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들 사직서 제출해야겠어

기호 0번 홍길동!

by 화문화답

정민은 어느덧 대리로 진급하였다. 동기들보다 빨랐다. 그러나 직급이 달라졌을 뿐 연봉이 크게 오르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은 거의 그대로였다. 하지만 어쨌든 회사에서 승진은 매우 중요하다.


소통과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조직생활이나 독특한 기업문화에도 적응하여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다. 업무 또한 숙달되어 무슨 일이든 혼자 알아서 처리할 정도가 되었다.


홍 차장과 팀장인 권 과장은 여전히 정민을 신뢰하였고 정민도 그들을 믿고 따랐다. 그 사이 기획실에 몇 명의 직원이 새로 들어오고 나갔으며 정민이 속한 기획예산팀에도 일부 변동이 있었다.


모든 것이 평범하고 평온한 나날이었다. 그러나 세상을 보는 시야가 차츰 넓어지면서 정민에게 새로운 고민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이대로 좋은가?'라는 자신의 미래에 관한 본질적 질문 즉, 커리어에 의문이 생긴 것이다.


어느 정도 심리적 여유가 생기면서 입사 동기 모임을 시작하였는데, 그 자리에 다녀오면 그런 생각이 더 커졌다. 그들이 하는 말은 정민이 지금 가는 방향과 다른 곳을 가리켰다.




"신입사원 버릇, 여든 간다. 신입사원은 두 가지 개념을 가져야 한다. 첫째, 자신을 뽑아주고 막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은 회사의 믿음에 화답하여 회사에 기여하기 위한 아낌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둘째, 회사가 무엇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조직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회사 조직은 고객과 돈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므로 어떤 팀이 돈을 가장 잘 버는지, 그 반대 부서는 어디인지 파악해야 한다." (공피고아, 장동인, 이남훈)


돈을 버는 부서가 어디인지 파악하고 그것을 따라가야 동반 성장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달리는 말에 올라타기' 전략이다. 정민은 이런 개념에 확신이 있지는 않았지만, 회사의 주력 업종이 백화점이다 보니 아무래도 백화점 부문으로 나가야 자신의 장래가 더 밝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민은 고민 끝에 인사이동을 신청했다. 홍 차장이 펄쩍 뛰었다. 다시는 그런 말을 입에 담지 말라는 단호함에 더는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그 진심을 깊이 헤아리지 못하고 그것을 불만으로 바꿔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이후 그 일은 정민과 홍 차장만 아는 작은 해프닝(?)으로 잊혀갔다. 그런데 잠잠해지던 불씨에 기름을 붓는 예상치 못했던 사건이 연속하여 발생하였다. 엉뚱하게도 그 해 치러진 총선과 대선이었다.




사장이 회장의 호출이 있거나 그룹 기조실 회의에 참석하는 것을 기획실에서 모를 수가 없다. 관련 자료 없이 맨몸으로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 들어 사장이 소리소문 없이 그룹 회의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마당발이며 해결사인 홍 차장도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언제부터인가 기획실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일상적이던 대부분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무슨 이슈가 생긴 것이 분명했지만, 직원들이 이를 알 수는 없었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해서 업무를 준비하고 있는데 갑자기 회의가 소집되었다. 홍 차장, 팀장 3명 그리고 정민을 포함한 기획실 대리급 직원들이 모였다. 윗분들은 무표정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영문을 모르는 직원들은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하지만 내심 뭔가 올게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회의실에 들어온 하 이사가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더니 무거운 분위기가 부담스러운 듯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대리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네들 사직서 제출해야겠어."




홍길동 국회의원 후보 선거운동이 시작되었다. 정민은 졸지에 회사원이 아닌 선거 운동원이 되었다. 회사 출퇴근 시간과 유사하게 근무(?)하면서 사실상 단순 업무 비슷한 일을 했다. 외부 활동은 주로 후보와 같이 거리 유세를 하거나 지역구를 돌면서 유권자들에게 홍보물을 배포했다.


회사 일처럼 진지하게,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선거가 끝나면 결과와 상관없이 회사로 복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매일 아지트로 삼은 카페에 모여 앉아 성과를 의논하거나 그냥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입당 원서 목표치가 있었는데 나중에는 실적에 쫓겨 각종 트릭을 동원하여 억지로 채워 넣기도 하였다.


선거 결과 A당은 149석을 차지하며 제1당을 유지했지만, 과반수 확보에 실패했다. B당은 97석의 제2당이 되었고, C당은 31석을 가져가 제3당으로 부상했다. 다행히 C당 홍길동 후보는 당선되었다. '아줌마 부대'로 불리는 중장년 여성층의 인기몰이에 힘입은 바가 컸다. 정민은 곧바로 회사로 돌아와 업무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일정 부분 효과를 봤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한 번 학습 효과가 있었기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정민도 첫 번째와는 달리 이번에는 그럴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대선은 총선과 현저히 다른 국면으로 전개되었다. 하 이사는 만약 ○○○ 후보가 당선된다면 회사 복귀가 아니라 C당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본의 아니게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끼어들게 된다는 의미이다. 정민은 그렇게 되는 걸 원치 않았으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이 선거 운동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 유세였다. 각 당은 지난 대선 당시 100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군중 동원 집회를 비판하는 여론을 의식해서 표면적으로는 자제하는 듯하였으나 물밑으로는 여전히 군중 동원에 매달렸다. 일단은 세(勢)를 과시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하늘은 잔뜩 흐려있었다. 낮 기온은 영상을 가리키고 있었으나 광장에 몰아치는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수십만 군중의 열기는 차가운 날씨를 비웃는 듯했다. ○○○ 대통령! ○○○ 대통령! 후보 이름을 외치는 군중의 함성 속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피가 끓어올랐다.


유세가 끝나고 사람들이 전부 해산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정민 일행은 상가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뜨거운 국밥을 먹으면서 '성공적'이었다는 자평과 함께 확신했다. ○○○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고, 자신들은 곧 회사가 아닌 C당사로 출근하게 될 거라고.




백화점 가전 팀 직원들이 지역구 사무실에 대형 TV 모니터를 설치하였다. 총선 때처럼 개표 방송을 보기 위해서 백화점에 진열되어 있던 제품을 가져왔을 것이다.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지난 총선에서 당선된 지역구 홍길동 의원은 중앙 당사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이 TV 앞쪽에 자리 잡았다. 정민은 맨 뒷줄에 앉았다. 당연히(?) 회사의 간부급이나 임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지역구 사무실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모인 사람들은 서로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였고, 얼싸안고 그 간의 노고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곳곳에서 웃음꽃이 피어오르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모름지기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은 ○○○ 후보의 당선을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였다.


당시는 카운트 다운과 함께 6시 정각에 공개되는 '방송 3사 공동 출구 조사'가 없던 시절이었다. 우리나라 선거에서 출구 조사는 1995년 '공직 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의 개정에 따라 처음 허용되었다. 2000년 초반 이후 대통령 선거에까지 확대되었고, 이후 방송 3사 공동 조사 및 발표가 정례화되었다.




오후 6시 투표가 종료되고 개표 방송이 시작되자 지역구 사무실 분위기는 처음과 달리 점점 차갑게 식어갔다. 8시 무렵, 다른 후보의 우세가 보도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10시쯤에는 사실상 승부 확정이라는 말들이 오고 갔다. 12시가 지나 다른 후보의 '당선 확실'이 TV 화면에 뜨자 사무실에는 대형 모니터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3당 합당의 후광을 입은 A당 후보가 42%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 선거를 통해 30여 년 만에 군부 출신이 아닌 대통령이 탄생했으나, 지역주의가 심화하였다는 비판이 있었다. 또한, ○원 복집 사건과 같은 선거 과정에서 벌어진 여러 논란은 한국 정치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었다.


○원 복집 사건은 대통령 선거를 며칠 앞두고 부산의 한 복어 요릿집인 ○원 복집에 당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기관장들이 모여 A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등 불법 선거운동을 모의한 사건이다. 이 모임이 C당 측에 의해 불법 도청되어 세상에 알려지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정민은 다행히(?) 당사가 아닌 회사로 다시 출근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누구도 지난 시간에 관해서 입에 올리지 않았다. 충격보다는 실망이라는 감정이 더 컸다. 패배감에 젖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한동안 떠나 있던 기획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어느새 선거 운동 루틴이 몸에 배어있는지 심리적인 시차가 느껴져 피로감이 몰려왔다.


게다가 정민에게 새로운 의문이 생겼다. '만약 대선에서 ○○○ 후보가 당선된다면 회사 복귀가 아니라 C당에서 일하게 될지도 모른다'라고 했던 하 이사의 말이 떠올랐다. 달리 해석하면 어쨌든 방출 후보에 올랐다는 말이 아닌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여전히 영업부문 전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차에, 적당한 구실을 다시 찾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급기야 다시는 입에 담지 말라는 홍 차장의 충고를 무시하고 정민은 다시 인사이동을 요청했다.


그런 정민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아니면 포기했는지 홍 차장은 더는 정민을 잡지 않았다. 연초에 있을 정기 인사이동 때 발령을 내주겠다며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얘기하라고 했다. 홍 차장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었지만 뭔가 할 말이 남아 있는 듯 한동안 정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드디어 정민이 원하는 백화점 영업 부문으로 발령이 났다. 강남 한복판에 있고 1호점이며 핵심 점포인 ○○점 ○○팀이었다. 정민은 만족했다. 모든 일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다 좋거나 다 나쁜 것은 없으며,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게 인생이다. 따라서 당시 판단의 옳고 그름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자타 공인 주력 부서에 속해 있으면서, 숨 쉬고 있는 공기처럼 소중한 걸 느끼지 못하였다. 이미 '줄을 잘 서 있으면서', 남의 떡이 커 보여 한눈을 팔았다. 바람은 고요한데 나뭇잎이 제 홀로 흔들렸다.


정민보다 6개월 먼저 입사했던 다른 팀의 김성호는 기획실에서 과장까지 근무하다가 회사가 보내준 일본 연수를 3년간 다녀왔다. 주로 일본 백화점을 벤치마킹하던 시절이었다. 영업 부문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지만, 그는 기획실 근무와 일본 연수 경력을 두고두고 우려먹었다. 훗날 회사를 떠나고 나서도 이를 자산으로 중소 쇼핑몰의 대표직을 역임했다.


홍 차장은 이후 부장이 되어 기획실장을 지냈다. 임원으로 승진해서는 홈쇼핑 프로젝트를 맡아 성공적으로 오픈하였고, 그곳에서 부사장으로 재직하다가 퇴직했다.


만약 그때 정민이 기획실 소속을 유지하며 기획 관련 업무에 자신을 전문화하는 방향으로 커리어 관리를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홍 차장을 따라 홈쇼핑에 가서 자리를 잡았을까? 정민이 두 번째로 전출 신청을 했을 때 홍 차장이 끝까지 정민에게 하지 못한 말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홍 차장은 조선 시대 황진이의 시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할 때 쉬어 간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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