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02 (D-47)
비행기를 탈 때면
비행기, 공항이라는 단어는 설렘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관할 것 같다.
[공항 가는 길]이라는 문장을 떠올리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일찌감치 공항에 도착해서 티켓을 발권하고 수속을 끝내는 과정까지 긴장의 연속이지만 모든 것을 마치고 출국장에 들어가면 마음이 그렇게 설렐 수가 없다. 이제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로 날아가는 일만 남았다.
언제나 설레고 떨리는 비행이지만 나는 항상 이착륙할 때 [죽음]을 상상한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느껴지는 속도감, 비행기 머리가 하늘로 향하고 좌석의 각도가 급격히 기울어지면 내가 마치 로켓을 타고 중력을 거슬러 지구 밖으로 나가는 우주비행사가 되는 기분이 든다. 엄청 긴장되는 순간이다.
비행기는 이착륙할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고 알고 있다. 그 속도감과 진동을 견디면서 생각을 한다. 만약 비행기에서 사고가 난다면 어떻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데 죽음이란 단어도 생각해보는 유일한 시간이다. 평상시에는 딱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 없다. 미디어 속의 사건 사고로 죽음을 많이 접하지만 내가 직접 느끼기엔 간접적인 느낌이다. 비행할때면 온몸으로 그 위험함을 느끼면서 내가 들은 보험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하고 비행기 좌석 위에서 산소마스크가 떨어지는 상상도 해보는데 상상 속 이미지는 영화에서 봤던 단편적인 모습들이겠지. 비행기가 안정화되고 벨트를 풀어도 된다는 신호가 울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때부터 [죽음]에 대한 생각에선 멀어지고 도착할 그곳에 대한 [설렘]으로 전환된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도 동일한 생각이 반복되는데 비행기가 정상적으로 공항 안으로 진입 못하는 상황이라던지 바닥에 착륙할 때 비행기 바퀴가 빠지지 않는 상황이라던지, 바퀴가 바닥에 제대로 닿지 않고 부러지는 상황이라던지 온갖 안 좋은 상상을 다해보는 것 같다.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스튜어디스가 안전벨트를 한 번씩 체크하고 착륙 준비에 들어가면 창밖으로는 도착지의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하고 여행지로 도착하는 상황에서는 설렘이, 여행을 끝나고 인천공항으로 도착할 때는 안도감이 크게 찾아온다. 비행기 사고가 그렇게 빈번히 발생하는 게 아님을 알지만 언제나 비행은 설렘과 불안한 마음이 공존하는 듯.
비행기의 바퀴가 지면에 닿아 크게 덜컹거리며 빠른 속도로 달려나가다가 서서히 진동이 잦아들고 안전하게 도착했을 때면
'아 무사히 도착했구나. 살아서 돌아왔구나..'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일상생활에서 생각해보지 못하는 감정(죽음까지) 순간순간 느낄 수 있는 게 비행을 하는 순간인 것 같다. 내가 죽음에 닿아 있음을 느끼고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고 감사하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