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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알 Aug 14. 2022

환경난민이라고 불러주세요

난민법이 지켜주지 않는 난민

 2022년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국제적인 파장을 불러일으킨 이 침략으로 800만 명 이상의 국내 실향민, 644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1) 이에 많은 국가는 우크라이나 구호활동에 적극적으로 힘을 쏟고 있으며,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사회단체에서도 이들을 돕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한편 2020년에만 3,000만 명 이상의 실향민을 발생시킨 국제 이슈가, 그에 상응하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는 문제의식에서 이 글은 시작한다. 실향민 수는 우크라이나의 4배에 달하지만, 국제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탓에 난민으로는 인정받지 못한 이들.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바로 ‘환경난민’2)이다. 환경난민은 대규모 자연재난, 환경오염, 이상기후 등으로 인하여 불가피하게 살던 고향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비자발적 이주민으로서, 국제적인 현상이지만 발언권을 좀처럼 얻지 못한 문제이기도 하다. 환경난민의 수는 이미 1998년에 전쟁난민의 수를 넘어섰고, 2050년에는 약 1억 명이 환경난민으로 유랑길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추산된다.3) 

 이들이 처한 환경 문제는 기간에 따라 ‘장기간에 걸친 환경변화’와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장기간에 걸친 환경변화’는 기후온난화, 해수면 상승, 삼림파괴, 토양침식, 염분화, 침수, 사막화로 인해 거주 공간을 잃은 사람들을 일컫는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남태평양의 환경 난민들이 바로 장기간에 걸친 환경 변화에 해당한다. 

 이들이 처한 문제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최루성의 동화가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남태평양의 “한”(Han) 섬의 주민들은 주거권과 건강권, 식량권과 경제권 등 총체적인 삶의 기반이 흔들리게 되었다. 남태평양의 파도를 막아주던 산호초가 사라지며 주거권이 위협받게 되었으며, 섬의 습지화로 인해 말라리아가 급증하며 건강권을 보장받지 못하게 되었다. 더불어 섬의 염분이 많아지며 식량을 제공하던 나무들이 고사하여 식량권 또한 보장받지 못하며, 바닷속 재원의 부족으로 인해 경제권. 삶을 구성하는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 환경난민이 처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기후변화로 인한 잦은 자연재해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 이들은 화산 폭발, 홍수, 허리케인, 몬순, 토네이도 등 ‘갑작스러운 환경변화’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었다. 특히 이상기후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만큼, 이로 인한 난민 또한 전 지구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주목할 만하다. 미국의 서부 해안, 인도 히말라야 산지 등, 장소를 불문하고 발생하는 다양한 지역에서의 자연재해는 실향민을 증가시키고 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다양한 이유로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환경으로 인한 난민의 수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는 기후위기로 인해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1m만 상승해도 1억 명의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4)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환경난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국제적인 규정은 없다. 환경난민에 대해 제대로 규정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난민을 다루는 현행 국제 문서에 대해 알아보자. 1951년 채택된 UN 난민 협약에서는 크게 세 가지 조건을 통해 난민의 범주를 규정한다. 먼저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well founded fear of being persecuted)’가 존재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공포는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의 이유(for reasons of race, religion, nationality, membership of a particular social group or political opinion)’로 인한 박해에서 유래해야 하며, 그 대상은 ‘국적국의 밖(outside the country of his nationality)’에 있어야 하며, ‘그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가의 보호를 받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자’(is unable or, owing to such fear, is unwilling to avail himself of the protection of the country)이어야 한다. 

 그러나 난민을 이러한 방식으로 규정하였을 때, 환경난민 문제를 난민의 범주 안에서 논의하기가 어려워진다. 위의 문서에 의하면 난민들은 ‘신분 혹은 정치적 이유’로 인한 ‘박해를 받을 우려’와 같은 공포의 근거가 존재해야 한다. 공포의 원인 요소들이 다음과 같이 정해진 이유는 난민 협약이 제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발생한 난민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러한 정의를 토대로 난민을 다룰 때, 2000년대 이르러서 대두된 환경난민 문제는 논의의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분명히 존재하는 기후 위기의 피해자들은  왜 ‘피해자’라는 지위조차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가. 어째서 이들을 규정하고 이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공식적이고 국제적인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까. 단순한 관심 부족으로 치부하기보다는, 그 내막을 본다면 환경난민 문제에서 본질적인 고민이 되는 것들이 숨어있다. 

먼저 환경으로 인한 피해는 그 가해자를 특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며, 그에 따라 스스로의 안전이 위협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더욱 까다로워진다. 대기업이 배출하는 오염물질과 선진국에서 만들어내는 수많은 쓰레기들은 그대로 자연을 파괴하고 이는 다시 지구의 어느 곳에든 영향을 미친다. 다만 직접적으로는 일종의 자연재해에 의한 피해이기 때문에 환경난민들은 다른 영향을 증명해낼 방도가 없으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권력 불균형으로 인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가해자를 찾을 수 없고 책임소재는 불분명하며 영향을 준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감히 죄를 물을 수 없는 현 상황.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이상한 현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듯이, 그 피해자들은 지구의 자연환경이 파괴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환경 난민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 짓기 힘들다는 점이다. 환경 파괴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비단 국제적으로 약소국의 위치에 있지만은 않으며, 미국에서도 이러한 피해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사람들은 물이 부족하여 생수를 사서 과일을 씻고, 평생 동안 종사해온 과수업을 그만두기도 한다. 전례 없이 높은 쓰나미에 한 마을이 모조리 쓸려나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환경으로 인해 어디까지 피해를 입었을 때 ‘환경난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난민 법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소속 국가에서 국민을 도울 의지가 있다면 난민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국가에게 의지는 있지만 사회적이고 금전적인 여건이 되지 않을 경우, 피해는 수습되지 않음에도 ‘챙겨주려고 하는 국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강대국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쓰나미로 인해 똑같이 집을 잃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낮추어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국가조차도 챙겨주지 않는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이들과 적어도 보험이나 기타 사회보장제도가 적당히 마련되어있는 국가의 시민들을 완전히 동등한 경우로 취급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피해의 원인이나 구제의 범위를 명확하게 정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힘든 문제인 만큼, 환경난민 문제에 사람들의 관심이 보다 필요하다. 


(이 글은 2022년 1학기 씨알 스터디팀인 INVU팀이 활동을 마무리하며 작성한 글입니다)


1) https://www.unicef.or.kr/what-we-do/news/153430 

2) ‘환경난민’이라는 말은 다소 사용이 조심스럽다. 이들은 완전히 ‘난민’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이후에 자세히 다룰 것이다. 

3) Norman Myers, Environmental Exodus : An Emergent Crisis in the Global Arena (Climate Institute, 1995), p.2. 

4) 서원상, 국제법상 ʻ환경난민ʼ에 대한 인권 기반적 접근, 환경법과 정책 제3집(2009. 11),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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