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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May 03. 2022

애야! 나도 그렇단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선생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그분은 아이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으신 남자 선생님이다. 키도 크고 미남이며 특히 체육활동을 좋아하신다. 체육 시간에 축구를 할 때면 그분의 아이 사랑이 잘 드러난다. 반바지를 입고 운동장에 등장하는 모습을 보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아이들 사이를 바람을 가르며 누비는 그분의 모습은 영락없는 손흥민 선수이다.    

 

선생님이 왜 찾아왔을까? 대충 짐작이 되었다. 오늘 오전에 운동장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당시 선생님 반과 옆 반 아이들의 피구 시합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그런데 운동장 건너편에서 오늘 오신 선생님과 남자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아기처럼 발을 동동 굴렀고, 선생님은 아이에게 무언가 열심히 설명하고 계셨다. 아이는 어떤 나쁜 행동을 했고, 선생님은 이를 지도하고 계시는 중일 것이다.     


별일 아니겠지. 시선을 애써 딴 곳으로 옮겼지만, 나의 청각은 그들의 목소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울부짖듯이 선생님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차!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 이런 경우는 대개 분노조절장애 아이들이 보여주는 행동 특징이다. 지금 선생님은 이 상황에 혼란을 겪고 계실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다. 조심조심 그들 곁으로 다가갔다.    

 

아이의 화내는 모습을 한참 동안 곁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조금 진정되자 아이의 손을 잡고 교장실 문을 열었다. 이런 경우 아이의 신체 열을 내리는 일이 시급하다. 엄마가 아랫배를 문지르면 아픈 곳이 낫듯이, 흥분으로 인해 상승한 신체의 열을 내려주어야 한다. 차가운 음료보다 따듯한 음료가 아이의 열을 내릴 수 있다. 아이에게 따뜻한 우유 한잔을 내밀었다.     


한참을 기다렸더니 아이가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자신도 폭발하는 분노가 싫다고 이야기한다. 병원에서 치료받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애야! 나도 그렇단다.” 아이에게 교장 선생님도 가끔 분노를 느낀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사람은 누구나 분노가 있고, 사람마다 분노의 크기가 다르다고 설명해주었다. 분노가 큰 사람은 자신 잘못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환경을 잘못 만나거나 습관을 잘못 들이면 분노가 큰 사람이 된다고 설명해주었다.    

  

좀 더 아이의 내면을 살피고 싶었다. “학교에서 언제 화가 많이 나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주로 체육 시간이다. “체육 시간에 왜 화가 많이 날까?” 아이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대충 이해가 되었다. 이 아이는 고학년이지만 신체적인 크기는 중학년이었다. 키가 작고 유난히 호리호리했다. 운동 감각에서 친구들보다 부족할 것이다. 다만 승부 욕은 매우 뛰어날 것이다.     


이 아이의 성장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친구들과의 경기나 게임 중 과도한 승부 욕이 작동했을 것이다. 욕심에 비해 결과는 매번 초라했을 것이다.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지나친 승부 욕은 친구들과의 관계 맺기에 부정적인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친구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고, 거듭된 실패감과 더불어 열등감의 파이를 키웠을 것이다. 지나치게 부풀어 오른 열등감을 낮추기 위해 ‘분노’라는 감정 해소의 방법이 필요했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찾아오신 선생님이 묻는다. “감정에 대한 이성의 간섭을 증대시켜 보면 어떨까요?” 체육을 시작하기 전에 감정에 대해 이성의 간섭을 증대시켜 보자고 말씀드렸다. ‘나는 체육 시간에 감정이 쉽게 흥분한다. 흥분하면 분노가 폭발한다. 나의 분노를 모든 선생님과 친구가 싫어한다.’라는 세 문장을 이마에 새기면서 체육을 하자고 말씀드렸다.    

 


사실 위의 이야기는 상당한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의 뉴런과 이성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뉴런의 연결 모습을 보면 살펴보면 쉽게 이해된다. 전전두엽에서 변연계로 향하는 뉴런의 개수보다 변연계에서 전전두엽으로 연결된 뉴런 개수의 양이 절대적으로 많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감정에 지배받는 중요한 이유이다.     


5월 장미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학교 화단의 장미 중에 분홍색의 장미가 제일 먼저 얼굴을 내민다. 작년의 예로 보아 다음 차례는 노란색 장미이다. 이어서 짙은 자주색, 붉은색 장미의 차례로 꽃봉오리를 터트릴 것이다. 오늘 만난 아이는 제일 늦게 피는 장미를 닮았을 것이다. 다만 이 아이가 예쁘게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부모님, 선생님의 수고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선생님 마지막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 만난 아이가 처음으로 사과를 했단다. 3, 4월 여러 건의 사건이 있었지만,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아이였단다. “선생님 죄송해요.”라고 처음으로 사과를 했단다. 오랜만에 교장 역할을 한 것 같아 뿌듯한 하루이다. 다만 걱정은 오늘 만난 아이와 같은 친구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난다. 덩달아서 선생님들의 얼굴빛도 해가 갈수록 어두워진다. 가르치기 힘든 시대이다. 선생님 노릇 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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