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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림 Jun 13. 2019

30년 뒤의 나는

30년 뒤의 나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이층 집의 이층에 살고 있을 거야. 

강아지는 세 마리쯤. 너무 많아도 좋지 않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즐거움만 즐기고 싶어.

강아지 이름은 순돌이, 순심이, 영식이, 영희 같은 아주 오래전부터 곁에 있었을 것 같은 이름이 좋겠어. 

순돌아! 부르기만 해도 눈물겨운. 


빈 방 하나가 있을 거야. 그 방에서는 그림만 그리는 거지. 방의 빈 벽들이 도화지 역할을 할 거야. 그려놓은 그림들이 싫증이 나면 새로운 색으로 그림들을 덮어버리고 다시 그 위에 그림을 그려. 영원한, 새로고침 도화지.

혹여나 물통을 엎거나 물감을 밟아버릴 수도 있으니까 강아지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방문은 굳게 닫아놔야 해.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싶어. 그림을 그리다 보면 금세 강아지들이 보고 싶어 질 거거든. 아마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 순돌아! 하며 끌어안을지도 몰라. 그래도 난 물감 냄새 가득한 곳이 좋아. 가끔은 그곳에서 잠들고 싶어.


애인이나 아이의 얼굴은 떠오르지가 않네. 아마도 없을 예정인 듯.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그건 100년 전이건 30년 후 건 변함없다. 엄마. 엄마는 어디 있을까. 엄마는 아마 나의 집 건너 건너편쯤의, 마당이 너른 집에서 지낼 것 같아. 몸집이 엄마만 한 개 두 마리를 키우면서. 마당에 놓인 벤치에서 꾸벅 잠이 든 엄마의 집에 나의 개 세 마리를 데리고서 놀러 가야지. 엄마와 수다를 떨다 장이나 보러 가야지.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생선 구이와 마당에 심어놓은 쌈채소를 뜯어서 맛있는 저녁식사를 준비해야겠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좌표를 모르겠네. 음. 국적은 이미 잊은 지 오래여서.


네가 찾아오긴 힘들 거 같아. 그러니 부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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