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랑 Jul 30. 2022

#9 다가오세요, 아주 천천히요.

고양이라는 세계

    나는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다. 어렸을 때, 모든 동물을 무서워하던 언니 때문에 부모님은 결단을 내리셨다. 묘책이라 하면, 친척 집에서 강아지를 데려와 우리집에서 잠시 두어 달 키운 것이었다. 언니는 웃기게도 그때의 기억 덕분에 강아지'만' 안 무서워하게 되었다. 여전히 강아지를 제외한 모든 동물들을 무서워한다. 집에서 동물을 키워본 기억은 그 기억이 전부이다. 당시 주변에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들이 종종 있었다. 친구들의 강아지나 동네에서 마주치는 산책하는 강아지는 대개는 먼저 꼬리를 흔들고 다가와줬고, 그중 꽤 여럿은 먼저 배를 뒤집으며 애교를 부렸고 초면임에도 상당한 친근함을 표했다. 그래서 나에게 애완동물이란, '금방 친해지는 존재'였다. 이런 생각을 철저히 깨부숴준 동물이 나타났다. 바로, 고양이다.



    절친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네 집에는 고양이가 있다. 친구의 친구가 길냥이를 구조했지만, 키울 여건이 마땅치 않아서 친구가 임보(임시 보호)를 시작했다가, 진짜 임보(임종까지 보호)를 하게 된 것이다. 고양이의 이름은 '냥이'이고 종은 '코숏'이다. 처음 친구집에 놀러 갔을 때는 냥이를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내가 평소에 알고 있던 애완동물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방인인 나를 경계하며 몸을 잔뜩 올리고 털을 빳빳이 세우며 꼬리를 두배, 세배 부풀린 모습이었다. 내가 다 불편해질 정도였다. 나는 고양이라는 동물에 대해 전혀 모르면서, 먼저 다가오지 않는 동물의 모습에 '그래! 니가 나 싫어하니까 나도 너 싫어!' 이런 유치한 마음마저 먹었었다.


한창 꼬리를 부풀린 모습


    누가 그랬던가, 고양이는 '요물'이라고. 열 번을 넘게 가도 경계를 풀지 않더니, 어느 날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종아리에 무언가 따듯한 게 스윽하고 지나갔다. 너무나 놀라 "어머! 얘가 내 다리로 지나갔어!"라고 크게 소리쳤다. 친구가 말하길 냥이가 그렇게 자신의 몸을 비비는 것은, '너 내 거야.'라는 뜻이라고 말이다. 열 번 만에 자신의 마음을 연 것이다. 처음으로 몸을 비비자 그동안 토라진 마음이 언제 그랬냐는 듯 흘러내렸다. 일부의 강아지가 나에게 쉽게 다가온다고, 모든 애완동물들이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건 큰 착각이었다. 냥이에게는 아주 천천히 다가가야 했고, 거리를 두고 시간을 가지자 냥이가 먼저 다가와준 것이다. 그 후로는 친구집에 가도 냥이를 볼 수 있다. 먼저 살갑게 다가오진 않지만, 아주 천천히, 천천히 친해지는 중이다.



* 사진은 모두 친구 어머니가 찍으셨습니다. 꼭 써달라고 하셨어요. ^^


- 파랑 -

오늘 오랜만에 친구집에 가서 냥이도 오랜만에 봤습니다. 전혀 피하지 않고 편안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습니다.

울면서 썼어도 즐겁게 읽히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현재 편두통이 생길 정도로 고민하며 매일 에세이 한 개를 브런치에 올리는 '50일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7 철석같이 믿지 마세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