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다워야 프로다
이 교육의 정식 타이틀은 '직무 능력 향상 과정'이다. 직업계고 취업지원관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레벨업 시킴으로써 업무 성과를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유형의 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고 기대되었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기대만큼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교육은 총 120시간 중에서 온라인 교육 40시간과 집합 교육 24시간을 합친 64시간으로, 절반 정도만 진행되고 어정쩡하게 끝나 버렸다.
집합교육 처음 이틀은 무사히(?) 진행되었다. 수요일은 공휴일이라 쉬고, 목요일에 문제의 '그 일'이 터졌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금요일과 다음 주 월요일은 오전 4시간을 다 채우지 못하고 중도에 귀가했다. 그러더니 결국은 교육 중단 통보가 내려왔다. 앞으로 근무하면서 보충한다고 하는데 이는 믿기 어렵다.
참담했다. 이깟 임시 계약직 교육이 무산된 걸 가지고 침소봉대한다고 치부하면 할 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나를 용기 있게 선택해 준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교육 참가자들의 열의로 미루어 볼 때, 실망스러운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충 시간 보내려고 마음먹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의욕이 넘쳐서 막상 학교 현장과 충돌이 있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교육이 중단된 내막을 이야기하자면 당연히 비판적인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행여 주제넘은 '지적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의 시간과 기회비용을 허비하게 한 '그들의' 잘못이 먼저이다.
첫째, 소통과 공감이 아쉬웠다.
어떤 제품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욕구(needs) 파악을 먼저 하는 것이 마케팅의 기본이다. 행정을 하더라도 니즈 파악 즉, 수요 조사를 철저하게 해야 정책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어떤 교육을 받고 싶은가요'라고 한 번쯤은 물어보는 것은 어땠을까?
그 의견을 전부 반영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경청이라도 했다면 뭐라도 달라졌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모든 걸 정해놓고 120시간 동안 무조건 따라오라는 방식은 처음부터 무리가 있었다. 아니면 최소한 수긍할 만큼의 완성도가 있든지.
둘째, 교육장 시설이 불편했고 교육 운영에 미숙한 부분이 있었다.
요즘에는 공간 대여 업체들이 늘어나서 괜찮은 시설을 갖춘 교육장을 섭외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예산이 부족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교육장 두 곳이 모두 접근성이 떨어져서 지하철역에서 20분 넘게 걸어야 했다. 찾기가 어려워 다수의 사람이 한참을 헤매다가 도착했고 지각이 속출했다. 얼마 전 학교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디테일한 안내 표시에 감동하였던 것과 대조적이었다.
남자 화장실은 소변기가 두 개 있었는데 공간이 너무 좁아서 어차피 한 명씩 들어가야 했다. 여자 화장실도 이보다 낫지는 않았을 것이다. 쉬는 시간이 되면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나와 온수를 빼는 바람에 따뜻한 물을 마시기가 쉽지 않았다. 믹스 커피와 녹차 티백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최소한 양쪽 강의실의 쉬는 시간에 차이를 두는 소소한 대응이라도 있어야 했다.
진행자는 가끔 나타나서 출석부 얘기를 집중적으로 했고, 오직 출석부에만 관심이 있었다. 하루가 끝나고 나면 만족도 조사가 휴대폰 문자로 왔는데, 오점 척도 방식의 아주 간단한 질문 몇 개가 전부였다. '매우 불만족'을 열심히 눌렀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셋째, 커리큘럼이 직무 역량 강화라는 교육 목적에 부합하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었다.
온라인 강의로 진행된 과정은 거의 일반교양 수준이었다.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과연 직무 능력 '향상' 과정에서 다루어져야 할 내용인지 재고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리마인드가 필요한 경력 단절 여성이나 사회 초년생을 감안했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하향 평준화되었다.
예를 들면, 이미 여러 번 출연했던 강사분이 '나를 세일하라! 소셜 네트워크 마케팅을 통한 내 브랜드 가치 올리기!'라는 주제로 8시간을 강의했다. 아무리 연결 지어 봐도 당최 취업지원관 직무와 연관성이 적어 보였고 내용도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집합교육에서는 제목만 다를 뿐 강사마다 내용이 중복되는 부분이 많았다. 교육 도중 '이거 다른 분이 했는데요.' 하면, '그래요? 그럼 이건 빼고 할게요.'라는 대화가 몇 과목에서 반복되었다. 주최 측에서 커리큘럼 컨트롤링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OA 교육은 120시간 중에서 24시간이 배정되었다. 물론 아직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아래 한글을 통한 문서 작성 역량이 부족한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레벨을 초급으로 포커싱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열 명 중에서 한두 명만이 초급이라면 다른 방식의 진행을 고려했어야 한다.
만약 나에게 커리큘럼을 만들라고 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우선 취업지원관에 재직했던 분을 초빙하여 생생한 경험담을 듣고 싶다. 학교에서 취업을 담당하시는 교사를 모셔서 학교나 학생 측에서 바라는 취업지원관의 역할을 들어 보는 것도 좋다.
대졸 취준생이나 성인이 아닌 고등학생들에게 맞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작성과 면접 지도에 관한 기술적 차이점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에 관한 최신 개정 내용과 적용 사례를 인지하고 있으면 취업을 앞둔 학생들의 일차적인 권익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밖에 고교 현장 실습 제도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와 실무를 하면서 운용해야 할 하이파이브 시스템 개요, NCS에 관한 사항이나 고졸자 잡서칭에 유용한 사이트처럼 근무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소스에 관한 팁도 필요하다.
넷째, 교육비 책정 금액이 너무 적었다.
온라인 교육을 제외하고 참석한 날에 대해 차비와 식비 명목으로 하루에 25,000원을 지급한다고 했다. 최저 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해도 8시간이면 최소한 76,960원인데. 아무리 세금을 아껴 써야 하고, 수혜자 부담의 원칙을 적용한다고 해도 이 금액은 좀 아니지 않나 싶다. 만약 취업지원관 정책을 통해 고교 취업률 제고에 일조하기를 기대한다면 사기 진작과 동기 부여라는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끝으로, 앞서 말한 '목요일에 터진 문제의 그 일', COVID19 리스크를 너무 과소평가했다.
최근 사회적인 분위기가 코로나에 대해 거의 무감각해져 가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도 각종 규제를 푸는 등 완화 추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7일 격리가 남아 있고 여전히 전염에 따른 파급 효과를 무시하지 못한다. 즉, 아직 완전히 종식되지는 않았으니 전처럼은 아니더라도 조심은 해야 했다.
체온 체크, 손 소독제 비치 같은 기본적인 준비가 없었고, 교육 또한 다닥다닥 붙은 채 둥글게 모여 앉아 얘기하고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얼마나 많은 침이 서로에게 튀었겠는가. 그러다 결국 일이 터졌다. 옆 강의실에서 확진자가 발생했고 자가 진단 검사 결과 추가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왔다.
급기야 교육 도중 느닷없이 귀가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강사에게 양해도 없이 불쑥 들어와 교육을 중단시키는 모양새가 다소 적절치 않아 보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중단된 것은 다행이었다. 만약 확진자가 생기면 정작 학교에 출근하지 못하게 되거나, 잠복기인 사람이 학교에 가서 학생들에게 전파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 무산된 속사정을 피교육자로서 얘기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불평불만을 길게 늘어놓은 격이다. 혹자는 나를 가리켜 지나친 완벽주의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특히, 이 교육을 주관하고 진행했던 당사자라면 사정이 있었다면서 억울함을 토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취미 생활로 맡은 일을 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즉, 프로들이다. 반면, 이번 교육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은 아마추어 같았다. 적어도 33년 차 직장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랬다.
이렇게 120시간의 사전 직무 교육은 흐지부지 되었지만, 이제 더는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33년 차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알바'라는 현실을 바로 보고,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애쓰고 있을 교사분들을 도와,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얘들아, 기다려! 직무 능력 향상 과정 교육은 좀 그랬지만, 직무 능력이 있는(?) 취업지원관 선생님이 곧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