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성범 May 03. 2020

엄마의 불안

전에 방영되었던 EBS ‘엄마의 성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는 엄마들을 대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 본 후 fMRI를 촬영하였습니다. fMRI는 혈류와 관계된 변화를 감지하여 뇌 활동을 측정하는 기술입니다. 우리의 뇌에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면 혈액이 한쪽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즉 나를 생각할 때 뇌의 어떤 쪽이 활성화되는가가 실험의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이어서 자식을 생각할 때 뇌의 활성도를 측정하였습니다. 신기하게 나를 생각하거나 자식을 생각할 때 뇌의 활성화되는 부위가 일치하였습니다. 이 실험의 결론은 뇌에서 인식하는 자식과 나는 같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우리 무의식에서는 자식이 또 하나의 나라는 존재이므로, 아이의 삶이 곧 엄마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무의식에서 아이를 바라보면 나의 욕망을 대체하는 존재입니다. 아이는 나의 삶을 거꾸로 돌려서 다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엄마의 뇌는 아이를 통해서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며, 기대와 욕심이 많아지게 됩니다. 기대, 욕심의 후손은 불안이라는 감정입니다. 우리 엄마들이 불안한 과학적인 이유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엄마는 자식을 바라보면 불안했습니다. 구중궁궐에 사는 왕비도 자식을 바라보면 불안합니다. 건강이 염려되고, 혹시 권력을 잃지 않을까 불안합니다. 외척에게 권력을 나누어주고 세자를 보호하게 합니다. 조선 시대에 외척의 비리가 그토록 많았던 이유도 곰곰이 따지면 엄마의 불안이 한몫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필자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기도’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특별히 필자를 위해서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다니셨습니다. 이 아이가 세상에 나가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도록 기도하셨겠지요.   

 

요즘 엄마들도 자식을 바라보면 불안합니다. 다만 그 정도가 과거보다 심해졌습니다. ‘모르면 약이 되지만, 알게 되면 병’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 차라리 마음이 편하여 좋으나, 좀 알고 있으면 걱정거리가 많아 마음이 해롭다는 의미입니다. 과거에는 자식 교육에 관련된 정보를 얻는 방법이 한정되었습니다. 주로 선생님이나 책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요즘 엄마들은 맘 카페, 포스트 등 SNS에서 교육에 관련된 정보들을 얻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SNS에 올라온 글을 읽으면서 엄마는 자기 자신을 돌아봅니다. 대개 SNS에 올라온 글들은 자식 교육에 대한 성공담입니다. 이런 글을 읽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요? 글을 읽는 순간 불안, 두려움, 죄책감이란 감정이 엄마의 마음을 색칠하여 버립니다. 그렇게 키우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아이에게 미안합니다. 우리 아이의 이상 행동이 모두 나의 잘못으로 여겨집니다.    


엄마의 불안 온도를 더 끌어올리는 것은 주변의 모습입니다. TV를 켜면 청년실업률 1위라는 뉴스에 온 감각이 멈춰버립니다. 우리 아이의 재능을 생각해 봅니다. 특별하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미래가 걱정됩니다. 오늘은 같은 반 엄마들과 차를 마시는 날입니다. 1학년 때 모임을 만들었는데, 벌써 4년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새로 보낸 영어 학원 이야기를 합니다. 원어민이 아주 친절하게 잘해주어서 실력이 부쩍 향상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아이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장 주머니가 걱정입니다.    


엄마의 불안 온도가 높아지면 어떻게 될까요? 불안 온도가 높아지면 우리 몸과 마음은 흥분됩니다. 흥분되면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을 잃어버립니다. 마치 홈쇼핑에서 물건을 사는 것과 비슷합니다. 홈쇼핑에서 물건 판매가 곧 종료된다는 판매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냉정함을 잃게 되며 화면 아래에서 보이는 구매번호를 누르게 됩니다. 엄마의 불안 온도가 올라가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매사에 걱정이 많아집니다. 불안하면 마음이 불편하므로 사람은 불안을 줄이는 방향으로 행동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현상은 ‘따라 하기’입니다. 다른 엄마들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따라 합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영어 학원에 등록합니다. 이웃집 아이가 태권도 도장을 다니면 우리 아이도 태권도 도장에 보내야 합니다. 이웃집 아이가 학원을 3개 가면 내 아이는 4개 가야 합니다.    


엄마의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이 됩니다. 우리 뇌에는 ‘거울 뉴런’이 것이 존재합니다. 뇌 속에 거울이 있는 것입니다. 아이의 뇌 속에 있는 거울은 엄마의 행동을 똑같이 재현합니다. 아이도 불안 온도가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걱정이 많아지고 사소한 일까지 엄마에게 물어봅니다. 무엇을 하든가 꾸중을 들을까 두려워하며, 실패할 것 같은 어려운 일은 도전하지 않으며,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아이로 변해갑니다. 남편이 엄마의 불안 수준이 심하다고 비난을 하면, 언쟁과 다툼이 늘어나고, 그 결과 가족 전체의 불안 온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의 사랑 보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