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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Oct 19. 2018

미술심리라...

D28_1018

느긋느긋 출근길



9호선 급행을 하나 보내고 일반 전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왜 9호선에는 의자가 없는 거지. 기둥에 몸을 기대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 여성이 스리슬쩍 다가온다. 무슨 종이를 들고 있는데 자기는 심리학 공부하는 학생이다. 간단하게 종이 한 장만 작성해 달라고 한다.


나는 밖에서 모르는 사람이  물건을 팔든, 서명을 해달라고 하든, 도를 아시냐 묻든, 대부분은 쌩하게 거절하는 편인데, 이상하게 이날은 이 여성이 하는 말을 초반에 거절하지 않고 잠자코 듣고 있었다. 어차피 전철이 오려면 몇 분 걸린다. 그 여성도 이 잠깐의 시간을 보고 나에게 파고들었다.


빽빽한 지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동그라미, 세모, 네모, S 이런 게 그려진 종이였다. 이름과 나이를 적고, 휴대폰 번호와 주소를 동까지 적었다. 내가 왜 이런 거까지 적어야 하냐고 물으니 진짜 밖에서 작성 해온 게 맞는지 적는 거뿐이라고 랜덤으로 확인 전화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름, 핸드폰 번호를 가짜로 적었어야 했는데 순순히 적어버린 걸 후회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혈액형과 종교를 체크했고, 기질을 알아본다며 물, 불, 바람, 흙 중 좋아하는 순서대로 체크를 했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거지!'


세모, 동그라미, 네모, S를 선호하는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고 종이에 그리라고 했다. 나는 동그라미를 1순위로 선택했고, 종이에 원 두 개를 큼지막하게 그리고 가운데 점을 찍었다. 그 여성은 뭔가 알았다는 듯  "오!" 이런다. 네모를 1개 그리고 세모를 1개, S는 작게 하나 그렸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지...'


여성은 빠른 내 손놀림을 보며


"성격이 매우 급하시네요~" 


라고 했다.


"네 맞아요 ㅋㅋ"


나는 성격이 급한 게 맞다. 그리고 내 신상을 솔직히 적은 걸 내심 후회하고 있었다. 거절했어야 했는데... 후회하며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했다. 이게 도대체 뭔지 매우 궁금한 상태다. 학교랑 전공을 물어봤다.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건데 [미술심리]라고 말했다. 이런 심리테스트 같은 거 좋아해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내가 관심 있어 하는 걸 보더니 결과를 알고 싶으면 나중에 전화를 할 테니 시간 내서 만나자고 한다.

전화로만 알려줘도 좋겠구먼. 굳이 따로 시간 내서 만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난 모든 낯선 사람을 불신한다.


"그냥 대충이라도 말해봐요. 내 그림에서 뭐가 보이는지"


여성이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하는 말. 


"사람에게 상처 입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현재 목표를 크게 세웠지만 잘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게 방법을 못 찾아서 그럴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몰라요."


"어때요 맞는 것 같나요?"


"아 네;;;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타로카드 해석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꿈보다 해몽인 것 같은데요)"


"tv에서 아동심리치료 이런 거 나오는 거 봤어요. 관심은 있지만 막상 해보니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니에요~  저도 해보고 정말 좋아서 공부하는 건데 공부하다 보면~"



띵띵 띵띵-



전철이 왔다. 나는 전철을 바로 탔다. 그 여성은 나보고 성격이 좋으시다며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아... 번호를 틀리게 적었어야 했는데...'



   TV에서 미술심리 전문가가 나와 그림만 보고 상처받은 아이의 심리를 파악하는 장면을 보면, 그럴듯하다. 저걸 보고 어찌 마음속을 아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내가 별생각 없이 그린 동그라미, 네모, 세모를 보고 내 마음을 추측하는 모습을 직접 보니,


'사람한테 상처 한번 안 입은 사람이 어디 있고, 목표하는 것마다 족족 이루어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이 여성의 말은 누구한테나 적용될 수 있는 말 같은데...'


그 여성이 해석한 말들에 딱히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여성은 공부하는 학생이니까  해야 하는 과제를 잘 마쳤기를 빈다. 지하철을 돌아다니며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거절당하고, 이런 거 나는 정말 하고 싶지 않다. 오늘은 설문지 몇 개나 성공했으려나..

그 여성의 전화가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미술심리라....'





추가글
친구가 내글 보더니 그거 신천지 수법이라고 절대 만나면 안된다고 한다. 검색해보니 진짜네.. 심리테스트를 가장해서 사람들.. 꼬시는구나 ㅋㅋㅋㅋㅋㅋㅋ 어따대고 미술심리를 들먹이는지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속았다.. 속았어... 내가 동그라미 그린 시간이 아깝다.
다음부터는 무조건 단호박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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