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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범 May 03. 2020

아이들이 수상하다

어린 시절부터 필자의 딸은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했습니다. 거리에서 강아지를 만나면 한동안 미소가 떠나지 못했습니다. 강아지가 사라지기까지 한참 동안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딸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애견 가게를 가게 되었습니다. 애견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십 마리 강아지들이 반겨주었습니다. 겨우 몸을 움직일만한 작은 투명 상자에 들어 있는 그들을 외면하기 어려웠습니다. 심성이 착할 것 같은 포메라니안 한 마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강아지 이름을 ‘솜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미소가 아름다운 아이라는 뜻으로 소(笑)미(美)라고 지어주고 싶었지만, 딸은 ‘솜이’라고 부르자고 했습니다. 강아지의 부드러운 흰 털이 이불솜을 닮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솜이’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종일 집을 비우고 집에 들어가는 날이면 눈물 자국이 보입니다. 아마 주인들을 무척 기다렸나 봅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온몸을 다하여 반겨 줍니다. 앞발은 들고 좌우로 흔듭니다. 등에 붙어있던 꼬리를 세우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합니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환영해주는 존재입니다.    


그런 ‘솜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산책입니다. 우리 마을 근처에는 중앙공원이 있습니다. 나지막한 산자락, 밭두렁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솜이’와 걷기엔 안성맞춤입니다. 아직 개발이 덜 되어서 사람들도 별로 찾지 않는 지역입니다. 밭두렁을 따라 걷다 보면 신기한 풀꽃을 볼 수 있습니다. 한참 풀꽃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솜이’의 콧등이 보입니다. 꽃을 보면 코를 들이밀고 킁킁거립니다. 나를 닮아 꽃을 좋아하나 봅니다.     

하루는 ‘솜이’와 중앙공원 오솔길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길옆에는 매화나무들이 줄을 맞추어 자라고 있습니다. 겨울바람이 길을 잃었는지 매화나무 끝에서 윙윙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습니다. 흰색 속살이 방글방글한 꽃망울이 보였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지금이 1월 8일인데. 예쁘다기보다는 당황스럽고 안쓰러웠습니다.    


아직 첫눈도 오지 않았습니다. 눈을 보고 싶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곳저곳에서 넘쳐납니다. 연인들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렸습니다. 아이들도 손을 호호 불며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이 하고 싶을 것입니다. 필자도 ‘솜이’와 눈 발자국을 만들 날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무리 날씨를 검색해도 눈이 온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오직 카페에 있는 눈사람만을 보며 지금이 겨울의 한 복판에 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우리의 겨울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봄이 와버렸습니다. 설렘보다는 짙은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매화꽃이었습니다.  

  

대한이 오기 전에 핀 매화꽃을 보면서 요즘 날씨를 생각해보았습니다. 거리에는 두꺼운 패딩 옷 대신에 경량 옷을 입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아마 날씨 때문이겠지요. 소한과 대한 사이의 날씨가 가장 춥다고 합니다. 대한이 10여 일 남았으므로 지금이 가장 추운 시기이지요. 하지만 어김없이 낮이 되면 온도는 영상으로 올라갑니다. 필자가 글을 쓰는 시간이 아침 9시 조금 넘었습니다. 영상 3℃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낮이 되면 온도는 더 올라가겠지요. 매일 계속되는 영상의 온도에 매화는 꽃을 피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온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립기상연구소가 최근 공개한 ‘미래 기후변화 전망’ 자료를 보면 2100년 한반도는 태백·소백산맥 산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이 아열대성 기후가 되리라고 이야기합니다. 환경부 발표에서도 지구온난화로 인하여 2080년대 온도는 지금보다 약 5℃ 상승하고, 강수량도 17% 늘어날 것으로 예상합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 한반도가 냉·온대성 기후에서 아열대성 기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반도 기온의 상승이 겨울의 중턱에서 매화꽃을 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흰색의 눈을 보고 싶다고 이곳저곳에서 이야기합니다. 성급한 마음에 눈 구경은 이제 외국에서나 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눈사람을 만들며 신나는 아이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따뜻한 눈길을 볼 수 있는 낭만 가득한 겨울을 소망해봅니다.    


겨울 날씨만큼 초등학교 아이들의 마음도 수상합니다.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아이들이 고개를 쑥쑥 내밀고 있습니다. 욱하는 아이, 악쓰는 아이, 화장하는 아이, 말대꾸하는 아이, 우울한 아이 등 종류도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착한 이미지의 초등학생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중2병이 초등학교로 옮겨왔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춘기에 접어든 중학교 2학년 아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초등학교에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중학교 2학년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북한이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유머 아닌 유머가 생겼습니다.   

 

이제는 중학교 2학년이 보이던 사춘기 모습이 초등학교 6학년에서 나타납니다. 아니 4년을 건너뛰어 초등학교 4학년부터 시작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춘기는 몸과 마음이 자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기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춘기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은 성질이 고약해지며 불만이 많아집니다. 대들 땐 맹수와 같고 외모, 이성에게 관심이 늘어납니다. 사춘기와 관련해서 가장 쉽게 듣는 이야기는 뇌의 리모델링입니다. 오래된 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 것처럼 아이들의 뇌가 새로운 구조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이야기는 이성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이 발달하지 못해서 사춘기가 나타난다는 설명입니다. 점차 전두엽이 발달함으로써 사춘기의 열병이 사라진다고 책에서 강의에서 들었던 내용입니다.   

 

아이를 키우거나 가르치는 사람 누구나 공감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이 보이는 모습은 사춘기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특징들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 어떤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옆집에서 아이의 악쓰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어찌나 크게 고함을 지르던지 아이가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을 했습니다. 옆집 문을 두드렸고, ‘노는 소리’라는 아이 엄마의 대답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이들이 신이 나서 즐겁게 노는데, 괴성이라니 이해하기 어려웠답니다. 엄마의 이야기처럼 학교에서도 괴성 지르는 아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괴성이란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 아닙니다. 글로 묘사하기는 어렵지만 쌓였던 울분을 토해낸다고 해야 할까요? 여자아이들은 고음의 ‘악악’과 비슷하고, 남자아이들은 고음의 ‘웅웅’과 비슷합니다. 이런 소리가 4학년 교실에서도 들리고 6학년 교실에서도 들립니다.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춘기의 특징이 나타나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습니다. 학교에서 모범생이라 불리는 아이에게서 나타나기도 하고, 문제아라 불리는 아이에게서도 보입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져 버렸습니다. 한반도 기온 상승처럼 아이들의 목소리 온도도 올라가 버렸습니다. 경력이 오래되신 선생님들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아이들의 목소리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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