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몰랐던 그 남자의 취향
"아빤 다 잘 먹어~"
평생 들어온 말이다. 아빠는 라면도 잘 먹고 한정식도 잘 먹고 심지어 아웃백도 잘 먹는다. 크림소스도 느끼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잘만 드신다. 그래서 아빠는 뭐든지 잘 먹는 사람, 요즘 표현으로 '막입'인 줄 알았다. 반대로 엄마는 아빠보다 오백 배는 까다로운 식성을 갖고 계신다. 싫고 좋음이 분명하시며 늘 새로운 요리 만들기에 도전도 잘하시기에 '엄마는 미식가'라는 인식이 내 안에 강하게 있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샤퀴 테리(가공육들) 플래터를 포장해서 본가에 가져간 적이 있었다. 그중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트러플이 들어간 '트러플 초리조'라는 품목도 있었다. 세계 3대 진미 중 하나인 트러플은 버섯 주제에(?) 매우 높은 몸값을 자랑하며 레스토랑에서도 메뉴에 '트러플'이라는 이름이 붙으면 타 메뉴보다 가격이 확 올라가는 그런 요리 재료다. 짭조름하고 기름진 초리조를 씹으면 코에 트러플 향이 감도는 게 특유의 향이 참 좋다.
엄마, 아빠랑 식탁에 둘러앉아 와인 한 잔과 샤퀴 테리를 함께 먹고 있는데 아빠가 "이게 제일 맛있네."라고 하셨다. 바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 트러플 초리조였다.
"엄만 트러플 무슨 맛인지 모르겠어~"
"아빠! 트러플 좋아해?!"
눈이 똥그래져 묻는 내게 엄마가 말하셨다.
"전에 네가 사 온 트러플 감자칩 그것도 아빠가 다 먹었어~"
엄마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늘 허허 웃고 뭐든 잘 먹는 아빠기에, 그런 아빠가 트러플을 '특히 더' 좋아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알고 보니 아빠도 미식가였던 것이다.
또 다른 날은 내가 좋아하는 빈브라더스라는 카페에 아빠랑 함께 갔을 때였다. 아빠는 블랙커피를 좋아하시는 편이기에 왠지 산미 감 있는 원두를 싫어하실 거라고 생각해서 고소한 원두에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나는 평소 좋아하는 조합인 산미 감 있는 원두의 따듯한 플랫화이트(라테보다 우유 양이 적고 진함)를 시켰었다. 이내 커피 두 잔이 나오고, 아빠가 플랫화이트를 드셔 보시더니 "이거 꼬소하니 괜찮네~"하시면서 홀짝홀짝 플랫화이트 한 잔을 다 드셨다.
"아빠, 아메리카노만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몰라서 못 먹지 뭐~"
아빠도 취향이 분명히 있었고, 굉장히 예민한 혀를 소유한 미식가였다. 평생에 처음 알았다. 산미 감 있는 고소한 플랫화이트를 좋아하고, 트러플도 좋아하는 남자. 앞으로도 아빠가 좋아하는 게 뭔지 계속 계속 발굴해낼 예정이다. 또 다음, 아빠의 취향은 무엇일까?
- 파랑 -
https://brunch.co.kr/@creatorparang/106
지난번 쿠키 사건으로 감사하게도 다음 메인에 올라갔습니다. 아빠는 아직도 제 계좌를 모르신답니다.
뇌 속의 온갖 방을 열어보며 참신한 글감이 없을까 매일 매시간마다 찾고 있습니다. 현재 매일 한 개의 에세이를 써 매일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50일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