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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랑 Sep 14. 2022

눈물 젖은 김치라면

잊을 수 없는 그 맛

    수년 전, 언니와 내가 독립한 지금과 다르게 온 가족이 모여서 살 때의 일화다.


"내일은 내가 근사한 요리를 선보이겠어!"

    언니는 비장한 포부를 공표한 후, 토요일부터 분주한 듯했다. 생닭을 사 오고, 부위별로 손질을 정성스레 하고, 알 수 없는 파우더와 우유가 등판을 하고.. 그렇게 꼬박 하루를 재운 닭을 일요일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또 어떤 밑 작업을 하는 듯했다.

    언니를 제외한 가족 모두는 아점으로 근사한 언니의 요리를 먹을 기대에 부풀었다. 아침부터 물만 마시고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요리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오븐에서 맛있게 익어져 나올 닭구이를 기대하며. 하지만 시간은 오전 10시가 지나고.. 한 시간 더 지나 11시. 그보다 시간이 더 지나도 언니의 요리는 완성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븐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닭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요리를 준비하는 언니가 행여나 기분이 상할까 봐 엄마도 아빠도 나도 입을 꾹 닫고 부엌만 쳐다보기를 두어 시간이 지나.. 오후 12시가 다 돼서야 언니의 요리는 끝이 났다.



"짠!"

    비주얼은 아주 훌륭한 닭구이였다. 엄마도 아빠도 나도 모두 배가 고플 대로 고픈 상태였으므로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우와! 맛있겠다! 잘 먹을게!"

    감사 인사를 빼먹지 않고 드디어 닭과의 뜨거운 만남을 하려는 순간.


'어.. 싱겁다...?'

    하루 넘게 재운 닭이 무색하리만치 닭에선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무'의 맛이었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엄마, 아빠를 보니 무척 맛있게 드시고 계신 것이다...! '내가 입맛이 없는 건가...?', 갸우뚱하며 내 몫의 닭고기를 최대한 맛있게 먹는 연기를 하며 해치웠다.

"언니! 너무 맛있었어! 어떻게 한 거야?" 

    고생한 언니를 위해 폭풍 칭찬을 하며 온 가족은 닭구이를 깨끗하게 남김없이 먹었다.


    묘한 물음표만이 가득했던 식사 시간이 끝나고, 언니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며 외출을 했다. 아빠가 슬그머니 안방에서 나오시더니, "혹시 라면 먹을 사람?"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그 순간, 거실에 있던 나와 엄마는 정말 문자 그대로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방금 닭을 실컷 먹은 사람이 라면을 먹자고 하다니. 그렇다면?

"엄마, 아빠, 혹시 나만 맛없었어?"

    엄마도, 아빠도, 나도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마음이었던 것이다. 맛이 없지만 고생한 언니를 위해 최대한 '맛있게 먹는 척'을 하며 닭을 모두 해치우고, 언니가 외출하기만을 기다린 것이었다. 언니가 없는 집에서 우리 셋은 김치 라면 3인분을 푸짐하게 끓여서 첫 끼를 오후에서야 겨우, 하지만 눈물 나게 맛있는 라면을 먹었다.





- 파랑 -

몇 년 전 일이라 사진 찾기가 어려워 최대한 비슷한 사진으로 외부에서 가져왔습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에피소드는 언니에게 허락을 맡고 올렸음을 밝힙니다.     번만 맛이 없었을 뿐이에요. 언니는 평소에 요리를 무척 잘한답니다.

현재 매일 한 개의 에세이를 써서 매일 브런치에 올리는 '100일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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