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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Aug 07. 2018

유전자에는 스위치가 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많이 하는 소리 중의 하나가 ‘누굴 닮아나?’입니다. 저도 성장하면서 어머니에게 많이 들었던 소리입니다. 어머니가 화가 나면 “너는 누구를 닮아서 이래?”라는 소리를 종종 들었었습니다. 어머니에게 거슬리는 나의 행동은 분명히 어머니보다는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저에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고 계셔도 사실은 간접적으로 아버지에게 화를 내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그런 어머니의 말씀이 싫은 것 중의 하나였지만 그러한 가르침이 계셔서 오늘의 나라는 존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건 나는 아버지의 외모를 많이 닮았습니다. 키, 눈, 코, 입 등을 비롯한 얼굴의 모양 등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습니다. 반면에 성격은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지는 것을 싫어하며 놀기도 좋아합니다. 우리 부모님의 좋은 점만을 닮았으면 좋으련만 좋은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골고루 닮았습니다.     


우리 집 아이는 엄마, 아빠 중 누구를 많이 닮았나요? 얼마 전 같이 테니스를 하는 선배 한분이 손녀를 안고 나타나셨습니다. 손녀의 얼굴 모양이 할아버지 판박이라서 한참을 웃었습니다. 이 손녀의 얼굴처럼 부모나 조상의 신체적, 성격적 특징이 자손에게 나타나는 것을 유전이라 합니다. 하나의 수정란에서 배아세포가 만들어지고 그 배아세포가 분열을 하여 우리 몸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 몸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조직되어 있다고 과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각각의 세포에는 동일한 부모의 유전형질이 들어있는 유전자가 존재합니다. 특별히 우리의 뇌는 1000억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세포들이 서로 연결되어 성격이나 지능을 결정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나라 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학습과 관련된 유전의 영향입니다.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되면 나의 유전자를 많이 닮은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배우자의 유전자를 의심하게 됩니다. 물론 지능의 50%는 유전의 영향이라고 학자들은 이야기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유전자를 켤 수 있는 스위치에 달려있습니다.    


보다 이야기를 쉽게 풀어가기 위해서 집에서 매일 사용하는 전열기구로 비교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어두운 밤에 책을 읽기 위해서는 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켜야 합니다. 전등의 모양이 여러 가지이듯이 아이들마다 전등의 형태가 많이 다릅니다. 어떤 아이들은 크고 화려한 전등을 가지고 있고, 어떤 아이들은 작고 예쁘지 않은 전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유전이란 전등처럼 다양한 모양의 전등이 아이들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다만 그 불을 켜는 것은 본인을 비롯한 부모님, 선생님들의 노력입니다. 화려한 전등 모양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그 불을 자주 켜주지 않으면 전등은 녹슬게 되고 망가집니다. 작고 볼품없는 전등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불을 자주 켜주고, 모양을 바꾸어주면 아주 예쁜 전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후생유전학(epigenetics)’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환경적인 노력이 뇌 안의 세포 속에 있는 유전자에 영향을 주어 그 유전자가 발휘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유전자의 전등을 잘 켤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고민해봅니다. 이 전 글에서 우리의 뇌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고, 가장 중요한 고속도로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서 아이들의 성장이 크게 달라진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고속도로 중 하나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구별하여 습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중요한 고속도로는 지능과 재능보다는 ‘환경’의 중요성을 아이들이나 부모님이 확신하는 것입니다.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이 경부고속도로라고 생각하면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은 서해안 고속도로에나 해당된다고 할까요? 아무리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스위치를 눌러주지 않으면 유전자는 켜지지 않습니다. 그 스위치는 재능의 힘이 아니라 환경의 힘이며, 노력의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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