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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Jan 04. 2024

33년 차 직장인이 나이 60에 보는 면접

퇴직 후 재취업에 도전하다

이 나이에 또 면접을


학교라서 그런지 면접 장소가 교실이다. 3학년 1반 교실 푯말이 머리 위에 보인다. '똑똑'. 노크 소리만 빈 복도를 따라 울릴 뿐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칠판 앞쪽으로 교단이 있고, 교단 바로 앞에 책상 하나와 의자 한 개가 놓여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도 책상이 저렇게 작았던가? 세 걸음 정도 사이를 두고 맞은편에는 4명의 면접관이 앉아있다. 몇 개 남지 않는 다른 책걸상은 교실 뒤편으로 멀찍이 밀어 놓았다. 면접관들은 머리를 박고 서류를 넘겨 보느라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저, 여기 앉으면 될까요?"


그제야 일제히 고개를 들더니 앉으라고 대답한다. 면접관은 여자 세명, 남자 한 명 총 네 명이다. 채용 공고를 근거로 추측해 보면 구청 소속 공무원, 학교 교사, 외부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어 확실치는 않지만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수수한 옷차림임에도 아우라가 풍긴다.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만약 어느 기업체 면접장이었다면 날카로운 시선이나 팽팽한 긴장감이 지금보다 훨씬 더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이 나이에 면접을 다 보다니!



우연이 겹치면 생기는 일


이 일련의 시작은 의도치 않은 몇 가지 우연 때문이었다. 포털에서 뉴스 검색을 하다가 '2023년 직업계고(고졸 취업전문) 취업지원관 채용'이라는 제목의 서울시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취업 지원'이라는 직무가 낯설지 않아 눈길이 갔다.


재직하고 있을 때 사이드 잡으로 창업을 한 적이 있었다. 직업안정법상 '유료직업소개업'이다. 시장 세분화를 통한 틈새시장 공략의 가능성을 보았고,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부각함으로써 잠재적 유효 수요를 발굴하여 공략했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다. 시장에서 지명도가 높아져 해당 분야 헤드헌팅 순위 10위권에 랭크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러하듯 내릴 것이냐 아니면 박차를 가할 것이냐를 택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이 온다. N잡러를 꿈꾸며 창업한 지 3년이 넘어갈 무렵,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야말로 잘되도 걱정이었다. 이 사업의 몸집을 키워 나갈지 여부를 결정해야 다. 


업무량이 늘어나면 직원을 더 채용해야 하고, 그에 수반하여 지출이 늘어난다. 회사의 덩치가 커진 만큼 광고비나 판촉비 등속의 변동비를 더 투입하여 외형을 키워야 한다. 매출 신장세를 유지하면서 고정비 비중을 줄여 영업 이익을 확보해야 회사가 지속 가능해진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추가 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상황이 다가온 것이다. 


돌이켜보면 성급한 판단이었지만, 이 부분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해 3년 반 만에 폐업하는 걸로 결정했다. 자금 조달에 대한 부담감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업가로서의 기질 같은 것이 부족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체력적인 한계와 본업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배제할 수 없었다.


이 사업을 하면서 직업상담사라는 직종을 알게 되었다. 내친김에 자격증을 따자는 생각으로 독학을 시작했다. 상담학이나 심리학이 좀 어렵기는 했으나 흥미로왔고, 노동 관련 법규는 법학 전공자라서 접근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 노동시장론이나 직업정보론은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 2차 시험의 경우 백지를 채우는 논술 시험에 익숙한 터라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기출문제 플러스알파로 예상 문제를 추려내어 키워드 중심으로 공부했다. 같은 해 1차와 2차 동시에 합격해서 자격증을 땄다. 



만만치 않을 현실들


이 '유료직업소개업' 경력과 이때 취득한 자격증 덕분에 나는 '2023년 직업계고(고졸 취업전문) 취업지원관 채용'이 요구하는 자격 조건에 부합되었다. 채용 공고만으로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정부 주도형 일자리에는 두 가지 고려할 사항이 내재되어 있다. 


첫 번째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다. 일반적으로, 채용 공고에 제시되어 있는 자격 요건에는 높은 수준의 전문적인 경력과 역량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적혀있다. 면접 과정에서도 난이도 높은 질문을 해가면서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을 변별해 내고자 한다. 하지만 실제로 업무 현장에 가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심한 경우에는 공공 알바 또는 공짜 알바 취급을 받기도 한다. 입사 동기나 대학 동창 대부분이 현직에서 은퇴하면서, 단체 채팅방에는 이런 경험담들이 종종 올라온다.


한 친구에 의하면 경험과 노하우에 기반한 어떤 제안을 할 기회는 고사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선을 넘거나, '왕년에'를 내세운 적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심지어 이제 막 시보를 달고 온 20대 초반의 공무원이 '행정과 기업 논리는 다르다'라며 듣지도, 묻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존재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계약 기간 내내 시키는 단순노동만 했다며, 자신을 왜 뽑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블로킹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인 한 명이 모 지자체 행정 부시장이었다. 지역 경제 활성화 정책 추진 과정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아 고민하고 있던 차에, 우연한 자리에서 나에게 몇 가지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여기에 착안한 부시장이 나를 해당 사업 민간 자문 위원으로 위촉하고자 검토를 지시했다. 그러나 부시장의 지시는 담당 과장과 주무관의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해 가로막혔다. 나중에 알았지만 '연락이 잘되지 않는다'거나 '완곡히 거절했다'라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두 번째로 알고 넘어가야 하는 내용은 연령이나 성별에 따른 보이지 않는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차별을 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란 듯이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많은 남성을 선호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짐작할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이 나이가 많은 남성은 때에 따라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되는 경우도 있다.


찬 밥, 더운밥을 가리는, 어찌 보면 사치스러운 고민일 수도 있지만, 이런 부분들은 나를 '2023년 직업계고(고졸 취업전문) 취업지원관 채용'이라는 정부 주도형 공공 일자리 채용 공고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하였다. 게다가 놀고 있는 요즘이 너무 좋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 그 시간들의 대부분은 나를 위해서 쓴다. 지루하거나 답답할 겨를 따위는 없다. 다만,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이 아쉬울 뿐이다.



동기부여가 필요해!


그렇게 이틀 정도가 지났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예의 그 채용 공고가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부지불식간에 떠올라 나의 머릿속을 점령하곤 했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다 보니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뭐지? 왜 자꾸 미련이 남지?  


그래, 그거였다. 취지! '고등학생 취업 지원'이라는 취지가 좋다. 굳이 거창한 명분을 부여하자면 재능 기부나 사회 공헌의 맥락에서 꽤 괜찮은 동기부여가 된다. 


무조건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관습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학생들에게 다양한 진로 탐색의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경험자로부터 진로 설계에 관한 도움을 충분히 받아야 한다. 그래야 흥미와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나의 기업 경력이나 직무 경험은 이론을 넘어서는 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내가 면접관이나 채용하는 입장이었던 경험담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이런 차별화된 역량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사회적, 경제적 분위기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 수급 연령 연장, 건강 보험 피부양자격 강화, 예금 금리 하락 추세, 치솟는 물가 등 전반적인 상황이 은퇴 생활자를 압박하고 있다. 이런 흐름에 대응하려면 먼저 지갑을 닫아야 하고, 용돈 정도는 벌어서 해결함으로써 헐어 쓰는 시기를 최대한 늦춰야 한다.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나는 아주 무거운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다만, 건강 수명을 75세라고 볼 때 내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이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쓰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아마도 이 숙제는 당분간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들은 나를 선택할까?


서류 접수 마감이 임박했기 때문에 일단은 접수부터 하고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한 학교만 지원할 수 있어서 먼저 학교를 선택해야 했는데, 이건 따질 필요가 없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골랐다. 월급도 딱 최저 임금 수준일 텐데 무슨 엄청난 일을 한다고 출퇴근 지옥까지 감수하겠는가.


먼저 공고문에 첨부되어 있는 담당 선생님의 이메일 주소를 확인하고 문의를 했다. 60세 남성이다. 기업체 근무 경력이 33년이다. 요구하는 자격이나 조건이 되는 걸로 보이는데 학교 측의 생각은 어떠한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만약 반응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느낌이 있으면 지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자격이나 조건이 되신다며, 서류를 제출하라고 회신이 왔다. 직접 방문하지 않고 이메일로 접수해도 되냐고 물었다. 그렇게 하라고 한다. 공고문에는 방문 접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살짝 비틀어 본 일종의 테스트였다. 이 정도면 반응이 나쁘지 않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는 각각 한 페이지를 넘지 않도록 하면서 구구절절하거나 의욕이 넘치지 않도록 주의한다. 해당 직무와 연결 지을 수 있는 경력과 경험 위주로 최대한 간결하게 쓴다. 자기소개서에 적은 내용이 면접에서 꼬리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흐름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


소정 양식의 폰트와 글씨 크기를 가급적 준수하되 칸마다 다른 폰트가 설정되어 있다면 일률적으로 폰트를 맞추는 것이 좋다. 단, 의도적으로 설정해 놓은 것으로 보이면 건드리지 않는다. 볼드체나 밑줄, 큰 글씨로 강조하는 것은 남발하지 않도록 하며 색을 넣는 것은 지양한다. 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관점이 다를 수 있는데 특정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다른 것을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가독성을 높이는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서류 접수를 마쳤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나는 면접에 갈 수 있을까? 이 나이에 보는 면접은 어떤 것일까? 과연 그들은 나를 선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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