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도 후에 안 가도 후에

가고 후회

by 화문화답

4박 5일 가족 여행 일정의 3일 차 목적지는 후에(Huế)였다. 후에는 다낭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2시간 정도 거리라고 하는데 베트남의 도로 사정과 기습적인 폭우 그리고 제한 속도 60km를 미친 듯이 준수하는 운전자의 변수를 고려하면 실제로는 3시간 가까이 걸린다.


후에는 1635년 이래 응우옌 왕조의 수도였고 1802년 베트남 통일 후에는 국제도시로 번영을 누렸으나 1883년 프랑스에 점령되어 1945년까지 보호령의 수도였으며 1968년 베트남전쟁 중에는 격전지 중의 하나였다. 유서 깊은 왕궁, 성, 사원, 왕릉이 산재해 있다. 짧은 일정 중에 하루를 배정해야 하는 코스여서 망설여지기는 했으나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가 보겠냐는 생각과 지역 특성이 주는 색다른 매력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맨 처음에는 가이드가 포함된 렌터카를 오는 날, 가는 날을 제외하고 3일간 계속 사용할 생각이었다. 가족들의 편의와 쾌적한 여행을 위해서 특히 차종을 신경 썼다. 도로 사정이나 교통 여건이 좋지 않은 데다가, 낡은 차량이나 소형차들이 많아서 차를 잘못 선택하면 안전 문제도 있지만, 내내 고생한다.


여행사 지인 A에게 문의한 결과 사흘 동안 차량 300불, 기사 30불, 가이드 210불 해서 총 540불이며 차량은 쏠라티라며 사진을 보내왔다. 보기에도 멋진 차량이었다. 특별히 저렴하게 해주는 거니까 다른 분들께는 얘기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본인 마진을 뺐다는 뜻일 것이다. 비용은 그렇다 치고 사진 속의 저 차라면 크고 쾌적해서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일정에 얽매이는 것보다는 유연성 있는 자유로운 여행을 원했고, 거리가 먼 3일 차 후에 가는 날만 이 차량을 이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A에게 이렇게 조정해 달라고 요청했고, A는 문자 메시지로 답을 보내왔다.


"조정 가능합니다. 차량은 7인승으로 당일 100불입니다."


그러니까 전에 받았던 견적이랑 비교해 보면 사흘 동안 차량 300불, 기사 30불, 가이드 210불 해서 총 540불이었던 것이, 하루 동안 차량 100불, 기사 10불, 가이드 70불 해서 총 180불로 조정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실제로 비용도 그렇게 선지급하였다. 하지만 처음에 언급되었던 '차량은 쏠라티입니다'가 '차량은 7인승입니다'로 바뀐 의미를 미처 읽어 내지 못했고, 나의 그 실수는 하루 동안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말았다.


아침 일찍 서둘러서 식사를 마치고 기다렸다. 예정보다 20분쯤 일찍 도착했다는 가이드의 전화를 받고 호텔 입구로 나갔다. 그런데 사진 속에서 보았던 쏠라티가 아닌 산타페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라? 왜 이 차가 왔지? 보통 산타페의 짐칸을 좌석으로 개조한 듯, 뒤쪽 좁은 공간에 놓여있는 좌석을 보고 당황했다. 가이드가 옆으로 슬쩍 다가오더니 이죽거렸다. 나도 배정된 차량을 보고 놀랐어요. 좁아서 불편하시겠어요.


"작은 차가 왔네? 사진으로 보내준 쏠라티가 아닌데?"


착오가 있었다. 바로 교체해 드리겠다고 하면 쏠라티가 올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으며, 모든 것을 용서하리라 내심 마음먹었다.


"제가 7인승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문제는 잘못 이해한 나에게 있으며 자신은 고지할 거 다 했으니 책임이 없다는 태도였다. 이렇게 고객과 소통이 안 돼서 어떻게 여행사를 하지? 사실 이 나라에서 영업 중인 일부 여행사가 이런 수준이라는 평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평소 믿음이 있었던 A가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맨 뒷좌석에 아들과 예비 며느리가 앉고 중간 좌석에는 우리 부부 그리고 앞에는 운전기사와 가이드, 총 6명이 '7인승'을 타고 출발했다. 괜찮다며 기분까지 망치지 말자고 자신을 애써 달래면서.


휴게소 비슷한 것도 찾아볼 수 없는 산길을 달리고 또 달려 드디어 후에 시내에 진입했다. 그런데 후에 왕궁 근처 주차장에 내리는 순간 예비 며느리가 이상했다. 거의 초주검이 돼서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멀미를 심하게 한 것이었다. 어쩐지 항상 명랑 쾌활하던 아이가 오는 내내 말도 없이 계속 눈을 감고 있더라니. 주차장 옆 카페로 가서 물을 마시게 하고 그늘에 앉아 쉬게 했다.


그러는 사이 골프카 한 대와 또 다른 가이드 한 명이 나타났다. 합쳐서 90만 동을 달라고 했다. 이 사람들은 또 뭐야? 개인적으로 움직이면 길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래야 한단다. 그럼 차를 같이 타고 온 가이드는 왜 온 거지? 아들이 엄마를 배려해서, 유적지이니까 현지인의 설명이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가이드를 넣어 달라고 한 건데 정작 현장에 와서는 다른 가이드를 써야 한다니. 입장료는 별도로 인당 20만 동이었고 이후 다른 왕릉도 비슷한 가격이었다. 네 명이 세 군데를 구경하면 입장료만 240만 동, 한국 돈으로 약 12만 원이다. 현지 물가로 비교해 보면 베트남 생산직 직원 한 달 월급의 40%이다.


예비 며느리가 속이 안 좋은 관계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미 다낭 시내 고급 베트남 식당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그렇게 감동적인 음식도 아니었다. 이러다 진짜 병나겠다 싶어 왕궁 투어를 중단하고 다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아들과 함께 맨 뒷좌석에 앉았는데 역시 소음과 진동 그리고 가려진 시야와 좁아터진 좌석에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오는 내내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졌다. 갈 때는 교통 법규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지키던 운전기사는 중앙선 침범과 추월을 밥 먹듯이 하며 빗길 왕복 2차선을 내달렸다.


물론 듣고 싶은 대로만 듣고 적극 확인하지 못한 내 잘못이 크다. 하지만 A는 한국 사람의 정서를 충분히 알고 있을 건데 이런 중요한 변경 사항은 고객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맞지 않나? 7인승 차량인데, 차가 작아 불편할 텐데 괜찮겠냐고 물어봐 주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다.


호텔 도착과 함께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의 후에 여행이 끝이 났다. 가이드가 내리면서 한 마디로 오늘 일정을 정리해 주었다. "후에는 가도 후에(후회), 안 가도 후에(후회)라고 합니다." 뭐라고? 추가 팁으로 주려고 꺼냈던 백만 동짜리 지폐를 지갑에 도로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