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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여름에 독립을 했으니, 이제 만 3년이 꽉 채워 넘어간다.
'집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직접 잘해먹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글보글 끓인 구수한 된장찌개가 먹고 싶다...!'란 생각이 불현듯 머릿속에 스쳤다. 배달 어플을 켜 한 시간 넘게 들여다봤지만, 야채와 두부가 듬뿍 들어간 된장찌개는 보이지 않았다. '직접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마트에 가는 길에 넣을 건 넣어야 맛있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며 된장찌개의 기본 재료를 떠올린다. 애호박, 양파, 파, 무, 두부... 된장과 육수를 낼 멸치는 본가에서 훔쳐온 게 있으므로 일단 야채들과 두부만 사서 된장찌개를 끓이면 독립 초반엔 양 조절을 할 줄 몰라 한 번에 2-3인분을 만들었었다. 아침으로 된장찌개에 밥, 점심에도 된장찌개에 밥, 저녁에도 된장찌개에 밥... 을 먹을 순 없어 아침, 점심 두 끼를 먹고 남은 된장찌개를 냉동실에 얼리곤 했다. 그럼 그 위로 냉동식품, 아이스크림 등이 쌓여서 된장찌개의 존재는 저 멀리 잊혔다.
냉동실의 남은 야채는 또 어떻고. 매일 끼니를 요리해먹으면 애호박, 양파 등은 금방 쓰겠지만 독립 초기에는 '나는 자유다!'라는 기분에 취해 본가에선 먹지 못했던 배달 음식과 외식을 무척 많이 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냉장실에서 혼자 토라지다 못해 썩어버린 야채들.. 고약한 냄새에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충격적인 비주얼까지. 이런 일을 한 두 번 겪다 보니 '이제는 사 먹자...' 하고 또 바깥 음식을 한참 먹게 되었었다.
푸릇한 20대 후반에서 이제는 건강이 정말 중요해진 30대가 되었다. 사 먹는 걸 멈추고, 다시 집에서 밥을 열심히 해 먹고 있는 요즘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야채가 냉장실에서 너무 금방 죽는 거다. 손질이 귀찮아서 샀던 절단 무, 세척 양파, 손질 대파 등등... 엄마가 어느 날 스윽 건네신 한 마디.
"흙 묻은 걸로 사. 세척돼서 오는 게 싱싱할까, 흙 묻은 게 싱싱할까?"
이왕 건강을 챙긴다고 밥을 열심히 해 먹고 있었는데, 아뿔싸. 야채의 싱싱함보다는 간편함에 이끌렸던 거다. 그 후로 아주 아주 오랜만에 흙이 묻은 양파, 대파, 당근을 샀다. 날 잡고 시간을 내어 부엌에 서서 다듬는 작업을 했다. 흙을 털고, 물로 씻어내고, 겉껍질을 벗겨내고... 그냥 야채 손질을 할 뿐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대파의 흙이 묻은 겉껍질을 벗기니 짠 하고 나온 뽀얗고 하얀 대파가 예쁘고, 당근의 흙을 씻어낸 후 필러로 사락사락 벗기니 쨍한 주황색이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자연의 다양한 색을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스트레스 완화에 좋다는 기사가 생각이 났다. 또한 동시에, 내가 스스로를 잘 챙기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를 챙기는 방법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렇게 또 새로운 방법을 하나 알게 되었다.
- 파랑 -
흙 묻은 양파를 샀는데, 조금 과장해서 거의 아기 머리만 한 크기의 양파가 왔습니다. 반 개 썰어서 볶았는데 웍을 가득 채웠을 정도로 컸어요. 오일만 살짝 두르고 볶았는데 설탕처럼 달았습니다. 흙 묻은 양파 친구 최고!
현재 매일 한 개의 에세이를 써서 매일 브런치에 업로드하는 '100일 챌린지'를 하고 있습니다. 50일을 넘겼으니 후반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