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림 Jun 10. 2019

그때 그 일만 아니었어도

그때 그 일만 아니었어도 엄마에게서 조금은 도망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멀리, 아주 멀리.


"난 아빠한테 미안한 게 많아서 고생을 더 해도 된다. 지금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빠한테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한 마음뿐이다."


하필이면 엄마는 본인의 생일날 자식들을 앞에 두고서, 자신이 좋아하는 복분자를 한 잔 들이켜고는 복분자 같은 붉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더 고생스러운 삶을 살겠다는, 끔찍한 선언. 그런 선언을 듣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아빠의 부재가 엄마를 자유롭게 놓아주길, 엄마가 엄마와 아내라는 좌표에서 한껏 도망친 삶을 꿈꾸길 원했었는데. 미안하다니. 아빠가 땅에 묻힐 때 그런 마음까지 같이 묻지 그랬어.


아빠한테 답장을 해야 했다.


아들 술 한잔 할까


라는 문자를 보고는 핸드폰을 저 멀리 집어던지지 말았어야 했다. 아빠는 왜 이리 나약하냐고, 당신이 엄마를 지켜야 할 때 아니냐고 타박하듯 핸드폰을 던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까짓 거 술 한잔 들이켜면 되는 거였다. 아빠, 아빠가 지금 술 마실 때에요? 왜 그래요? 엄마가 아픈데! 내가 엄마 곁에 있을 수도 없는데! 네?! 아빠 정신 좀 차려요!라고 취한 정신에 아빠의 멱살을 잡고서라도 소리를 질렀어야 했다. 얼마 후 아빠는 땅 속으로 갔고 어쩔 수없이 그 위로 소주를 뿌려드려야만 했다. 그때 그 일만 아니었어도. 아빠의 문자에 답장만 했었어도. 


난 수배 생활을 길게 했다. 그게 노무현 때인지 이명박 때인지도 가물가물하다. 아빠가 문자를 했을 때는 이명박 때였던 것 같다. 아 노무현 말기인가. 어차피 둘 다 개새끼다. 엄마가 아팠다. 몇 차례의 암수술(수술이 끝나면 재발, 수술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의 전이를 발견)로 포항에서 가구 장사를 하던 아빠는 가게를 접고서 서울로 올라와 엄마 병간호를 해야 했고 나는 엄마의 수술 직전, 직후에나 조심스레 얼굴을 비출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는 동안(죽음에 가까운 수술이 몇 차례 진행되는 동안) 아빠는 돈이 떨어졌고, 심리적으로 무척 허약해져만 갔다. '엄마가 없는 삶'이라는 그림자가 자꾸만 아빠의 등을 내리쳤는지 아빠의 등은 자꾸만 쪼그라 들어갔고 눈에 초점이 사라져 갔다. 어느 날 아빠가 누군가에게 돈을 꾸러 갔다. 하룻밤쯤 자고 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 날 늦은 저녁에 집에 들어왔다. 마침 나도 집에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손을 부들부들, 소주잔의 소주가 반쯤 흘러내릴 정도로 부들부들 떨면서 겨우 입에다 갖다 대는 장면을 봤다. 하루의 마감이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시는 것이었던 아빠가 그 날은 한 잔도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말없이 방에 들어가더니 문을 닫으셨다. 무슨 일이었을까. 어디서 그렇게 세게 긁힌 걸까. 어차피 사람이었을 테다. 아주 아주 애정하고 의지했던 그런 사람. 얼마 후 아빠는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했다. 혼자 중얼거리거나 가끔은 소리를 지르며 괴상한 주장을 펼쳤다. 대체로 누군가 쫓아오고 있었고 누군가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난 그런 아빠를 한심해했다.


수배가 끝나고, 사실상 내가 수배를 끝내기로 결심하고, 집으로 완전히 들어왔을 때 이제 엄마의 곁에는 내가 있어야만 했다. 아빠를 도와 가구 장사를 하던 엄마는 이제 겨우 수술이 끝난 몸으로 과일장사를 시작했고 곧이어 야채 장사, 식당 알바 등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무능했고 엄마는 먹고살아야 했다. 어느 날 알게 된 젊은 편의점 사장의 추천으로 편의점을 시작했고 그리하야 24시간 365일 꺼지지 않는 공장의 사장이 돼 버린 엄마. 여전히 무능한 아들 덕에 동네에서는 알만한 사람 다 아는 편의점 사장으로 씩씩하게 고생하는 엄마. 이딴 편의점 때려치우자고 이야기하면 네가 엄마 용돈 줄 거냐고 해서 할 말 없게 만드는 우리 엄마. 난 여전히 아빠 제삿날 아빠의 잘못을 탓한다. 요즘은 간소한 제사가 유행이라는 말이 먹히지 않는 엄마에게 또 역정을 내면서. 


화해할 수 있을까. 나와 아빠가. 혹은 나와 엄마가. 실은 내가 나와.

받아들여야 수용할 수 있을 텐데. 아아- 그것은 너무나 무섭습니다.

아빠가 없는 삶, 엄마가 고생해야 하는 삶, 나의 무능력함. 이 모든 게 버겁기만 합니다.


전 무대로 도망칠 준비를 합니다. 미안합니다.

전 사실 겁쟁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