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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Mar 06. 2017

[영화리뷰] 문라이트

꾹꾹 눌러쓴 한 편의 시 같은 영화

영화를 보고 나면 포스터 디자인에 보다 더 감탄하게 된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쓴듯한 한 편의 시 같은 영화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

"달빛 아래에서는 모두가 Blue-"
누구의 시였더라. 이렇게 한 땀 한 땀 눌러쓴 시가.
장면 장면이 가슴을 꾹 누르면 들어오는 영화였다. 배리 젠킨스 감독은 자신의 두 번째 장편 영화로 세상에 이런 영화도 있습니다라고 목청껏 외쳤다. 귀가 얼얼하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달빛 아래에서는 모두가 푸를 수밖에 없지 않냐고, 우린 모두 달빛 아래에서 살고 있지 않냐고 그렇게 묵직이 질문한다.


이 시는 3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1) little-blue 2) chilon-red 3) black-black

이 시는 3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감독은 친절하게도 화면 위에 활자를 입혀 이 영화가 3부로 나누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각 연의 제목은 1) little 2) chilon 3) black으로 되어있는데 이는 각 연의 색깔, blue-red-black 로도 상징되고 있다.


1연 little-blue

주인공 샤이론의 어린 시절의 별명인 little(꼬맹이). 각 연의 제목인 little-chilon-blck은 모두 주인공인 샤이론을 지칭하는 말인데 그중 little(꼬맹이)은 놀림감으로서의 샤이론을 뜻한다. 힘없는 꼬맹이 샤이론은 마약 밀매상 '후안'을 만나면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후안이 샤이론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모습, 흡사 이제 막 양수에서 나온 갓난아이의 모습처럼 보인다. 감독의 카메라 앵글에 의도가 있다-


1연을 상징하는 색인 blue는 바다이자 엄마의 양수로 보인다. 아직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샤이론은 여전히 어린 아이다. 엄마의 품이 필요한, 하지만 자신의 진짜 엄마에게는 도저히 갈 수가 없는, 갈 곳을 잃은 어린아이. 아직까지 Touch를 받은 적이 없다. 즉, 섹슈얼리티를 겪은 적이 없다. 대신 폭력은 무수히 경험한다. 다만 그것을 극복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1연은 red-저항, Touch, 배신-이전을 보여준다.


샤이론의 진짜 이름, little을 벗어났음을 뜻한다. 계기는 Touch

2연은 드디어 little을 벗어난 샤이론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샤이론이지만 여전히 학교 폭력배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억압 속에서 살아간다. 엄마의 마약 중독은 더욱 심해졌고 의지하던 후안은 죽었다. 더욱 길고도 험난해진 괴로움 속에서 그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다가와 줬던 케빈을 만나 그의 SEX 이야기를 듣는다. 샤이론은 몽정을 한다-


엄마는 red다. 엄마의 방도 red.

집도 학교도 갈 수가 없는, 즉 엄마의 사랑도 친구들과의 우정도 기댈 수 없는 샤이론은 홀로 후안과 거닐었던 바다에 가게 되고 거기서 케빈을 만나게 된다.


샤이론의 유일한 해방구-케빈
그와의 첫 경험 후, 샤이론은 말한다. "I'm sorry"

샤이론은 여기서 생애 첫 Touch를 경험한다. 마치 수줍은 소녀처럼 몸을 부르르 떨던 그가 처음 뱉는 한마디는 "I'm sorry."
하지만 며칠 후 믿었던 케빈에게서 완전히 배신당한 샤이론은 자신을 괴롭히던 불량배에게 생애 처음 복수라는 것을 시도하고 결국 정학을 당해 학교를 떠나게 된다.

첫 Touch=섹슈얼리티
첫 반항=저항

여기까지가 2연 chiron-red. 블루를 벗어나 과도기의 샤이론, 이제야 피가 돌기 시작한 샤이론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케빈의 배신으로 좌절을 한 샤이론은 black의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완전히 다른 모습의 샤이론. 그는 classic black이 된 듯하다. 다시 만난 케빈과 샤이론

힘없고 나약했던 샤이론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치 후안이 환생한 듯한 모습의 샤이론은 옛날의 후안만큼이나 강인해 보인다. 흑인의 전형인 듯. 하지만 black은 샤이론에 대한 케빈만의 애칭이기도 하다. 케빈만이 black이라 부른다. 혹은 부를 수 있다. 이는 그의 겉모습은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케빈에게만은 여전히 옛날 그대로의 black임을 뜻하기도 한다.


You're the only man that's ever touched me

아아- 저 눈빛. 어릴 때의 샤이론 그대로의 눈빛을 가지고 날 터치한 사람은 네가 유일하다고 말한다. 고백한다. 수줍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는 모조리 변했지만 변하지 않았다.

마치 난 널 항상 기다렸어-라고 말하는 듯.

이 긴 영화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는 것은 주인공 샤이론의 고되지만 그 고됨 속의 순수하고도 진진한 순정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달빛 아래에서는 모두가 blue이듯 이들의 사랑도 달빛 속에서 빛날 수 있음을 뜨겁게 응원하고 있어서, 그래서이지 않을까.



*이 영화의 키워드를 하나만 꼽자면 'touch'
*마치 한 배우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 시절까지를 촬영한 듯한, 3 배우의 몰입력. 감탄스럽다-
*왕가위를 떠올리게 하는 미장센, 영화를 보다가 이 감독이 왕가위와 관련이 있는지가 너무 궁금해 검색을 해보기도 했다.

*이 영화를 아니, 어떤 영화든 카테고리화 하는 것에 반대한다. 소수자, 퀴어 영화 같은 단어가 영화를 더욱 소수자들의 영화로 만든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그냥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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