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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Jan 18. 2024

그래서 합격인가요?

예측 가능성은 배려입니다만

임시(?) 합격자 발표


나의 면접은 어땠을까? 다른 한 분과 경합이기는 했으나 면접의 흐름, 면접관들의 질문 내용, 내 답변에 대한 면접관들의 반응을 고려해 보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안되더라도 불합격시키는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나라고 해도 60이 넘은 아저씨한테 방점을 찍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면접이 끝나고 나면 피면접자는 느낌이 좋다 또는 면접을 망친 것 다는 둘 중의 한 가지 생각에 매몰되게 된다. 각자의 느낌을 확신으로 끌고 갈 만한 단서들을 모아, 희망을 가지거나 허망함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다. 실제 결과는 자신의 예측과는 다른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미리 예단하고 일희일비할 필요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사사다망(忙)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벌써 합격자 발표를? 아니다. 면접 하루 만에 연락이 온 것은 아마도 면접에서 결정짓지 못한 모종의 사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녕하세요. ㅇㅇ고등학교입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어제 면접에서 뵈었죠. 저는 취업부장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내 생각이 맞았다. 이 분은 틀림없이 면접 당시 왼쪽에서 두 번째 분이다. 말투에서 적극적인 성격과 친절함이 전해진다. 무엇보다 사무적이지 않아서 친근감이 들었다.


"잘해주실 것 같아서요. 최종적으로 교장선생님 결재만 남았어요."

"아, 진짜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식 발표는 아니니까 시청에서 일괄적으로 발표할 때까지 알고만 계셨으면 좋겠어요."


계약 기간이나 근무 시간 같은 부수적인 사항을 확인했다.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러니까 정리해 보자면 일단은 합격이라는 말이다. 다만, 학교에서 면접 결과를 통보하면 나중에 서울시에서 최종 확인 후 '일괄 발표'가 있을 거라는 얘기이다. 전화를 끊고 나자, 기쁨보다는 뭔가 체면이 섰다는 안도감이 앞섰다.



진짜 합격자 발표


주변 사람들로부터 '임시' 합격에 대한 과한 축하를 받으며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다. 그런데 한 주가 지났는데도 아직 없다. '정식 발표' 말이다. 대체 그 서울시의 일괄 발표는 언제 나는 것일까. 궁금증에 지배당하는 소모적인 시간보다 직접 알아보는 방법을 택했다. 시청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잠시만요. 합격자 명단에는 이름이 있는데요. 지금 추가 모집 기간이라 이거까지 끝나면 한꺼번에 발표할 예정입니다."


추가 모집 중이라고? 그러고 보니 지원자가 없거나 합격자가 없는 학교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미스 매치가 있었거나, 적격자가 없으면 합격시키지 않은 것이다. 추가 모집 중이라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발표일도 늦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전화를 건 바로 다음 날 시청으로부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합격하셨음을 알려드립니다. 사전 교육 일정은 다시 안내해 드릴 예정입니다.' 드디어, 느닷없이, 오피셜 한 통지를 받은 것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 내가 진짜로 궁금한 것은 합격 여부가 아니라 교육 일정이다. 그런데 그건 또 나중에 다시 알려 주겠다고?



이 여행은 어떡하지?


사실 나에게는 다른 고민이 있었다. 오래전에 계획한 한산도 여행 일정 때문이다. 다른 일행 두 분과 함께 한산도에 있는 지인의 집에 가서 머무를 예정이었다. 출근 날짜는 충분히 여유가 있었지만, 문제는 그전에 있을 '사전 직무 교육'이다. 유감스럽게도 '나중에 다시 알려 주겠다는' 이 교육 일정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처럼의 여행을 이대로 취소하는 것은 너무 아쉽다. 게다가 앞으로 적어도 일 년간은 갈 시간이 없을 터였다. 고민 끝에 예정대로 출발하기로 했다. 만약 중간에 연락이 오면 그때 돌아올 심산이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일련의 흐름으로 미루어 볼 때 아무래도 내가 여행을 다녀 올 동안 교육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일행들과 함께 통영을 거쳐 한산도로 들어갔다. 통영 시장에서 사 가지고 간 굴, 조개 같은 해산물을 잔뜩 먹으면서, 주거니 받거니 불콰하게 술을 마셨다. 하얀색 낮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압도적인 바다 뷰를 즐겼고, 마당에 있는 평상에 누워 쏟아지는 별빛을 감상.


제승당을 빼놓을 수 없다. 제승당(堂)은 이순신장군의 사령부가 있던 곳으로 참모들과 작전 계획을 협의하던 집무실이다. 이름 그대로 '승리를 만드는 곳'이다. 한적한 제승당을 둘러보면서 23전 23승이라는 그분의 엄청난 위업을 되새겨 보았다.


이순신 장군은 세작을 활용한 정보전에 능했다. 백성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유무형의 지원을 확보했다.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계획적인 전투를 지향함으로써 이기는 싸움을 하였다. 전술적인 면에서는 거북선이나 판옥선, 장거리 화포 같은 무기를 운용하여 적보다 우월한 전쟁 기술을 구사하였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무능한 권력자와 정치가의 헛발질이 없었다면 조선의,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위상이 사뭇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작은 배려가 아쉽다


한산도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서울시로부터 교육 운영 위탁을 받았다는 인***라는 업체 담당자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사전 직무 교육은 월요일부터 시작될 것이고, 시간은 당초 채용 공고문에 있었던 80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며, 장소는 용산과 문정동이라고 했다. 


아무리 언젠가 할 것이고, 다시 알릴 예정이라는 공지를 했다 하더라도, 월요일부터 시작할 교육을 3일 전인 금요일에 통보하다니. 그럼 합격자들은 언제 있을지 모르는 교육에 대비해 상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


구시렁거려 봐야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허겁지겁 짐을 다. 아쉬웠다. 그럴만한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조금만 예측 가능했더라면 어땠을까.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 차원이고 어찌 보면 예의라고 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 바람은 차가웠고 한산도 앞바다는 유난히 일렁거렸다. 그래도 하늘빛과 그것을 닮은 물빛은 한결같았다. 무심한 여객선은 바다에 둥실 떠있는 거북선 등대를 돌아서, 어느새 한산섬을 저만큼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노을 진 한산섬에 갈매기 날으니

삼백리 한려수도 그림 같구나

굽이 굽이 바닷길에 배가 오는데

님 맞은 섬색시의 풋가슴 속은

빨갛게 동백꽃처럼 타오르네."


이미자님이 부르는 '삼백리 한려수도'라는 노래이다. 작사자 정두수님이 고등학생 때 뱃전에 서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여인을 보고 썼다고 한다. 한산도의 아름다운 추억은 이쯤에서 고이 접어 간직하자.



제발 잘해 주세요


합격자 발표, 교육 일정과 관련된 몇 가지 이슈에도 불구하고 사전 교육 자체에는 여전히 기대감이 크다. 근무 시작 전에 직무 교육을 해준다는 것은 해당 분야에 전문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공공사업 운영에 이렇게 진지한 측면이 있다니! 세금을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뿌듯하다. 소소하고 개인적인 불평불만은 이쯤에서 털어 버리기로 했다.


그나저나, 무슨 내용을 누가 어떻게 교육할지 궁금하다. 무려 120시간 아니던가. 하루 8시간씩이라면 15일간이다. 커리큘럼을 미리 보내달라고 수탁 운영사 담당자분에게 요청했다. 그런데 불안하다. 나는 교육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교육할 분들도 그럴까? 무슨 일이든 타이밍이 중요하다. 올 때 안 오거나, 될 때 안되면 노란불이 들어온 거다. 바라건대, 지금 내 머릿속을 맴도는 어떤 예감이 기우(憂)그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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