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의 성공 방식
엔비디아와 젠슨 황의 성공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한 달간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국내에 출시된 몇 권의 관련 서적을 살펴보았지만, 뭔가 아쉬운 점이 느껴졌다. 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자료를 찾던 중, 지난 12월 10일 미국에서 출간된 책을 다룬 기사를 발견했다. 미국 경제 매체 배런스(Barron’s)의 태 김(Tae Kim)이 집필한 ‘더 엔비디아 웨이: 젠슨 황과 기술 거인의 탄생(The Nvidia Way: Jensen Huang and the Making of a Tech Giant)’이었다.
이 책은 젠슨 황과 전·현직 엔비디아 임원을 인터뷰해 작성된 것으로, 가장 최신의 생생한 정보가 담겨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주문해도 책이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우선 관련된 국내 리뷰와 자료를 참고하기로 했다. 동아일보에서 작성한 책 리뷰 기사와 Stripe에서 진행한 인터뷰 영상을 함께 보며 엔비디아와 젠슨 황의 성공 공식을 깊이 들여다볼 계획이다.
#1. '보고' 대신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문화
인터뷰에서 젠슨 황은 "보고를 받는 미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언급했다. 그는 심지어 “I hate the report meeting. They don't have to report to me(나는 보고 미팅을 싫어한다. 나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다)”라고까지 말한다. 그렇다면 대표에게 보고를 하지 않는 조직은 과연 어떻게 돌아갈까? '보고 없는 조직'이라는 개념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떻게 운영될지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 그의 철학이 조금 더 명확히 다가왔다. 젠슨 황은 보고에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진짜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매일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듯, 구성원들도 상사나 대표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이 아니라 실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기를 기대한다. 결국, 이는 조직 전체가 불필요한 과정에 얽매이지 않고 핵심 과제와 목표에 전념하도록 이끄는 리더십 철학이라 볼 수 있다.
이 철학은 단순히 보고를 없애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문제 중심적인 업무 문화를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엔비디아가 지속적으로 혁신을 이어가는 비결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2. 젠슨 황의 ‘톱 5 이메일’ 시스템: 약한 신호를 감지하는 리더십
젠슨 황은 전통적인 보고서를 선호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모든 직원이 1~2주에 한 번씩 ‘톱 5 이메일’을 작성해 팀과 임원, 그리고 그 자신에게 보내도록 한다. 이메일에는 두 가지가 담겨야 한다: ‘현재 작업 중인 상위 5가지 사항’과 ‘최근 시장에서 관찰한 사항’.
흥미롭게도 젠슨 황은 이 이메일을 금요일 오후가 아닌 일요일 밤에 읽는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금요일 오후에 이메일을 읽으면 즉흥적으로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을 충분히 두고 정보를 숙고하며, 주말의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이메일을 읽는다. 젠슨 황이 ‘톱 5 이메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직과 일의 약한 신호를 감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한 신호’란 한눈에 드러나지 않는 변화나 트렌드를 의미하며, 이는 때로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거나 투자 기회를 포착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약한 신호의 활용: 머신러닝 투자 사례
예를 들어, 머신러닝과 관련된 직원들의 이메일 여러 통을 읽은 뒤, 젠슨 황은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이를 문제로 인식하고 즉시 더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해당 프로젝트에 투입하라고 지시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약한 신호의 감지는 시장의 요구에 맞춰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줬다.
젠슨 황의 리더십 방식은 단순히 직원들의 업무 현황을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 내부의 작은 변화와 시장의 흐름을 연결 짓고, 이를 기반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는 엔비디아가 기술의 최전선에서 혁신을 이어갈 수 있는 중요한 동력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3. 리더의 역할: 조직의 대타(Pintch hitters)
젠슨 황은 대표의 역할을 ‘대타’로 정의한다. 그는 조직 내 운영 업무를 자신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인정하며, 이를 대표가 중복해서 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신, 대표는 운영 업무에서 손을 떼고 권한을 과감히 위임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닌다.
그렇다면 대표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젠슨 황의 답은 명확하다.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 놓치고 있는 일,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찾아 나서 해결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보고 받고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데 주력하는 역할이다.
이러한 철학은 그의 회의 참석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정기적인 운영 미팅(regular operational meeting)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대신 특정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 회의(Problem Meeting)나 아이디어 회의(Idea Meeting)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대타’로서 조직의 비효율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한다. 젠슨 황의 리더십은 단순히 권한위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표로서 조직의 공백을 메우고 중요한 결정을 통해 팀의 방향성을 이끄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엔비디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면서도 혁신을 지속할 수 있는 핵심 동력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4. 작고 빠른 조직
엔비디아는 1999년 상장 당시 250명이던 작은 조직에서, 2010년 5700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젠슨 황은 조직이 커지더라도 작고 빠른 조직의 특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피라미드형 조직을 지양하며, 평평하고 투명한 조직 구조를 지향했다. 이 철학의 실현으로 CEO 직속 보고자가 60명이 넘는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일반적으로 같은 규모의 기업들이 10명 미만인 것과 비교해 이례적이다.
젠슨 황의 리더십 방식은 효율적인 정보 공유를 중심으로 한다. 엔비디아에서는 1:1 회의 대신 대규모 회의를 선호하며, 6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한자리에서 정보를 즉각 공유한다. 이를 통해 모든 팀원이 중요한 정보를 동시에 파악하고 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진다.
#5. 화이트보드 사랑
엔비디아의 사무실과 회의실에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화이트보드라고 한다. 젠슨 황은 출장을 갈 때 화이트보드를 가지고 갈 정도로 사랑한다고 한다. 엔비디아에서 일을 할 때 대부분의 경우 이 화이트보드가 파워포인트를 대체한다.
"분기마다 젠슨 황은 수백 명 리더를 모아 회의를 여는데요. 모든 총괄 관리자는 화이트보드를 이용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비즈니스 스토리를 설명해야 합니다. 화려한 파워포인트 없이 하얗게 비어있는 보드 앞에 서야 하는 거죠."
파워포인트를 이용해하는 발표와 뭐가 다를까? 마커펜 하나에만 의존해서 실시간으로 자신의 사고 과정을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리더가 프로젝트 내용을 잘 알고 있는지, 논리에 빈틈은 없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대충 자료로 때울 수가 없다.
#6. 미션이 보스 (Mission is the boss)
젠슨 황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관료주의다. 이는 의사결정 속도를 느려지게 할 뿐 아니라 내부정치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젠슨 황은 조직끼리 경쟁하고 서로 성공을 하기 위해 일하지 말고 미션을 위해서 일하기를 강조한다.
"미션 실현이 목표이지, 조직이나 임원을 보고 일하는 게 아니란 거죠. 엔비디아에선 모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그 책임자(Pilot in Command)를 정하고, 그가 직접 CEO에 보고토록 합니다. 실무 책임자가 임원이나 팀 이름 뒤에 숨지 않게 하죠."
#7. 업무 몰입과 높은 성과
강도 높은 업무와 낮은 이직률의 비결
엔비디아는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직장’ 1위로 뽑혔지만, 그 이유는 복지와 근무 환경이 아니다. 이곳에서는 주 60시간 이상의 근무가 일반적이며, 주말 근무도 흔하다. 심지어 아이를 데리고 회사로 출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의 이직률은 3% 미만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1. 철저한 성과 보상
엔비디아는 칭찬 대신 주식으로 보상한다. 성과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거나 특별 기여자로 선정되면 수백 주의 주식을 지급한다. 심지어 CEO가 개별 성과를 확인한 후 직접 주식을 지급하기도 한다. 빠르게 오르는 주가는 우수 인재들이 회사에 머물게 만드는 큰 요인이다.
2. 최고의 동료와의 협업
엔비디아의 엔지니어들은 업계 최고 수준의 동료들과 함께 세상을 바꿀 기술 개발에 참여한다. 이들은 조직 정치와 같은 불필요한 요소에서 자유롭게 기술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다. 이는 엔지니어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조건으로, 기술 업계에서 엔비디아의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어떤 엔지니어도 폐기될 게 뻔한 쓸모없는 기술 개발에 몇 년을 허비하고 싶지 않습니다. “(내부 정치 같은)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기술에만 100% 집중할 수 있다”(전 GPU 설계자 리이 웨이)는 건 기술 업계에서 매력적인 조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 못한 대기업이 너무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이 이런 근무강도에도 아무 말하지 못하는 건 회사 전체에서 가장 긴 시간, 가장 많이 일하는 사람이 바로 CEO이기 때문이다. 젠슨 황은 영화를 봐도 기억을 못 한다고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일 생각을 하기 때문에... TT
많은 사람들이 엔비디아를 "젠슨 황 그 자체"라고 표현한다. 그의 리더십이 곧 엔비디아의 정체성이자 성공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동시에 젠슨 황 이후의 엔비디아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창업자의 리더십이 사라진 후, 회사가 어떻게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1년간 엔비디아가 조직 내에 구축한 DNA는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을 만큼 강력하다. 젠슨 황의 철학과 원칙은 단순히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엔비디아의 구조와 문화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이제 엔비디아가 풀어야 할 숙제는 창업자가 떠난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성장 메커니즘을 조직 내에 확립하는 것이다. 젠슨 황이 남긴 철학과 시스템을 바탕으로, 강력한 리더십의 전환과 장기적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엔비디아의 다음 도전 과제라 할 수 있다.
결국, 젠슨 황의 리더십이 만든 기반 위에서, 조직 자체가 스스로 혁신하고 진화할 수 있는 역량을 얼마나 강화할 수 있느냐가 엔비디아의 미래를 결정짓는 열쇠가 될 것이다.
참고 인터뷰 : https://youtu.be/8 Pfa8 kPjUio? si=eX8w 6 nPtoZvgZ0 sd&t=1280
참고 기사: https://www.donga.com/news/Economy/article/all/20241213/1306344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