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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문화답 Jul 14. 2023

북한산 날다람쥐

10km, 4시간 30분

하늘에서 금방이라도 파란 물이 쏟아질 듯하다. 살랑살랑 남풍이 불고, 햇살은 투명하다. 배낭을 챙겨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최근 산행이 언제였지? 베트남에서의 생활은 산행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뜨거운 햇빛과 강한 자외선은 세 걸음 이상 걷기 어렵게 했고, 낯선 타국에서 산을 찾아다닐 만큼 모험심이 강하지도 않았다. 오랜만의 산행이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좋은 날씨의 유혹을 꺾을 수는 없었다. 맞아, 나는 북한산 날다람쥐였어!


산행을 할 때는 가급적 혼자 그리고 일찍 출발한다. 일행이 있으면 또 다른 재미가 있겠지만, 배려하고 신경 써 줘야 하는 부분들이 생기고, 각자의 호흡이나 스피드가 맞지 않아 흐름이 깨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을 선호하는 이유는 조금만 늦으면 앞사람 엉덩이 구경만 하다가 내려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 아침 정기를 머금은 산의 느낌이 좋아서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북한산의 서북쪽 방면 줄기에 이어져 있다. 이런 지정학적 특성은 처음 이사 올 때부터 강한 소구력으로 작용했다. 남들은 일부러 차를 타고 와야 하지만 나는 걸어서 5분이면 바로 북한산에 오를 수 있다. 


북한산둘레길 8길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구기동에서 진관동으로 이어지는 이 길은 그늘이 드리워진 곳이 대부분 이어서 한여름에도 걷기가 좋다. 


둘레길을 걸으며 워밍업을 마쳤으니 이제 본격 산행이다. 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봉-문수봉-대남문을 거쳐 구기계곡을 따라 내려오는 총 10km 구간으로, 휴식 시간 30분을 포함하여 약 4시간 반 가량 소요된다. 난이도 보통 코스이다.


족두리봉은 해발 370m에 경사도 10.7%로 약 1km를 오르는데 약 40분 정도 소요된다. 짧은 구간이지만 경사가 급하고 바위를 오르는 부분이 많아서 처음부터 입에서 단내가 난다. 봉우리 모양이 족두리를 닮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졌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등산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몇 번의 등산 경험은 곧 개고생이었다. 등산이라는 걸 처음 해본 것은 대학원 다닐 때였다. 지도 교수님과 제자들이 모여서 매달 정기적으로 산행을 했는데, 15리터는 족히 넘을 주름 물통을 가슴에 끌어안고 올라가는 게 내 임무였다. 단지 내가 막내라는 이유였다. 그때는 산에서 취사가 가능하던 시절이었으므로 식수가 많이 필요했다. 목적지가 산 꼭대기가 아니라 중간 어디쯤 계곡이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장교 후보생 시절, 영천에 있는 3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다. 주간 사격은 한 번에 통과했는데 이상하게 야간 사격은 불합격의 연속이었다. 호 속에 들어가 서서쏴 자세로 전방의 타깃에 10발 중 8발 이상을 명중시켜야 합격이었다. 문제는 사격장까지 가는 길이었다. 합격한 후보생들이 달콤한 개인 정비 시간을 갖는 주말에, 불합격한 사람은 사격장까지 이동해서 재측정을 받아야 했다. 왕복 20km가 넘는 산악 지형을 그것도 밤에 오가는 일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A그룹에 입사해서 직장 생활을 할 때였다. 과장 진급과 동시에 부산에 발령을 받았는데, 그곳에는 매우 독특한 직장 문화(?)가 있었다. 과장급 이상 간부 사원은 새벽 몇 시까지 금정산 매표소 앞에 집합하라는 지시가 내려오는데, 처음에는 한 달에 한두 번이었지만 점점 그 횟수가 늘어났다. 그 집합을 지시한 높은 분께서는 산의 정기를 흡수해야 한다며 맨발로 산을 올랐고 운전기사는 그 신발을 들고 그 높은 분의 뒤를 따랐다. 동이 틀 무렵 정상에 도달하면 인사팀 과장이 출석을 불렀다. 그것도 지시 사항이었을까? 아니면 자발적 충성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가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을 흘러 어떤 결정에 내 의견이 반영될 만한 위치가 되었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나에게 등산은 선택이었고 목적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새소리, 바람 소리 같은 자연을 만끽하러 가기도 하고, 명산 대첩의 기운을 받으러 가기도 하고, 하산 후 막걸리 마시는 맛에 가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가기도 하겠지만 나는 운동 목적으로 산행을 한다.


운동과 체중감량에는 등산만 한 것도 없다. 특히, 마음이 심란하거나 정리할 생각이 있을 때 산에 오르면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등산은 억지스럽지 않게 몸을 힘들게 해 주기 때문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팔다리의 온 근육이 뻣뻣해지는 고통 속으로 자신을 몰아넣으면 어느덧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던 악마들이 십리쯤 물러간다. 높은 곳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는 쾌감은 잠시나마 세상의 일인자가 된듯한 카타르시스를 주기도 한다.


족두리봉 정상을 앞에 두고 '쉬운 코스'로 좌회전하면 향로봉으로 향하는 우회로가 나온다. 족두리봉 정상에는 굳이 오르지 않는다. 산이라는 것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암벽으로 되어있어 자칫 방심하면 추락이나 낙상 사고를 당할 수 있다. 


자신의 체력을 맹신하거나 과욕을 부리다가 다치면 자신만 손해이기도 하거니와 119 응급 구조대가 출동해야 하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게 된다. 몰래 술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서 내려오다가 다리에 힘이 풀려 사고를 당하는 분들과 더불어 등반 사고 양대 고위험군이다. 


주말에 종종 소방헬기가 북한산 상공에 뜨는 것을 보면 이런 사고가 적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출동한 헬기와 더불어 어떤 때는 등산로 입구에 119 구급차, 경찰차까지 한바탕 난리를 치르게 된다. 


이제 넘어야 할 첫 번째 봉우리를 지났다. 다시 새로운 출발! 우리 인생도 그러한 것 같다. 한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출발을 해야 한다. 그 발걸음에는 지나온 인고의 세월이 무겁게 담겨있고, 다가올 낯섦에 대한 두려움과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 씩 섞여있다. 그렇게 한 봉우리, 두 봉우리를 넘다 보면 문득 걸었던 길과 걸어야 할 길의 구별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좋았던 것도 있고 나빴던 것도 있고, 기쁨도 있고 슬픔도 있다. 여전히 도착하고 또 다른 출발을 한다.


두 번째 봉우리에 도달하였다. 해발 535m의 향로봉이다. 향로봉에 오르는 길은 한 번에 하나씩 돌계단을 오르는 맛도 있거니와 구불구불 오르는 길이 정겹고 사철 내내 포근한 기운이 맴도는 구간이다. 하지만 약 40분 동안 28.5%의 경사를 1km 이상 올라야 하는 깔딱 고개이다. 역시 등산의 묘미는 인생의 쓴맛을 곱씹으며 오르는 깔딱 고개이다.


어느덧 비봉이다. 비봉 근처에 도착하면 마치 역사의 한복판에 선 느낌이 든다. 신라 제24대 왕인 진흥왕의 순수비가 서있는 봉우리라 해서 비봉(碑峯)이라고 한다. 북한산 비봉의 순수비는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한강 유역을 점령한 신라는 이후 100여 년에 걸쳐 한반도의 패권을 장악하고 삼국을 통일한다. 그리고 진흥왕의 영광과 함께 북한산진흥왕순수비 또한 잊히게 되었는데, 북한산 비봉 꼭대기에 잠들어 있던 진흥왕 순수비를 다시 깨운 것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었다. 그동안 산봉우리에 있던 그렇고 그런 비석 중의 하나였던 순수비를, 근처 절을 찾아왔던 김정희 선생이 판독하여 세상에 다시 알렸다고 한다. 


1,500년 동안 해발 560m의 비봉 정상을 지키고 있던 진흥왕순수비가 세월과 사람의 흔적으로 훼손이 심해지자 이를 국보 3호로 지정하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는 표지석을 세웠다가 지금은 복제석이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저 높은 곳에 저런 비석을 세울 생각을 하였을까? 세상을 호령하던 진흥왕의 기상과 호연지기가 서려있는 비봉 정상의 진흥왕순수비는 아직도 명멸하는 역사의 한복판에 서서 세상을, 후손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하다.


비봉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승가사 뒤편 해발 약 540m에 사모바위가 위치해 있다. 바위의 모습이 조선시대 관리들이 머리에 쓰던 사모(紗帽)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968년 1.21 사태 당시 김신조 일행이 바위 아래 숨어 있었다고 해서 김신조 바위라고도 불린다. 지금도 총탄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바위 아래 굴속 같은 곳에 무장공비 밀랍인형이 웅크리고 있는데 지금은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족두리봉, 향로봉, 사모바위 모두가 생긴 모양을 따라 이름이 붙여진 것인데 사모 바위의 경우 야사(野史)도 있다. 떠난 임을 기다리다가 사모하는 마음이 사무쳐 바위가 되었다는 클리셰이지만, 어쩌면 그 애틋함과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남녀상열지사는 우리의 모든 발걸음에 닿아 있다.


잠시 젖어본 감성 텐션을 뒤로하고 승가사 쪽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우회전이 아닌 직진을 하다 보면 비봉과 거의 비슷한 높이의 승가봉이 나온다. 승가봉 앞 쪽으로는 저 멀리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문수봉이 펼쳐져 있다. 출발한 지 약 두 시간 반 정도가 지났다. 마지막 봉우리를 앞두고 잠시 쉬어간다.


단팥빵 한 개, 견과 한 봉지, 사과 한 개로 칼로리와 당분을 보충한 다음 잠시 숨을 고른다. 사방은 고요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나무들뿐이다. 이 고요함이 좋다. 4시간이 넘는 긴 산행 중에서 가장 좋은 시간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너른 곳보다는 살짝 숨겨져 있는 이곳을 발견한 이후 늘 이곳에서 쉬어 간다.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는 것을 보니까 누군가는 이곳에 숨어서 담배를 피우고 가기도 하나보다.


매 번 북한산을 오르면서 좋은 기운과 좋은 계절을 만끽하고 체력도 단련하고 마음도 다스리며 자연의 혜택을 누린다. 서울 시내에 이런 명산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지만 나의 이런 호사를 깨뜨리는 순간이 있다. 역시 자연이 아닌 사람 때문이다.


산에 오를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는 바람 소리이다. 바람에 나뭇잎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가끔씩 울어대는 새소리는 북한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이중주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귀에 이어폰을 꽂게 되었다. 사람이 많아지면서 산중에도 듣기 싫은 소리가 넘치기 때문이다. 


뉴스를 크게 틀거나 낡은 트로트 음악을 방송하며 가는 사람들이 있다. 배낭에 매달린 작은 종에서 나는 '딸랑딸랑' 소리 정도는 애교라지만 그 소리도 계속 들으면 묘하게 날카롭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아예 앞지르거나 한참 멈추어서 거리를 둔다. 아무리 개인 취향이라지만 내 귀에는 불편하다. 유난히도 헉헉거리며 폐가 터질 듯 거친 숨소리를 뿜어내는 사람은 차라리 인간적이다.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갑자기 '카~악' 하고 가래침 뱉는다. 그런 사람은 결코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습관처럼 가다가 또 뱉어낸다. 그걸 어쩔 수 없는 생리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래침을 함부로 뱉는 사람을 만나면 한참 동안 비위가 상한다. 


차를 운전하다가 앞지르기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면 위협 운전으로 처벌을 받기도 한다. 산행에도 앞지르기 방해꾼이 간혹 있다. 사람마다 속도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천천히 갈 경우에는 뒤에 오는 사람의 속도를 배려해 주어야 한다. 


누가 나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인지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쪽으로 비켜서 주거나 잠사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준다. 그러나 끝까지 좁은 길을 차지하고 자기 만의 속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실례합니다. 먼저 지나갈게요.' 하고 지나가지만 어떤 사람은 비켜주는 시늉을 하고는 불쾌한 듯 위아래로 째려보기도 한다.


산에 오르다 보면 곳곳에 '음주'를 금지한다는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다. 전에는 쉴만한 곳이면 예외 없이 모여서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진동하는 냄새와 시끄러운 소음도 문제려니와 그분들 내려갈 때 괜찮을까 싶을 때가 많았다. 지금은 음주가 금지행위로 많이 인식되어 전처럼 술판을 벌이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 눈을 슬쩍 피하거나 물병 같은 곳에 술을 담아와서 아닌 척하며 음주를 즐기는 사람들도 여전하다. 마치 그 술이 특별하고, 그 술을 가져온 자신이 자랑스러운 듯 호기롭게 술을 권하기도 한다.


특이한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있다. 여성 등반자를 졸졸 따라다니거나, 산악회 모임 같은 단체에서 소수의 여성에게 다수의 남성이 집중(?) 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보기에 불편하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맨 처음 가입했던 **산악회에서 이런 남자들의 '주도면밀함'을 목격한 다음부터는 그냥 혼자 등산하는 쪽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 고비가 남아있다. 해발 727m의 문수봉으로 오르는 마지막 깔딱 고개이다. 암벽 등반을 방불케 하지만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웬만한 체력과 담력이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 그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보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우회 코스를 택한다. 피한 다기보다는 이 우회로 계곡을 따라 치고 올라가는 맛이 괜찮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땀을 한 번 더 쭉 뽑아낸다.


청수동암문을 통과하여 대남문을 지난 후 곧바로 내려가는 길 대신 문수사를 경유하는 길을 택한다. 복전함에 지폐 한 장을 넣고 나면 이제부터는 줄곧 내려가는 길이다. 인간이나 산이나 내리막길은 단순하다. 쭉 내려가기만 한다. 문수사에서부터 구기탐방지원센터까지는 약 40분이 소요된다. 


오늘 하루 산행을 정리하면서 구기계곡을 타고 내려가다 보면 천연 ASMR이 들린다.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소리이다. 흐르던 땀도, 세상살이 시름도 그 물소리에 섞여 부서져 버린다. 


사실 요즘에는 나이 탓인지 체력 탓인지 고지를 향한 산행보다는 둘레길을 찾는 횟수가 더 많아진다. 북한산 날다람쥐가 북한산 둘레길 청설모로 바뀌어 가고 있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하나씩 잃어가고 하나씩 놓아가며 살아야 한다. 북한산 10km를 4시간 30분 동안 등반하는 것도 힘들어지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서글퍼진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좋은 추억이 있고 또 아직은 둘레길이 남아 있으니까.


구기계곡 물소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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