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그게 대체 언제인가요?
나의 면접은 어땠을까? 다른 한 분과 경합이기는 했으나 전반적인 흐름, 면접관의 질문 내용, 내 답변에 대한 반응을 고려해 보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설령 안되더라도 불합격시키는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라고 해도 60이 넘은 아저씨한테 방점을 찍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면접이 끝나면 피면접자는 느낌이 좋다 또는 망친 것 같다는 둘 중 한 가지 생각에 매몰된다. 각각의 느낌을 확신으로 끌고 갈 만한 단서들을 모아, 희망을 품거나 허망함에 빠진다. 그러나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다. 실제 결과는 자신의 예측과 다른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미리 예단하고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사사다망(私事多忙)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벌써 합격자 발표를? 아니다. 면접 하루 만에 연락이 온 것은 아마도 면접장에서 결정짓지 못한 모종의 사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녕하세요. ㅇㅇ고등학교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어제 면접에서 뵈었죠. 저는 취업부장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내 생각이 맞았다. 이 분은 틀림없이 면접 당시 왼쪽에서 두 번째 앉아있던 분이다. 말투에서 적극적인 성격과 친절함이 전해진다. 무엇보다 사무적이지 않아 친근감이 들었다.
"잘해주실 것 같아서요. 최종적으로 교장 선생님 결재만 남았어요."
"아, 진짜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식 발표는 아니니까 시청에서 일괄적으로 발표할 때까지 알고만 계셨으면 좋겠어요."
계약 기간이나 근무 시간 같은 세부적인 사항을 확인하고 조율했다.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일단은 임시(?) 합격이라는 말이다. 다만, 학교에서 면접 결과를 통보하면 나중에 서울시에서 최종 확인 후 일괄 발표가 있을 거라는 얘기이다. 전화를 끊고 나자, 기쁨보다는 겨우 체면이 섰다는 안도감이 앞섰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임시 합격'에 대한 과한 축하를 받으며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 그런데 한 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없다. 정식 발표 말이다. 대체 그 서울시의 일괄 발표는 언제 하는 것일까. 혹시 '60이 넘은 아저씨'라는 핸디캡이 작동한 것은 아닐까. 궁금증이 지배하는 소모적인 시간보다 적극 알아보는 방법을 택했다. 시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잠시만요. 합격자 명단에는 이름이 있는데요. 추가 모집이 오늘 마감이라 이거까지 끝나면 한꺼번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추가 모집 중이라고? 그러고 보니 적격자가 없으면 합격시키지 않은 학교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그렇다면 최종 발표일이 좀 더 늦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내가 전화 문의를 한지 이틀 만에 시청에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합격하셨음을 알려 드립니다. 사전 교육 일정은 다시 안내해 드릴 예정입니다. 드디어 오피셜한 통지를 받은 것이다. 추가 모집이 그새 마무리된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내가 궁금한 것은 교육 일정이다. 그런데 그건 또 나중에 다시 알려 주겠다고?
사실 나에게는 다른 고민이 있었다. 오래전에 계획한 한산도 여행 때문이다. 다른 일행 두 분과 함께 한산도에 있는 지인의 집에 가서 머무를 예정이었다. 출근 날짜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지만, 문제는 그전에 있을 '사전 직무 교육'이다. 지금 '나중에 다시 알려 주겠다는' 이 교육 일정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처럼의 여행 계획을 이대로 취소하는 것은 너무 아쉽다. 게다가 앞으로 적어도 일 년간은 갈 시간이 없을 터였다. 고민 끝에 예정대로 출발하기로 했다. 만약 중간에 연락이 오면 일정을 중단하고 돌아올 심산이었다. 지금까지 흐름으로 볼 때 내가 여행을 다녀올 일주일 안에 무슨 일이 있을 가능성은 매우 적었다.
나는 그렇게 일행들과 함께 통영을 거쳐 한산도로 들어갔다. 싱싱한 굴, 조개 같은 해산물을 잔뜩 먹으면서, 주거니 받거니 불콰하게 술을 마셨다. 하얀색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압도적인 바다 뷰를 즐겼고,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감상했다.
둘째 날은 제승당을 돌아보았다. 제승당(制勝堂)은 이순신 장군의 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참모들과 작전 계획을 협의하던 집무실이다. 이름 그대로 '승리를 만드는 곳'으로, 23전 23승이라는 위업이 태동한 현장이다.
이순신 장군은 세작을 활용한 정보전에 능했다. 백성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유무형의 병참 지원을 확보했다. 철저하게 계획적인 전투를 지향함으로써 이기는 싸움을 하였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거북선이나 판옥선, 장거리 화포 같은 무기를 운용하여 적보다 우월한 전쟁 기술을 구사하였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무능한 권력자와 정치가의 헛발질이 없었다면 조선의, 나아가 대한민국의 위상이 사뭇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왠지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3일째 되는 날이었다. 한산도의 매력에 빠져 지내고 있는 나를 질투라도 하는 것일까? 서울시로부터 교육 운영 위탁을 받았다는 인○○○라는 업체 담당자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사전 직무 교육은 월요일부터 시작되고, 시간은 당초 채용 공고문에 있었던 80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며, 장소는 용산과 문정동이라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다시 알릴 예정이라는 공지를 했다 하더라도, 월요일부터 시작할 교육을 3일 전인 금요일에 통보하다니. 물론 내 잘못이 크다. 언제 시작될지 모르는 교육에 대비해 꼼짝 말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감히 날짜를 지레짐작하여 여행을 떠나다니.
구시렁거려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허겁지겁 짐을 쌌다. 아쉬웠다. 행정 절차라는 것이 보통은 '일련의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나? 그럴만한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예측 가능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 차원이고 어찌 보면 예의라고 할 수 있다. 뭔가 주먹구구식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 바람은 차가웠고 한산도 앞바다는 유난히 일렁거렸다. 그래도 하늘빛과 그것을 닮은 물빛은 한결같았다. 무심한 여객선은 바다에 둥실 떠있는 거북선 등대를 돌아서, 어느새 한산섬을 저만큼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노을 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굽이굽이 바닷길에 배가 오는데, 임 마중 섬 색시의 풋가슴속은 빨갛게 동백꽃처럼 타오르네."
가수 이미자 님이 부르는 '삼백리 한려수도'라는 노래이다. 작사자 정두수 님이 뱃전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한산도의 아름다운 추억은 이 노래와 함께 고이 접어 간직했다.
합격자 발표, 교육 일정과 관련된 몇 가지 이슈에도 사전 교육 자체에는 여전히 기대감이 크다. 근무 시작 전에 직무 교육을 해준다는 것은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확보하고자 사업 주무 관청이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공공사업 운영에 이렇게 진지한 측면이 있다니! 세금을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하다. 소소하고 개인적인 불평불만은 이쯤에서 털어 버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무슨 내용을 누가, 어떻게 교육할지 궁금하다. 무려 120시간 아니던가. 하루 8시간씩이라면 15일간이다. 커리큘럼을 미리 알려달라고 수탁 운영사 담당자분에게 요청했지만, 어째 답이 신통치 않다. 문득 불안해졌다. 나는 교육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주관하시는 분들이나 교육하실 분들도 그럴까?
무슨 일이든 타이밍이 중요하다. 연락이 올 때 안 오거나, 알아야 할 때 모르면 이미 노란불이 들어온 거다. 지금까지 진행 경과로 미루어 볼 때, 이 사전 교육 과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질지 걱정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만약 이게 기업의 비즈니스 상황이라면 이런 불확실성 자체가 거래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친다. 바라건대, 지금 내 머릿속을 맴도는 어떤 예감이 기우(杞憂)에 그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