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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Feb 16. 2018

100년 전의 책이라니..

[데미안] 헤르만 헤세

데미안 읽기 재도전

위즈덤하우스에서 새롭게 나온 [데미안]을 읽게 되었다. 표지 일러스트를 웹툰 작가분이 그렸다고 해서 궁금해서 찾아봤다. 어떤 웹툰일까 구경 갔다가 모두 섬세하게 컬러링이 돼있던 것에 놀랐고 요즘에도 이런 퀄리티의 웹툰이 있다니 하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의 웹툰은 흑백에  잘 그린다는 개념과 기준도 사라졌고, 내용만 재미있다면 막 그림도 인기를 끄는 게 요즘인데 컬러링이라니 세상에.. 작년 연재 도중 잠정 휴재기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건강 상태가 안 좋아져서 그렇다고. 웹툰은 중단했지만 이렇게 책 일러스트로 그림을 보게 되었으니 건강도 나아지셨나 보다 생각했다. 웹툰 그림에서 본 것보다는 데미안 일러스트가 한껏 디테일하고 느낌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일까 중학교 때일까 내가 구입하진 않았고 엄마가 사 온 것 같다. 데미안이 청소년 필독서로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 어린 시절 나는 데미안 읽기를 포기했다. 막연한 기억 속에 괴롭힘당하는 소년의 이미지가 있는 걸 보면 앞부분만 읽다 포기한 게 분명하다. 이 책의 주제는 끝부분에 나오는데 말이지!
 어린 시절보다 20살은 많아진 지금 데미안을 다시 읽어 내려갔다. 유명하고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고 고전도 읽어 버릇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예상보다 빠르게 읽긴 했지만 이 책은 나에게 어려웠고 심오했다.
 어린 시절 이 책을 앞부분만 보다가 포기한 이유가 분명 있었다. 모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가 다루고 있는 주제가, 헤르만 헤세가 주는 메시지가 너무나 강렬하기도 했지만 주인공 싱클레어의 생각들이 너무나 신경질적인? 병적인 느낌을 받았다. 추상적인 표현이라고 해야 할까 글자들을 읽어도 바로바로 해석하기가 어려웠다. 종교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카인과 아벨 이야기도 다시 찾아 보고 책을 읽어야 했다. 내 눈에는 데미안도 너무 이상했고 처음에는 데미안을 바라보는 싱클레어의 생각들이 너무 야릇해서 동성애 코드인가라는 생각까지 해버렸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의 엄마 에바 부인을 바라보는 감정 또한 내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이 전부다 현실의 사람들 같지 않았달까.


100년 전에 쓰인 책

1919년에 나온 책 100년 전의 시대 배경과 문체를 감안하고 읽어내려갔지만 읽기 쉽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온 이 책은 그 당시 청년들에게 돌풍을 일으켰고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 상인 폰타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한다. 본인은 거절했다고 하지만. 가명으로 이 책을 출간했고 수상도 거절했지만 결국 나중에 문체 때문에 헤르만 헤세로 밝혀졌다는 일화도 흥미로웠다. 숨겨도 숨길 수 없는 작가의 문체. 100년 전의 문체와 사상, 상상도 할 수 없는 전쟁의 직 후인 모습.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았을까? 세상 밖이 어떠하더라도 나 자신을 찾자고 강력하게 말하는 이 책이 왜 돌풍이 일었을지는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현재의 나는 100% 이해하기 어렵지만 책이 나왔던 당시의 상황을 비추어 봤을 때 엄청난 파격이었으리라.. 많은 젊은이들이 용기와 희망 혹은 돌파구를 얻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글쎄. 나 또한 전쟁을 글로 접한 세대이기도 하고, 요즘 청소년들은 내 학창시절보다 더욱더 미디어에 노출돼있는데 이 책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도대체 싱클레어는 왜 그러는 걸까 왜 그러는 걸까를 생각해오다 책의 후반부에 가서야 싱클레어가 왜 그렇게 고뇌했는지 무엇을 찾고 싶은 건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새는 힘겹게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데미안의 첫인상 / 싱클레어랑 데미안이 술집에서 만났을 때

아무리 봐도 남자 둘을 너무 야릇하게 그렸단 말이야... 데미안의 눈빛이 너무 그윽해.


 인상 깊었던 문구들. 이 부분들이 내가 생각한 책 [데미안]이하고 싶은 말이라 생각한다.

p194 피스토리우스가 싱클레어에게
당신이 죽이고 싶은 사람은 결코 아무개 씨가 아니라 틀림없이 다른 무엇의 위장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그의 형상 속에서 우리 내면에 있는 무엇인가를 발견해서 미워하는 것이죠. 우리 내면에 들어 있지 않은 것은 우리를 흥분하게 만들지 않으니까요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것과 같습니다

p218 싱클레어의 깨달음
깨달은 인간에게 부여된 의무는 오직 단 한 가지뿐이었다. 바로 자기 자신을 찾고 자기 안에서 확고해지고, 어디로 향하든지 자기만의 길을 찾아 앞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이 깨달음은 나를 깊이 뒤흔들어 놓았다

p234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사람들은 서로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서로에게로 도망치는 거야. 노동자는 노동자끼리, 학자는 학자끼리 말이야! 그런데 그들은 왜 두려워할까? 사람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할 때만 두려움을 느껴. 그들은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지지한 적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거야. 자기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서 두려워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공동체라고!

p252 싱클레어
우리들은 그 모든 신앙 고백과 구원론을 애초부터 죽은 것이자 쓸모없는 것으로 여겼다. 우리들 각자가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고, 자기 안에 살아 있는 자연의 싹을 따르고, 의지에 따라 사는 것, 불확실한 미래가 가져오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대비하는 것만이 우리의 유일한 의무이며 운명이었다.



어른이 된 싱클레어가 자신의 어린 시절 10살부터 20대 성인이 될 때까지의 일들을 회상 형식으로 적어 놓았다. 마지막 부분에 갑자기 전쟁 이야기가 나와서 당황하긴 했는데, 당시의 상황이 전쟁 직 후의 상황이었으니까 자연스럽게 나왔으리라 생각된다. 헤르만 헤세가 연상의 피아니스트와 결혼을 했다는 글을 읽고 나니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고 어린 싱클레어에게 깨달음을 주었던 피스토리우스가 떠오르기도 했고 에바 부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연상을 좋아하시는군요! 인도 여행을 통해 동양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싱클레어가 그렇게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중하고 고뇌하는 부분을 보면 동양철학의 영향을 받았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책의 많은 부분이 작가 본인이 너무도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일부러 가명으로 책을 출판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내 모습이 싱클레어 같다. 싱클레어 같다. 나에 대해서 내 마음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내가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할지 고민하고 고민하는 요즘이다. 그 해답을 찾는 길이 그렇게 쉽겠나 계속 찾고 노력하고 그래야지. 싱클레어만 봐도 청소년기를 전부 깨달음을 얻는 일에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을 읽고 나에게도 데미안 같은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보니 나에게도  데미안 같은 역할을 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걸 깨달았다.


마지막 장면 싱클레어의 모습

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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