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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Jan 11. 2024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제 면접 어땠나요?

마지막 고민


'2023년 직업계고(고졸취업전문) 취업지원관 채용' 지원 서류를 이메일로 접수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꽁꽁 얼어붙은 날씨는 여전히 물러설 줄 모르고 있다. 설연휴가 지나고 직장인들은 다시 바쁜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그저 고요하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반납일이 임박했기 때문에 오늘은 마저 읽어야 한다. 책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을 때, '띵'하고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면접 일정 안내드립니다. ㅇㅇ일 오후 1시 30분에 3학년 1반 교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막상 기다리던 소식을 접하고 나자, 나는 좀 더 구체적인 고민에 빠졌다. 학생이 아닌 신분에 학교는 어떤 곳일까. 교사들과 업무 연관성은 어느 정도일까. 교사가 아닌 나는 학생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까. 이 모든 것이 나에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점령한다.


특성화고 교사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지금은 밤농장과 양봉 일을 하면서 소일하고 있는 매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업 경력을 부각하고 MS 오피스 잘한다고 강조하라며, '본인이라면 나를 뽑고 싶을 거'라는 말로 용기를 주었다. '안으로 굽는 팔' 이겠지만 그래도 교사 출신이니까 전혀 헛된 말은 아닐 것이다. 


은퇴 후 재취업 일자리를 찾는다면 당연히 눈높이를 낮게 가져야 한다. 그리고 길게 볼 필요도 없다. 어차피 합격한다고 해도 일 년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래 대체 뭘 고민하고 있는 거야. 걱정도 팔자다. 그리고 무엇보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내가 가진 경험과 노하우를 조금이나마 나누어줄 수 있다는 좋은 취지가 있지 않은가. 나는 면접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첫인상은 좋은 디테일


며칠째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 아래를 밑돌고 있다. 북극보다 더 춥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하지만 그렇게 맹위를 떨치던 한파도 입춘을 앞두고 살며시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이다. 절기의 흐름은 참으로 신비롭다.


걸어서 30분이 채 안 걸리는 거리여서 금방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식사를 하다 말고 용무를 확인한 경비분께서 친절하게 길을 알려주었다. 맞아! 학교는 배움의 터전이니까, 무엇이든 어린 학생들한테 모범이 되어야 할 거야. 흐뭇해진 마음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교무실까지 가는 진입로를 따라 나목들이 양쪽으로 길게 줄지어 있다. 이 나무 터널이 봄에는 향기로운 꽃내음을, 여름에는 땡볕을 가릴 그늘을, 가을에는 형형색색 단풍을, 그리고 겨울에는 소복이 쌓인 눈을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선사할 것이다. 그 선물은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 주기도 하고 때로는 어떤 상상력을 주기도 할 것이다.


학교 건물이 공사 중이었으나 곳곳에 안내문이 부착되어 있어서 면접장소를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다. 이렇게 안내문까지 붙여 놓은 걸 보면 면접 오는 사람이 많음에 틀림이 없다. 불안한 마음이 불쑥 올라오고 다리에 힘이 빠진다. 어쨌든 안내문이 없었다면 찾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배려심과 디테일은 방문자인 나에게 좋은 첫인상을 주었다.


대기 장소라고 안내받은 교실에 들어서니 이미 한 분이 앉아 있었다. 마스크를 썼지만 눈빛이 초롱한 40대 초중반 정도의 여성이었다. 아이고 틀렸구나. 당연히 저분이 되겠네. 경합이면 '나이 많은 남성'이라는 핸디캡이 작동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지원자가 나 혼자이기를 내심 기대했건만 역시 착각이었다.  


안녕하세요? 일찍 오셨나 봐요. 다른 분은 안 계세요? 그럼 지원자가 우리 두 명인가 봐요. 나의 모든 질문에 그분은 예 또는 아니오로 짧게 대답했다.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하긴 이 분도 예상치 못한 경쟁자의 출현에 대해 적이 놀랐을지도 모른다.


연한 햇살이 드리우는 창가에서 밖을 내다보며 서성였다. 학교 건물과 낮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다세대주택이 밀집해 있었다. 대기는 미세 먼지로 가득하여 회색빛이고, 세상은 적막 속에 묻혀있다. 역시 학교는 학생들로 시끌벅적해야 학교답다.



제 면접 어땠나요? 


예정 시간에서 10분 정도 지나자 복도에 서있던 단정한 차림의 앳되어 보이는 분이 들어오더니, 여성분 먼저 안내해 드리겠다며 대기하고 있던 분을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30분 정도가 지나자, 그분은 마스크를 한 손에 벗어 들고 얼굴이 달아 오른 채 돌아왔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잘하셨어요? 아니요. 그냥 뭐. 그러고 있는데 다시 안내자가 들어왔다. 내 차례다.


"집이 가까우시네요."

"네, 걸어서 30분 거리입니다."


꼭 면접이라서 보다는 원래 낯선 사람을 마주하면 경계심이 높아지고 긴장을 잘하는 성격이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긴장감이 아주 쫄깃하다. 목소리는 갈라지고 톤이 높아진다. 질문을 듣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일련의 흐름이 잡히지 않고 자꾸 반사적으로 대답한다. 왜 이러는 거야. 진정해. 담담하게 임하지 못하고 있잖아. 


천지 만물의 이치를 알게 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한다는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었거늘, 아직도 상황이 멘털을 흔든다. 마음공부가 덜 된 탓인가. 그동안 피면접자들의 이런 모습을 은근히 관찰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반성해야 할 것 같다. 마음을 다잡고 면접관들을 살폈다.


가장 왼쪽에 있는 분은 교감이나 교장으로 추정된다. 기업 경력과 해당 직무의 연관성에 관해 물었다. 직무 경험의 유용성과 활용 가능성을 강조해서 답변했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성격의 단점이 뭐냐고 돌발 질문을 했다. 일을 보면 달려드는 경향이 있으며, 완성도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어서 가끔은 같이 일하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고 했다. 장점처럼 들린다면서도 답변에 만족한 표정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 앉으신 분이 질문을 이어받는다. 이 분은 초과 근무와 돌발적인 업무 상황처럼, 실제로 맞닥뜨릴 수 있는 일에 관심이 많다. '너 낮은 자세로 일할 수 있어?'라고 묻는 것이다. 나와 직접적으로 같이 일하는 시간이 많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이 일을 하려는 동기는 좀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일종의 재능 기부 맥락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그 옆의 남자분은 교무 부장 정도로 추정된다. 학생들과 소통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집요하게 했다. 학생들이 취업지원실을 많이 방문하게 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방도를 묻는다. 젊은 여성 직원들과 무난하게 소통하며 일했던 사례를 들어주었다. 문턱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목표로 하는 취업'에 포커스를 두겠다는 소신을 피력했다. 이 분은 남성 대 여성의 관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를 우려하여, 학생들에게 전화번호도 알려 주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고 중언부언하였다. 여학교이므로 충분히 그럴만한 사안이라고 이해했다.


마지막 분은 몸의 코어가 내 쪽이 아닌 반대편을 향하고 있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다. 비호감을 드러내는 바디랭귀지이다. 질문을 듣다 보니 직업 상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인 듯했다. 자기소개서 클리닉을 직접 해 본 적이 있나요? 유료직업소개업을 사이드잡으로 창업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다수의 경험이 있습니다. 자기소개서에 취업 특강을 했다고 적었네요? CEO로 재직할 때 지인을 통한 의뢰가 들어와서 특성화고와 폴리텍대학에서 6회 정도 특강을 했습니다. 주제는 어떤 것이었나요? '4차 산업 혁명 시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이나 'CEO 입장에서 뽑고 싶은 입사 지원자' 같이 제가 말할 수 있는 주제였습니다.


교실 뒤쪽 벽면에 높이 걸려있는 벽시계가 2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느덧 면접을 시작한 지 3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면접관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더 질문할 것이 없는지 확인한다. 


이 정도면 대화의 흐름을 비교적 유리한 방향으로 끌어 왔다. 자소서를 통한 꼬리 질문을 유도해서 부각하고 싶은 부분들을 좀 더 얘기할 수 있었다. 느낌상으로는 2대 2이다. 왼쪽 두 분은 긍정적, 오른쪽 두 분은 부정적이다. 만약 가부 동수라면 실무책임자의 의견이 비중 있게 반영될 것이다. 그 실무책임자는 네 명 중에서 왼쪽에서 두 번째 분인듯한데, 다행히 긍정 쪽이다. 그렇다면 합격 가능성이 살짝 더 높다. 하지만 면접 결과는 기분이나 느낌하고 전혀 다를 수 있다. 예단 자체가 무의미하다.


내가 기다리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은 없었다. 그 질문을 받았다면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지 않는다는 면접 원칙을 깨고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다. '제 면접 어땠나요?'. 그만큼 '면접 지도하는 직무를 할 사람이 보는 면접'이라는 중압감이 있었다.



다시 걱정 한가득


돌아온 길에 집 근처 커피숍에 들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자주 가는 곳이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숨을 골랐다. 휴,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면접관들은 내가 취업지원관으로서 학생들의 취업을 지도할 만한 역량이 된다고 판단했을까? 33년 차 직장인의 고등학교 아르바이트는 과연 시작될 수 있을까? 그나저나 떨어지면 망신이다. 자기 면접도 불합격하면서 다른 사람 면접을 어찌 가르친다는 말인가. 걱정이 다시 한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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