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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Sep 28. 2018

아빠들의 수다

얼마 전 어스름이 하나 둘 학교 교정에 찾아오는 시간, 학교가 처음인 듯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아빠들이 하나 둘 교문을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라는 선생님들의 인사에 어색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쑥스러운 미소만 보여주고 자리에 앉습니다. 아마 아빠들에게 학교는 가까이할 수 없는 낯선 이국땅이면서도 찾아가면 언제나 반겨주는 고향의 느낌이 뒤범벅이 된 그런 곳이겠지요.    


교문이 보이는 창가에서 아빠들의 학교 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선생님 한분이 다급히 저를 찾습니다. “목석을 가져다 놓아나. 아빠들이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가만히 앉아 계세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우리 선생님이 아직 남자들을 잘 모르시구나. 남자들이 모이면 항상 보는 풍경인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모임 장소에 들어섰습니다.     


아빠들과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아빠에게 편지 쓰기를 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열심히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의 내용이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아빠란 열심히 돈을 벌어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맞는 말이긴 한데, 어딘가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 외에 우리 아이들 가슴에 다른 아빠의 모습을 담아 줄 수는 없을까? 이런 고민이 오늘 아빠들과 만남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빠들과 만남은 자기소개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아이가 몇 학년 몇 반 누구인지, 담임선생님 이름은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해보게 하였습니다. 과연 우리 아빠들이 자녀들의 학년 반과 담임선생님 이름을 알고 있을까? 알고 있는 분이 소수일 거라는 저의 예상과는 달리 한 두 분을 제외하고 자녀의 학년 반을 정확히 알고 계셨고, 담임선생님 이름도 알고 있는 분이 많았습니다. 어떤 분은 아이가 세 명인데 학년 반과 담임선생님 이름을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흔히 아빠들이 자녀교육에 무관심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 아빠들은 아이들의 그림자처럼 몸짓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가정에서 아빠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랫동안 교육에 대해서 고민한 저보다도 훌륭한 생각들을 서로의 마음에 털어놓았습니다. 아이에게 고민을 물어보고,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아빠, 일관성 있는 생각으로 인생의 거울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아이의 뒤편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믿어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침대에 누워 아무 말 없이 아이 손을 꼭 잡아주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선생님들의 이야기도 더해졌습니다. 아빠들에게 우리 아이들의 민낯을 조금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ADHD(주의산만아) 아동이 3-4명, 감정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3-4명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교실에 가보면 아빠, 엄마들의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과 많이 다릅니다. 분노조절, 자기조절 등 감정을 조절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지구가 아닌 ‘다른 별에서 온 아이들’이라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것도 현실입니다.    


아빠와의 만남을 통해 아이들에 대하여 다시 성찰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주인인 학교가 되기 위해서 우리 부모님들을 더 자주 학교에 오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이 더 좋아하는 학교가 되도록 환경도 더 예쁘게 만들고 더 질 높은 교육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겪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문제는, 교육을 보다 교육답게 시키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아프고 또 아프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열심히 일하시는 아빠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주어서, 책을 같이 읽어서, 놀이를 같이 해주어서 고맙다는 편지를 받는 아빠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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