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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Nov 10. 2018

붕어빵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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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회사 앞에 붕어빵 미니 트럭이 왔다.  붕어빵이 나타나는 걸 보면 겨울이 오긴 왔구나.

 오늘은 입동. 겨울이 왔음을 알리는 붕어빵. 배도 출출하고 크림 붕어빵 좀 먹어볼까~ 하고 다가갔는데 4개에 2천 원이라고 적혀있는 종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3개에 천 원이면 사 먹었을 텐데' 


괜스레 빈정이 상해서 사 먹지 않았다. 그래. 기름값도 오르고 식재료비도 오르고 최저시급까지 올랐는데 붕어빵이라고 안 오르고 배기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개 천 원, 4개 천 원, 3개 천 원에서 이제는 2개 천 원까지 가격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 아니 천 원에 먹을 수 있는 개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분명 한 끗 차이인데 같은 가격에 갈수록 살 수 있는 개수가 준다는 건 사람을 참 씁쓸하게 만든다. 내가 나이가 먹어 가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이제 천 원 가지고 살 수 있는 건 별로 없다.  



해마다 붕어빵을 볼 때면 태초의 기억이 있던 그때 그곳으로 순간이동한다.



내가 4살? 5살이었을까? 1980년대 말, 붕어빵 가격은 2개에 100원이었다. 붕어빵 하나에 50원!.

장소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시장이었던 것 같은데.. 엄마가 준 100원으로 혼자 50원짜리 붕어빵 두 개를 사서 비닐봉지에 담아 엄마가 있는 곳으로 갔다. 엄마는 어디 가게 안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하면서 달려가다 가게 입구에서 넘어졌다. 그리고 가계 문턱 계단 모서리에 이마를 박았다.

위치는 딱 왼쪽 눈썹 바로 위쪽 이마. 위치가 조금만 빗나갔다면 눈썹에 상처가 났을지도 모른다.(힙합 스웩이 느껴졌을지도..) 눈을 다쳤거나 코가 부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살면서 가장 크게 다쳤던 기억이 이때 넘어진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운이 정말 좋았다.



엄마는 어린 나를 옆으로 들어앉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중간에 약국에서 솜을 받아 피를 철철 흘리고 있는 내 이마를 지혈했다. 

병원으로 달리고 있는 엄마 몸에  툭툭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넘어져서 이마가 깨졌는데도 붕어빵 봉지를 손에 꼭 쥐고 있었던 나. 엄마가 버리라고 소리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다.



 엄청 울었던 기억밖에 없다. 병원 침대에 누워 이마를 5바늘 꿰맸다. 간호사들이 나를 둘러싸고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누르고 조명은 밝고, 그 분위기가 너무 공포스러워서 많이 운 것 같다. 실제로 이마가 찢어져서 아팠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온몸이 붙들려 이마를 꿰매면서 침대 밖으로 손을 내밀고 엄마를 계속 부르며 손을 잡아달라고 했다. 따듯한 손이 내 손을 잡아줬다. 따듯한 손의 온기에 안도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손은 엄마가 아니라 간호사 언니였다. 엄마는 저만치 떨어져 안절부절못하면서 치료가 다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겠지.



엄마랑 손을 잡고 병원을 나왔다. 큰 차도가 왼편에 있고 길게 이어진 인도 걸었다. 엄마가 달려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데 땅바닥에서 내가 버린 붕어빵 봉지를 발견했다. 나는 붕어빵을 도로 가져가고 싶었다. 아까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매몰차게 그냥 가자고 또 사준다고 했다.

 그 후에 붕어빵을 다시 사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냥 붕어빵을 샀고, 넘어졌고, 병원에서 이마를 꿰맸던 기억만큼은 아직도 생생하다. 30년 전 나의 가장 어린 시절 기억이다.


 눈을 감으면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눈을 뜨면 눈썹 위쪽에 흉터 자국이 길게 한 줄 살아난다. 눈썹 길이만큼 긴 흉터다. 엄마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레이저로 한번 슥~ 밀면 된다고 쉽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어도 엄마는 내 흉터를 지워주지 않았다. 나도 딱히 신경 쓰고 살지 않았다. 화장도 하고 앞머리 있으면 티도 잘 안 나고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으니까. 또 누구 하나 내 흉터를 먼저 발견하고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한가지 께름칙한 게 있다면 관상에서 얼굴에 흉이 있으면 좋지 않다.라는 글을 본적 있어서 이마 쪽에 길게 흉이 나있다는 게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한다. 그런데 내 상황이 안 좋을 때 내 이마에 흉 때문이라는 생각은 단한 번도 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붕어빵이 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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