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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광암(?) 같습니다!

by 이내화

저는 강사를 ‘자영업자’라고 합니다. 이 말은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수입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다 보니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늘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하루에 보통 두세 개씩 강의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런 탓에 휴식은 물론 여유를 갖고 여행을 가는 것은 남의 일이었고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제주도에도 수 없이 갔지만 제대로 땅을 밟지 못한 채 다녀온 것 같습니다. 제주공항에서 바로 강의장으로 갔고 마친 후 곧장 다음 강의를 위해 공항으로 가 서울행 비행기를 탔기 때문입니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휴양지인 제주도에 여행을 가는데 전 일하러 다녀온 게 전부였습니다.

이런 바쁜 일정에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었습니다. 한 여행 전문가가 저에게 해준 말입니다. “세계여행은 돈으로 가는 게 아니라 시간으로 가는 겁니다.” 제 마음을 콕 찌르는 말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아내가 저 몰래 작전을 하나 펼쳤습니다. 처제가 살고 있는 호주에 부부여행을 도모한 것입니다. 한 달 전쯤 항공권도 미리 준비를 해놓았습니다. 저도 어쩔 수 없이 아내 말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출발 3일 전 강의를 마치고 집에 도착한 후 샤워를 하고 나와서 머리를 말리는데 아내가 제 배 언저리를 보면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여보! 왜 이렇게 아랫배가 볼록 나와 있어! 이상한데...” 이 말을 듣고 전 내심 놀랐습니다. 실은 새벽녘에 자주 깨서 소변을 보기 때문입니다. 아마 비뇨기 계통에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이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남자라는 것 때문에 스스로 숨기고 한 1년 지냈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아내는 큰 일 났다면서 바로 대학병원에 특진 예약을 하고 다음날 비뇨기과 전문의 진찰을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저를 보자마자 좀 큰 종이컵을 주면서 소변을 받아 오라는 겁니다. 그런데 소변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컵의 1/3 정도 받아서 보여주니까 의사 선생님이 바로 조치를 취했습니다. 제 요도에 호스를 넣으니까 소변이 약 800CC 정도 주룩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을 지켜본 의사 선생님이 다소 당황하면서 “선생님 방광 쪽에 트러블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입원을 하셔야 합니다.”

이 말에 제가 답을 했습니다. “선생님 이번 주말에 호주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혹시 다녀온 뒤 입원하면 안 될까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안 됩니다. 혹시라도 비행 중에 방광이 터지면 돌아가십니다. 지금 당장 입원하셔야 합니다.” 이 통보에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브리즈번의 골든 비치, 캥거루와 코알라. 이런 풍광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입원해서 좀 더 검사를 받기로 했습니다. 당시 의사의 말로는 제가 방광암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습니다.

실은 전립선 비대증에 문제가 있어서 진찰을 받은 것인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진 것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방광 내시경을 통해 방광암 면피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바로 전립선암 쪽으로 방향을 바꿔서 조직 검사를 했습니다. 통상 조직 검사 후 5일 후쯤 결과가 나온다고 합니다. 이렇게 10일을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처음 암 검사를 하고 나니 두렵고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방법이 없었습니다. 성경을 잡는 일이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 지 얼마 안 된 터라 성경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무작정 시편을 읽어 갔습니다. 솔직히 말해 다윗이 누군지도 모르고 읽었습니다. 그냥 읽으면서 제 형편에 맞는 대목이 나오면 울기만 했습니다. 호주 여행을 못 간 것이 억울해서가 아니라 제 모습이 너무 한심했습니다. 세상의 성공 룰인 것 마냥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렇게 멍청한 것이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입원한 것을 알고 목사님을 비롯해 지구 교인들이 심방을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심방을 오기로 한 그날따라 폭설이 내려 목사님도 지구 교인들도 못 오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기도를 받고 요동치는 마음에 안정을 얻고 싶었는데 틀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제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목사님께서 전화로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간절한 치유기도를 해주시는데 저는 “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하면서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면서 제발 암만 피해 가주시라고 울어댔습니다. 이렇게 5일이 지난 후 전립선암에서 벗어나고 바로 전립선비대증 수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물은 계속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여행을 가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취소를 했던 강의 일정이 눈에 밟히는 것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노를 젓기로 했지요. 수술하고 회복하는 기간에 소변 줄을 차고 특강을 하러 다녔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제가 병석에 없자 난리(?) 아닌 난리를 피웠습니다. 각서도 쓰고 혼나기도 하고요. 제 별명이 Any Call이라서 부르면 전국 어디든지 가야 한다는 철칙이 있어서 더더욱 그런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런 상황에서조차 저는 돈과 강의에 눈이 먼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는 강연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소변 줄을 차고 강의하는 저의 모습에 연신 감탄을 하면서 환호하고 진정 어린 격려와 박수를 보내는 것이 저는 희열을 느꼈습니다. 이렇게 한탕(?) 뛰고 다시 병원에 와서 시편으로 밤을 새우고 또 새우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 가기를 시작한 것 같고 그분이 저를 지켜주신다는 것을 체험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조차 당시엔 확실히 몰랐습니다. 의사가 능력 있고 의술이 좋아서 치료가 잘 되었고 제가 운이 좋아서 치료가 된 것으로 착각을 한 것입니다. 지금 와서 보면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무사히 퇴원을 하고 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계속 노를 저으러 다녔습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저를 보시면 <배은망덕> 그 자체였던 겁니다. 참 철이 없던 시기입니다. 너무 감사한 일이고 너무 고마운 일이고 모든 게 하나님께서 긍휼과 자비를 베푸셨던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겁니다. 어쩌면 지금도 팔이 안으로 굽듯이 제 기준으로 제 잣대로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나 생각을 하고 반성을 합니다. 그리고 회개를 합니다.

저에겐 세례를 해주신 하림교회 홍성운 목사님! 새신자반 입교와 기독교 개안을 해주신 김명철 목사님, 늘 격려해 주신 이순구 장로님 그리고 순 모임이 뭐라는 것을 알려주신 안종일 장로님을 비롯한 순 부부 식구들. 이분들은 제가 신앙생활을 시작할 수 있도록 <모퉁잇돌>이 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 소중함을 잊고 살았습니다. 이분들이 저의 영적근육을 만드는 기초체조를 가르쳐주신 분들입니다. 이 분들의 수고와 사랑으로 정착하고 하나님의 영적 군사가 된 것입니다. 이젠 저도 남을 위한 디딤돌이 되려고 부단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다들 평안하시지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이 말씀밖엔 드릴 게 없네요.”

성경말씀 ☞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급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애굽기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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