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다이닝을 다녀왔습니다.
커피 한 잔.
누군가에게는 그날의 업무를 위해 의무적으로 마시는 사약 같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온 마음이 담긴 음료 그 이상일 수 있다.
커피 다이닝. 커피가 커피지, 다이닝은 뭐야? 커피에, 커피에 의한, 커피를 위한. 커피로만 이루어진 코스 요리이다. 바리스타 그레이님을 알게 된 건 빈브라더* 라는 카페에서였다. 매달 새로운 원두를 내는 게 이 카페의 가장 큰 특징이었는데, 수년 전 강남 매장에 신기하게도 '커피 오마카세가 있었다. 오마카세라 하면, 쉐프가 손님에게 한 점 한 점 즉석에서 내어주는 초밥만 생각했는데. 커피 오마카세라니 너무나 신선한 발상이었다. 당시엔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터라 커피 코스만 몇만 원을 주고 먹을 수 없어, 내 꼭 돈을 벌면 커피 오마카세를 먹으리라, 굳게 다짐했었다.
시간이 흐르고 돈을 버는 나이가 되자, 이럴 수가, 커피 오마카세가 사라진 것이다. 슬픔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커피 시그니처 코스라는 이름으로 재개되었다. 바리스타 그레이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섬세함으로 한 코스 한 코스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셨고, 그것을 맛보는 나는 마치 극진한 산해진미를 먹는 기분마저 들었었다.
그레이님께서 퇴사하신 후, 자신만의 커피 바를 차리신 것이다.
이름하야 '노리밋커피바'.
흔한 카페가 아닌 커피바 라는 것도 매력적인데, 심지어 노리밋 이라니! 한계가 없다니!
벼르고 벼르다 드디어 방문하였다.
to start : 사과주스, 콜드브루, 스테비아, 탄산수
가니쉬 사과를 먼저 먹고, 음료에 콜드브루를 부어서 마시는! 칵테일 같이 예뻤고, 사과와 콜드브루의 조화가 좋았다. 새콤달콤해서 시작으로 딱 좋았던.
appetizer : 감, 커피체리, 생크림, 무스코바도
'가을'을 생각하며 구상하셨다고 하는데, 연시로 만든 따끈한 수프라니! 너무 새로웠다. 달달한 감의 맛이 혀에 맴돌고, 커피체리티의 부드러운 단 맛이 은은했다.
main : 바리스타가 추천하는 원두, 브루잉
드디어 메인! 새콤함으로 시작해서 달콤함으로 이어지던 터라 커피 생각이 절로 났는데,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오늘의 커피는 독일 베를린의 'The barn'이란 곳에서 로스팅한 엘살바도르 아빠네까 라는 원두였다. 한 입 머금자 딸기향이 확 느껴졌다.
seasonal dish : 보늬밤, 락토프리, 통밀 쿠키, 마쉬멜로우
'가을'을 떠올리며 보늬밤을 생각해내셨고, 흔한 보늬밤조림과는 다른 걸 하고 싶어 몇날며칠 고심하며 만들어내셨다는 보늬밤무스! 단 밤 맛이 그대로 느껴졌고, 안에 있는 통밀 쿠키가 씹는 즐거움을 주었다. 따듯한 브루잉 커피와 함께 먹고 마시니 금상첨화!
dessert : 디카페인 원두, 무가당 크림, 브리틀
단 걸 먹었으니 이제 맛이 없을 법도 한데, 차~가운 아이스크림에 혀가 다시 한번 살아났다. 이탈리아의 썰어먹는 아이스크림을 보고 착안하셨다는 디저트. 차갑고, 커피 향이 풍부하며, 위에 깔루아를 살짝 얹어서 찐한 카라멜향과 달콤함을 느낄 수 있었다.
커피 한 잔과 디저트 한 입에 감탄을 연발하며 맛있게 먹고, 마셨다. 미식을 하며 이걸 만들어낸 사람의 고뇌가 느껴진다는 것은 그만큼 진심을 담았다는 뜻일 거다. 이런 커피바가 널리 널리 알려졌으면. 커피를 마시고 왔다는 표현보다는 진심을 마시고 왔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하다. 이제는 바리스타가 아닌 사장님! 사장님의 진심, 잘 마셨습니다.
+ 이 코스에 함유된 카페인의 총량은 에스프레소 샷 기준 1.5샷뿐이라고 한다.
+ 이렇게 거하게 커피 다이닝을 먹고도 아쉬워 따듯한 브루잉 한 잔을 추가로 마시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