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좐느 Oct 14. 2018

생일

D24_1014

생일 전날에서 생일로 넘어간 시점에 쓰는 글.

토요일이라 느지막이 일어나서 일을 했다. 허리가 아플 정도로 많이 자고 일어났다.


뭔가 하긴 해야 하는데 하기 싫은 기분이 자꾸 나를 끌어당겨 바로 시작하지 못하고 컴퓨터에 앉아 뜨끈한 커피를 한잔 마시며 노닥거렸다.

마지못해 일을 시작하면, 막상 시작하면 또 금세 되는 게 또 일이다. 해놓으면 이렇게 마음 편한 것을..

오늘은 주말 전에 해야 하는 일을 다 마무리 짓고 일요일엔 남자친구와 교외로 가서 꽃도 좀 보고 고기도 먹고 해야지. 하고 있었다.

토요일은 오롯이 집에서 일하고 쉴 작정이었다. 


늦은 점심을 차려주던 엄마가 갑자기 영화 [암수살인]을 보러 가자 그래서 저녁 시간으로 예약해 놓고 또다시 일을 했다.

아니 미역국이 없잖아! 엄마는 내 생일을 알까 모를까? 문득 궁금해졌다. 딱히 선물 이런 건 안 해줘도

미역국에 고기반찬이나 잡채는 해줬던 것 같은데!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내일은 물어볼테다. 


생일이란 게 그렇네. 막상 달력을 보면 내 생일인 숫자가 눈에 확! 들어오긴 하지만 예전처럼 설레지도 기다려지지도 않는 그런 날이다. 한 살 나이를 더 먹는 게 슬프다. 모 그런 기분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보통의 날 같은 느낌이랄까? 

생일이 아무렇지 않아진 게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좀 더 철 있는 생각을 해본다면. 35년 전 오늘은 엄마가 매우 고통스럽게 생사를 오갔던 날이고 이모의 말을 전하면 욕을 그렇게 했다는데, 엄마가 욕하면서 나를 나은 날이다. 미역국은 내가 엄마를 차려줘야 한다는 남자친구의 말은 귓전으로 들으며,

"엄마가 내 생일 까먹었나 봐. 미역국이 없어!"

라고만 말할 뿐이었다. 


그래도 나는 엄마와 주말에 함께 점심 먹고, 영화 보고 저녁 외식까지 했으니 그날의 주인공이 함께하는 날이 되어서 좋다.

그래서 주말이 생일인 게 좋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가스렌지 큰 솥에 바글바글 미역국 냄새가 진동을 한다. 아침 먹으라는 말에

"나 나가서 밥 먹을건데. 미역국 어제 끓여주지!"

했더니

"생일날 미역국은 아침에 먹는거지"

하는 엄마.. 역시... 잊지 않았구나. 항상 곡물밥을 하는 엄마가 하얀 찹쌀밥에 팥이 군대 군대 박힌 밥을 했다. 왠일로 팥을 넣었냐 물어보니. 팥이 악귀를 쫒는다는 엄마. 이렇게 깊은 뜻이!



나는 엄마생일을 깜빡해도(음력인지라..) 자식생일은 잊지 않는 엄마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