궁금증이 여행을 하면서 점점 커졌다. 수많은 그리스 로마신화 속 신들의 조각에서, 광장에서 누군가의 청동 기마상을 봤을 때, 거대하고 화려한 몇백 년 된 성당을 봤을 때  이해하고 싶었다. 그것들이 만들어진 이유와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가치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리스 로마신화부터 찾아봤다. 내가 사진 찍어 온 조각들이 누구를 만든 건지 궁금해서였는데 신화 속 이야기를 알게 되니 꽤 재미있다. 생각보다 방대한 양의 그리스 로마신화였지만 등장 순서대로 달달 외울 이유는 없다. 어린 시절 이솝우화나 전래동화를 보던 마음으로 가볍게 접했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보다 보면 역사 이야기가 안 나올 수가 없고,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얕고, 어디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한 팟캐스트를 찾아냈다. 팟빵 교육 카테고리에서 꽤 높은 순위로 자리 잡고 있는 [휴식을 위한 지식] 전쟁사 문명사 세계사.였다. 생전 국사, 역사, 세계사 이런 것들과 담을 쌓은 학창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는 나는 예체능이니까 저런 과목 필요 없다 생각하고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자거나 그랬는데.. 그땐 왜 그랬을까. 돌이켜보면 대학이 전부는 아니었는데, 그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한데. 

이 팟캐스트가 만들어진 취지가 지금 내 상황이랑 너무 잘 맞는다. 학창시절 역사, 세계사를 등한시하고 어른이 된 사람들에게 지식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줄 목적으로 시작된 전문세. 무조건 처음부터 보고 들어야 하는 성격인지라 1편부터 시청했다. 이 팟캐스트에 나오는 허진모란 사람이 내가 애청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정경훈 PD란 사실도 듣기 전부터 어느 정도 호감! 신뢰! 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옆에서 무지한 학생, 재미, 추임새 역할을 담당하는 장웅 개그맨 또한 연륜이 있어서 그런지 장난이 과하지 않아서 듣기 편하다. 최근 들었던 [그리스 로마신화] 관련 팟캐스트는 전문세와 컨셉이 동일한데 갈수록 자기들끼리 시시덕 거리고 신화 속 주인공들을 폄하하는 느낌으로 진행해서 듣다가 말았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여행을 주제로 시작하던 팟캐스트는 4대 문명으로 흘러간다.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까지 세상에 내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재미있어 하고 있다니. 정말 교과서에서 배우던 까마득한 이야기들 아닌가.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 만들어진 지구라트란 거대 건축물?! 을 만든 벽돌의 이름이 [어도비]란 말에 혼자 감탄하며 내가 맨날 사용하는 프로그램 회사의 이름이 이런 뜻이었어?! 어도비 로로가 단순히 A를 본뜬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혼자 하면서 즐거워했다.




이 퇴사의 날갯짓의 바람이 어디까지 날 날려보낼지 모르겠다. 분명 예전보다 지금이 행복하고 즐거운 건 사실이다. 물론 어제는 올해 내가 얼마를 벌었나를 계산해 보기도 했고, 통장에 남은 금액을 확인해 보는 작업을 했다. 아직 좀 더 버틸 수 있겠군. 생각했지만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마음가는대로 좀 더 흘러가볼까?


결국  퇴사→여행→역사 팟캐스트→모르겠다  이 흐름을 장황하게 적은 글이 되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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