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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Sep 12. 2022

흙 묻은 친구들

장바구니에 '흙'이 추가되었습니다.

    

    19년 여름에 독립을 했으니, 이제 만 3년이 꽉 채워 넘어간다.


    '집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직접 잘해먹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글보글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란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에 스쳤다. 배달 어플을 켜 한 시간 넘게 들여다봤지만, 야채와 두부가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는 보이지 않았다. '직접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마트에 가는 길에 넣을 건 넣어야 맛있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된장찌개의 기본 재료를 떠올린다. 애호박, 양파, 파, 무, 두부... 된장과 육수를 낼 멸치는 본가에서 훔쳐온 게 있으므로 일단 야채들과 두부만 사서 된장찌개를 끓이면 독립 초반엔 양 조절을 할 줄 몰라 한 번에 2-3인분을 만들었었다. 아침으로 된장찌개에 밥, 점심에도 된장찌개에 밥, 저녁에도 된장찌개에 밥... 을 먹을 순 없어 아침, 점심 두 끼를 먹고 남은 된장찌개를 냉동실에 얼리곤 했다. 그럼 그 위로 냉동식품, 아이스크림 등이 쌓여서 된장찌개의 존재는 저 멀리 잊혔다.


쉽게 해먹기 좋았던 파스타와 샌드위치..를 먹다보면 밥이 무척 그리워졌었다.


    냉동실의 남은 야채는  어떻고. 매일 끼니를 요리해먹으면 애호박, 양파 등은 금방 쓰겠지만 독립 초기에는 '나는 자유다!'라는 기분에 취해 본가에선 먹지 못했던 배달 음식과 외식을 무척 많이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냉장실에서 혼자 토라지다 못해 썩어버린 야채들.. 고약한 냄새에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충격적인 비주얼까지. 이런 일을    겪다 보니 '이제는  먹자...' 하고  바깥 음식을 한참 먹게 되었었다.


배달로 자주 먹었던 곱창떡볶이와 치킨들...^^;


    푸릇한 20대 후반에서 이제는 건강이 정말 중요해진 30대가 되었다. 사 먹는 걸 멈추고, 다시 집에서 밥을 열심히 해 먹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야채가 냉장실에서 너무 금방 죽는 거다. 손질이 귀찮아서 샀던 절단 무, 세척 양파, 손질 대파 등등... 엄마가 어느 날 스윽 건네신 한 마디.


"흙 묻은 걸로 사. 세척돼서 오는 게 싱싱할까, 흙 묻은 게 싱싱할까?"


    이왕 건강을 챙긴다고 밥을 열심히 해 먹고 있었는데, 아뿔싸. 야채의 싱싱함보다는 간편함에 이끌렸던 거다. 그 후로 아주 아주 오랜만에 흙이 묻은 양파, 대파, 당근을 샀다. 날 잡고 시간을 내어 부엌에 서서 다듬는 작업을 했다. 흙을 털고, 물로 씻어내고, 겉껍질을 벗겨내고... 그냥 야채 손질을 할 뿐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대파의 흙이 묻은 겉껍질을 벗기니 짠 하고 나온 뽀얗고 하얀 대파가 예쁘고, 당근의 흙을 씻어낸 후 필러로 사락사락 벗기니 쨍한 주황색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자연의 다양한 색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스트레스 완화에 좋다는 기사가 생각이 났다. 또한 동시에, 내가 스스로를 잘 챙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를 챙기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렇게 또 새로운 방법을 하나 알게 되었다.


뽀득 뽀득 대파
쨍하니 예쁜 당근




- 파랑 -

흙 묻은 양파를 샀는데, 조금 과장해서 거의 아기 머리만 한 크기의 양파가 왔습니다. 반 개 썰어서 볶았는데 웍을 가득 채웠을 정도로 컸어요. 오일만 살짝 두르고 볶았는데 설탕처럼 달았습니다. 흙 묻은 양파 친구 최고!

양파의 거대함이 보이시나요? :)

현재 매일 한 개의 에세이를 써서 매일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100일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 50일을 넘겼으니 후반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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