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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Oct 10. 2018

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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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지하철에서 종이를 나눠주며 돈을 구걸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퇴근하고 집에 가는 전철 안, 느닷없이 종이 한 장이 무릎 위에 던져지듯 올라왔다. 나는 이어폰을 끼고 있어 그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일그러진 표정으로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남자는 30대쯤 돼 보이고 덩치도 있고 건강해 보였다.
보통은 신경 쓰지 않고 도로 종이를 가져가게 그대로 두지만 오랜만에 만난 김에 뭐라고 쓰여있나 궁금해서 사진을 찍어왔다.

저는 어려서 안산에 위치한 사랑에 집에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집이 점점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원장님도 떠나가 버린 지금 저희들은 박현우 전도사님꺼서 돌봐주시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집이 있는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지금은 19명이 사랑에 집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주머니 아저씨 형님 누님 저에게 자그만한 소망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그만한 구멍가게일지라도 저의 힘으로 꾸러나가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하루에 담배값 이천원이라는 돈이면은 장애인 한 사람에게는 하루 세끼 식사를 해결 할 수 있는 큰 돈입니다. 조금만이라도 도와주세요. 끝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과 평화가 늘 충만 하기길 <기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담뱃값이 지금 얼마인데 이천 원이라면서 돈을 구걸하는 것일까? 그리고 요즘 라면 하나가 얼마인데 이천 원이면 하루 세끼 식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꿈도 야무지게 자영업이 꿈이라고 한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믿지 않는다. [지하철 구걸]을 검색해보니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동일하게 박현우 전도사가 등장하는 다른 종이를 올린 포스팅을 발견했다. 내가 오늘 본 사람과 동일인물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검색하다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 
 2004년 지식인에 올라온 질문, 안산의 사랑의 집이란 곳이 실제 존재하냐는 문의 글을 발견했다. 자그마치 14년 전에 올라온 질문이다. 행운의 편지도 아니고 14년 넘게 같은 곳에 있는 사람이 구걸을 하고 있단 말인가?

꼬마 시절, 재래시장에 가면 껌이나 이태리타월 등을 실은 작은 상자를 밀며 다리 없는 아저씨가 고무바지 같은 걸 입고 몸을 끌며, 구걸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누가 봐도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불쌍해 보이기도 했지만 어린 마음에 무섭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못 본 척  빨리 지나가려 노력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아저씨들 다 어디로 가셨을까?
지하철에서 많이 보는 구걸인 중 가장 흔했던 게 노래 나오는 테이프를 틀고 천천히 지팡이를 짚으며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사람이었다. 작가 최정화가 좋아할 만한 작은 플라스탁 소쿠리를 들고 구걸하는 맹인 말이다. 맹인이 아닐지도 모르고, 

중고등학교 때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맹인 할아버지가 지하철을 내리자마자 지팡이를 들고 돈통에 돈을 세어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지하철 구걸인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됐다.  요즘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14년 전의 글을 복붙해서 구걸을 하고 있다. 어떠한 것도 팔지 않고, 추억의 노래도 들려주지 않으며, 그저 감정에 호소만 하고 있단 말이다.   
이런 만남과 접촉은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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