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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Aug 27. 2018

나는 노인을 왜 싫어할까?

D4_0827

저녁에 외출할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바깥세상에 나간다. 시원한 영화관에 가서 영화나 볼까 하고 최근에 개봉한 [목격자]를 예매해서 영화관으로 향했다.


평일 낮인데도  불구하고 뒷좌석은 대부분 찼고, 맨 앞좌석이 자리가 있어서 끝좌석을 할까 가운데를 할까 고민하다 평일인데 사람이 꽉차겠어? 하는 생각으로 맨 앞 정중앙으로 결정! 막상 영화관에 들어가니 만석이었다. 다들 영화관으로 피서를 오나보다.


내 오른쪽 자리는 젊은 여성이었고 왼쪽 자리는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옆자리는 할머니였다. 기분이 나빴다. 할아버지 옆자리는 싫다. 왜 나는 할아버지가 싫을까. 아니다. 할아버지 뿐만아니라 영화관에서 옆자리가 남성이면 일단 마음이 불편한게 사실이다. 사람에겐 개인의 공간이 있다는데 좌석이 너무 붙어있으니 모르는 남성과 딱붙어 있으면 불편해. 하지만 노인이기때문에 좀 더 싫었던건 사실이다.


내가 생각하는 노인의 이미지는 불쾌한 냄새가 나고, 안하무인의 자세, 그리고 시끄럽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노인의 이미지다. 내가 몇몇 노인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모든 노인에게 투사하고 있는 걸까. 태극기부대때문에? 아니면 내가 조부모와 함께 성장한 기억이 없고, 추억이 없어서 노인 자체가 낯설어서 그럴까.


광고 시간. 할아버지가 가방에서 뭔가 부스럭부스럭 거리신다. 일회용 비닐봉지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탕이 들어있다. 부스럭부스럭, 할머니는 아직도 못 골랐느냐. 하시고 할아버지는 계속 사탕을 찾으시느라 부스럭부스럭, 그렇게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나씩 사탕을 꺼내서 드신다. 입안에서 달그락달그락 사탕이 굴러간다. 나도 하나 주시지.


'그래 어른들은 꼭 저렇게 주전부리를 가지고 다니시지!'

설마 사탕을 계속 드시진 않겠지. 하고 광고를 봤다. 내심 옆자리 할아버지가 신경쓰였다.

영화 시작전에 워너원의 아이스크림콘 광고가 나왔다. 광고가 끝날 무렵. 할머니는(목소리가 엄청 크심)


"올여름은 아이스크림이 엄청 팔렸을 거야~"

"그랬겠지. 아이스크림 회사가..웅얼웅얼 (할아버지 대사는 잘 안 들림 옆자리인데도)"

"내가 올여름에 아이스크림을 몇 개를 먹었는지 몰라"(할머니는 쩌렁쩌렁)


'앗. 큰일이다. 광고에서부터 이렇게 큰 목소리로 대화를...'


영화는 시작부터 살인 장면을 보여주고, 간간이 사람을 놀래킨다. 집에서 엄마랑 수다 떨면서 드라마 보는 것처럼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계속 주거니 받거니 하신다. 언제나 시작은 할머니


" 저 사람 범인이네 그렇지? "

" 저 사람 말이 맞아. 저런 거 봤으면 신고해야지 암만 "

" 맞는 말 했어. 맞아 그래야지 "

" 부인도 위험할 것 같어. 그치? "


영화를 보면서 할아버지와 대화하시는 할머니. 나이가 들면 귀가 잘 안 들리서 목소리를 크게 내시는 거라 이해하려 했다. 이어폰 꽂고 대화하는 거라 생각하면서. 물론 나는 영화관에서 큰 소리로 대화하는 사람들을 싫어하지만.


영화 중후반, 좀 심각한 장면이 나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트로트~ 트로트~트로트~♬"

신나는 트로트 노래의 벨이 울린다. 할머니께서

"진동으로 안 했어? 전화 왔자 너~"

벨 소리가 아까부터 들렸는데 느릿느릿 할아버지

"가방 지퍼가 잘 안 열리네에~"

할아버지는 어둠속에서 뒤적뒤적, 남성 트로트 가수가 신나게 노래 부르는 걸 꽤 오래 듣고 나서야 조용해졌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다. 하지만 난 관대해. 이해할 수 있어!'


전화를 끄고 할아버지는 기어이 문자까지 몇 개 보내셨다.  영화보는중이라 전화 못받았다는 답문을 보내시는거겠지. 눈이부셨다. 영화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계속 맥이 끊겼다.

갑자기 또 눈이 확~부시다. 할아버지 폰에 손전등이 켜졌다. 

당황한 할아버지가 핸드폰을 요리조리 돌리면 여기저기 손전등 불빛이 발사된다.

'눈부셔 죽겠구먼요.'

할머니께서

"빨리 꺼봐~ 사람들이 쳐다 보잖어"(사람들 신경은 쓰셨던거에요? 할머니?!)

"어떻게 끄는지 모르겠네.."

"젊은 사람한테 해달라고 해봐"

내가 후다닥 할아버지 핸드폰을 낚아채서 허리를 굽혀서 폰을 다리 아래쪽으로 한 후 손전등을 끄려고 바둥바둥했다. 안드로이드 폰은 익숙치 않아서 손전등 끄는 버튼 한참 찾았네.


영화관에서 겪을 수 있는 불쾌한 상황을 풀 패키지로 겪었던 날이다. 그런데 분명 나는 엄청 화가 나고 불쾌했어야 했는데  딱히 기분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좀 웃긴 상황이랄까? 그렇게 한마디 한마디 추임새를 넣는 할머니, 말과 행동이 느릿느릿한 할아버지. 다시 겪고 싶은 상황은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신선한 경험.


 내 또래 사람이 영화관에서 같은 행동을 했다면 나는 분명 한소리 했을지도 모른다. 옆자리였으니까 불쾌감을 표현했을거다.알만한 사람이 진상이다.노개념이네. 생각하고 좀 더 화가 났을지도. 하지만 나이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러시면 모라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지나가야지 어쩌겠어..


노부부가 함께 영화관에 와서 오손도손 사탕을 나눠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화를 본다. 이 모습자체는 아름답고 훈훈한 풍경이다. 할아버지가 추위를 타시는지 할머니가 담요도 덮어주고 그랬다.

 젊은 사람들처럼 영화관에 자주 못와본 경우라면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놓는걸 깜빡 잊을 수 도 있다고 생각해보자. 휴대폰 조작이 서툰건 노인이기 때문이라 이해해보자.

 그럼 끊임없이 큰소리로 대화하는 문제는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자신의 목소리가 잘 안들리기 때문에 크게 내는거라 이해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영화관에서는 말을 안하고 보는게 일반적이다. 라는 사실을 할머니께 미리 알려드려야 할까. 보는 도중 누군가가 조용히 해주세요! 라고 말해야 하는걸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노인이 싫다. 요즘 내가 접하는 노인은 태극기와 미국기를 흔드는 화가난 노인들 밖에 없다. 노인들의 예의없는 행동도 싫다.

그런데 그게 다 몰라서 벌어진 일이라면 무지해서 그런거라면, 실수였다면, 누군가가 전달한 잘못된 정보를 진실! 이라고 믿고있다면? 나이가 들면 자극에 대한 반응속도가 느리고, 소리도 잘 안들리고 걸어다니는데 내몸이 내몸같이 않은 상황이라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문화에 내가 빨리 적응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노인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해봤다. 아니 상상이 잘 되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지만. 누군가 노인이 된 나를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싫어하고 무시한다면 나는 엄청 화가 날것 같다. 니들이 뭘 아냐고 외칠것 같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겪은 사람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노년의 삶. 이해자지 못해서 싫어하는건지, 몰라서 싫어하는건지, 무작정 싫어하는건지 궁금하지만 명확한 답이이 나오지 않는다. 


오늘 만났던 노부부는 나에게 이상적인 노년의 모습이었지만 두 분은 영화보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만드셨다. 불편했다. 불쾌했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나는 못되쳐먹어서 여전히 무작정 노인이 싫고, 내가 불편한거, 내 자유를 침해하는걸 너무나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그래서 내가 화가 났지만 화가 나지 않았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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