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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Jul 27. 2022

엄마! 할머니가 없어졌어!

쑥개떡의 추억

    때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의 일이다. 몸이 자주 아프시고 체력이 매우 약하셨던 당시의 엄마는, 아픈 어른의 치트키인 '엄마 찬스'를 종종 쓰곤 했다. 우리는 서울에 살았고 할머니는 대전에 계셨기 때문에, 서울과 대전은 기차를 타면 금방 오는 거리이기도 하다. 서대전역 또는 대전역에서 서울 영등포역까지. 할머니 마중을 나가던 영등포 롯데백화점, 그리고 영등포 역사는 지금도 눈을 감으면 훤히 기억날 정도이다. 무더운 여름, 초복과 중복 사이에 나도 낳고, 언니도 낳으신 엄마는 특히 여름에 부쩍 힘들어하셨다. 그래서 나의 여름 기억들에는 할머니와 함께 한 추억 조각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다.


    그날도 무더운 여름이었다. 놀이터에서 구슬땀을 뻘뻘 흘리며 신나게 놀고 집에 들어왔다. 할머니가 분명 맛있는 저녁밥을 준비하고 계실 줄 알았는데, 집에는 엄마만 계셨다.

'어? 할머니 어디 가셨지?'

    화장실 문도 열어보고, 베란다 문도 열어보고.. 할머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계셨다. 침대에서 주무시던 엄마를 세차게 깨웠다.

"엄마! 엄마! 일어나 봐! 할머니가 없어졌어!"

    잠에서 막 깬 엄마는 아마 장을 보러 가신 거 아닐까, 하며 크게 걱정하지 않으시는 눈치였다. 할머니가 서울에 종종 오시긴 했어도, 우리가 사는 동네의 지리를 완벽하게 아시진 않을 텐데..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집에서 시계를 쳐다보며 기다렸다가, 복도에도 나가봤다가, 엘리베이터 앞에도 서 있고..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현관문이 열리고 할머니가 드디어 나타나셨다. 양손 가득 검은 봉지를 들고서 말이다.

"할머니! 어디 갔었어! 엄청 기다렸잖아! 근데 이건 뭐야?"

    할머니가 봉지 가득 담아오신 건 다름 아닌 쑥이었다. 아파트 단지 지천에 널린 쑥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어 벼르고 벼르다 나가서 한참을 캐오신 거였다. 어린 마음에 쑥 맛도 모르고, 할머니를 걱정했던 마음에 혼자 팽하고 토라져있었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아랑곳 안 하시고 혼자 마법을 부리듯 쑥개떡을 만드셨다. 방금 쪄서 김이 막 나던 쑥개떡. 온통 초록색에 군데군데 이파리인지 줄기인지 풀이 보이기도 하고.. 내 손바닥만 한 게 퍽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입에 넣는 순간, 이럴 수가. 그 자리에서 쑥개떡 다섯 장을 개눈 감추듯 해치워버렸다. 손녀가 맛있게 먹는 그 모습을 보시려고 한여름에 쑥을 한창 캐오신 거겠지 싶다.

    

    지금도 쑥개떡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 맛있다고 유명한 떡집에서 쑥떡을 사 먹어보아도 그때의 그 맛은 찾을 수가 없다. 이제는 내가 장성한 성인이 되어 쑥을 캐서 해먹을 수도 있고 고오급 떡집에 가서 쑥떡만 한 박스를 살 수도 있지만 말이다. 꿈에서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그때로 돌아가 할머니와 함께 쑥개떡을 빚고 싶다.



- 파랑 -

이번 글은 쓰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고 말았습니다. 울면서 썼어도 즐겁게 읽히는 글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현재 머리를 쥐어뜯으며 매일매일 하루에  개의 에세이를 브런치에 올리는 '50 챌린지'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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