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면 초등학교에서 운동부를 꼭 할 거야.” 동호인 테니스 대회에 출전했던 파트너 이야기이다. 그분과 나는 빛고을 테니스 대회에 복식 파트너로 출전했다. 우리는 같은 클럽에 속해있고, 나름 테니스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승은 아니어도 원만한 성적이 나오리라 동호회 회원들이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의 경기 결과는? 예선은 무사히 통과했지만, 본선 1회전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우리를 무너뜨린 상대방 복식조는 130을 넘긴 나이였다. 70까지는 청년이라지만, 그 말이 내 눈앞에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포핸드 드라이브에는 힘이 넘쳤으며, 각도 깊은 발리, 묵직한 스매싱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다음 대회에 출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잃을 만큼 무기력하게 무너진 날이었다.
회원 몇 분과 저녁을 먹으면서 경기 반성을 하였다. 어떤 회원이 말씀하셨다. 자기가 보기에는 처음부터 승부가 정해진 게임이었다고. 그분의 말씀으로는 우리가 당연히 질 것으로 예측을 했단다. 조금 서운했지만,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었다. 우리가 경기에서 진 상대방 복식조는 자기가 잘 아는 사람으로 초등학교 시절에 펜싱선수였다고 말씀하셨다.
초등학교 시절에 펜싱을 배웠다고 테니스를 잘 할 수 있을까?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다른 회원의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초등학교 시절에 전문적으로 운동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성인이 되어 어떤 운동이든지 잘한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분들의 말씀이 옳았다. 이 지역에서 테니스를 잘하는 사람 중 다수가 배구, 핸드볼 등 초등학교 운동부 출신이다.
초등학교 운동부 출신들이 어른이 되어서 모든 운동을 잘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초등학교에서 핸드볼 선수였지만, 어른이 되어서 테니스도 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운동 감각’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운동 감각’을 사전에서는 신체의 동작에 따라 운동을 인지하는 감각으로 시각, 평형감각, 촉각, 공간 인지의 감각 등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 감각은 초등학교 시절에 효과적으로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운동 감각을 가장 비유하기 좋은 사례는 ‘풍경화’이다.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서는 스케치를 해야 한다. 그 스케치가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운동 감각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초등학교에서 배운 스케치에 빨간색, 노란색 등 색칠을 통하여 감각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간다. 다만 스케치가 없다면 풍경화를 그릴 수 없듯이, 초등학교 시절 배우지 못한 감각은 어른이 되어서 배우기는 무척 어렵다.
피아노를 생각해보면 위의 이야기가 옳음이 쉽게 증명된다. 내가 다녔던 교육대학에서는 피아노 학점을 받아야 했다. 나는 피아노에서 F 학점을 두 번이나 받았다. 물론 노력도 부족했지만, 성인이 되어서 피아노 배우기가 무척 어려웠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면서 피아노 감각에 대한 스케치가 만들어졌다면 F 학점을 받았을까?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익혔던 운동 감각은 어디에 숨어있다 나타날까? 운동 감각뿐만이 아니다. 피아노, 자전거 등 꾸준한 연습을 통하여 이루어진 배움들은 10년, 20년이 흘러서 다시 시작해도 옛날의 기량이 고스란히 재현된다. 학자들은 수백 번, 수천 번의 연습으로 이루어진 배움이 저장소를 기저핵으로 지목하고 있다. 기저핵은 대뇌피질 하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조가비핵, 꼬리핵 등으로 구성된다.
감각에 정보가 입력되면 대뇌피질과 꼬리핵의 연결로 배움은 시작된다. 수백 번 연습을 거듭하다 보면 대뇌피질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대신 운동피질과 조가비핵의 연결이 증대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보자. 처음 테니스 포핸드를 배우면 ‘몸에 힘을 빼고, 최대한 앞에서 공을 때리며, 라켓을 앞으로 던진다.’ 등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대뇌피질과 미상핵의 연결이다.
포핸드를 수백 번, 수천 번 연습하다 보면 이런 의식은 어느 순간 없어지게 된다. 의식하지 않아도 포핸드 자세를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운동피질과 조가비핵의 연결이다. 즉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듯 의식하지 않아도 테니스 포핸드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것이 기능이고 습관이다. 습관으로 저장된 지식은 10년, 20년 지나도 다시 재현할 수 있으며, 옛날에 배웠던 그 감각이 되살아난다.
물론 위의 이야기는 운동 감각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말하기, 듣기, 관찰, 보기 등 기능을 요구하는 모든 감각에 적용된다. 모든 기능을 뇌 관점에서 해석하면 습관이다. 초등학교 시절 관찰의 방법을 잘 배우면 비범한 관찰 능력을 소유할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잘 듣는 사람은 평생 잘 듣는 사람이 될 것이다. 초등 교육은 감각 발달의 초석이며, 스케치이다.
“다시 태어나면 초등학교 운동선수를 꼭 할 거야.”라는 파트너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어른이 되어서 테니스 연습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실력이 쑥쑥 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운동 감각이 튼튼하지 못해서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초등학교 운동부를 하고 싶다. 학교에 운동부가 없으면 특별 과외라도 받고 싶다.
갑자기 걱정 태풍이 몰려온다.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초등학교 학부모, 선생님이 얼마나 될까? 다만 테니스, 배드민턴, 탁구, 배구 등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길러진 운동 감각은 분명 삶을 풍요롭게 한다. 우리 아이들이 강당, 운동장에서 열심히 운동 감각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