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 새빨간 거짓말
브레인스토밍은 집단 창의성을 높이는 대표적인 기법으로 알려져 있다. 과연 진실일까?
구글 스칼라(scholar.google.com)에 "brainstorming productivity"라고 검색해 보라."Productivity loss in brainstorming groups"라는 논문부터 "The brainstorming myth", "The illusion of group productivity" 등 브레인스토밍의 부정적 효과에 관한 논문 일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조직들은 브레인스토밍의 환상에 빠져 있는 듯하다. 브레인스토밍의 4가지 원칙만 잘 지키면 집단 창의성이 드라마틱하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브레인스토밍의 효과성을 검증하기 위해선 비교할 수 있는 집단이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각 개인의 단순 합으로 이뤄진 집단을 명목집단(nominal groups)으로 이름 짓고 브레인스토밍 그룹과 비교했다. 여러 연구에서 반복 검증된 결과는 아이디어를 지속 교류하는 브레인스토밍 집단에 비해 각자 아이디어를 내고 단순하게 취합한 명목집단이 아이디어의 양과 질, 모든 측면에서 우수했다. 아이디어의 양의 경우, 명목집단이 브레인스토밍 그룹에 비해 평균 3배 가량 높았고, 좋은 아이디어 중 79.2%는 개인 조건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왜 그럴까?
연구자들은 먼저 생산성 차단(production blocking) 효과를 언급한다.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소위 말해 무임승차하는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효과는 물론이고,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손치더라도 발언권을 얻고 기다리는 동안 아이디어를 잊어버리거나 발언을 포기하는 경우도 흔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말에 집중하는 것 역시 인지적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이디어 생성에 필요한 인지적 자원을 나눠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아이디어를 메모지에 적어 공유하는 브레인라이팅(brainwriting)은 나을까? 그렇지 않다. 이 역시, 타인의 아이디어를 이해하는 데 시간과 자원을 쓰는 것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평가 불안(evaluation apprehension) 요소도 집단 브레인스토밍 효과를 제한한다. 사회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타인이 부정적으로 볼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홀로 아이디어를 낼 때보다 아이디어의 양과 질이 떨어진다.
사회 부합 효과(social matching effect)도 있다. 사회 부합 효과란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기여도가 큰 사람들은 집단 평균에 맞추기 위해 기여도를 낮추고 기여도가 낮은 사람들은 더 노력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기여도를 낮추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지만, 더 기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사회부합효과는 집단 아이디어의 질과 양을 낮추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쉽다.
집단 생산성 착각(illusion of group productivity)도 브레인스토밍 과정에 개입한다. 집단 생산성 착각은 공동 과제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은 자신이 집단의 다른 사람에 비해 더 생산적이라고 믿는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4명이 함께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난 후, 각자 얼마나 기여했는지 질문을 하면 평균 36%라고 답을 하지만 각자 기여의 평균은 25%다.
그런데 왜 브레인스토밍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생길까?
네덜란드 흐로닝언대학교(University of Groningen) 인적자원관리 및 조직행동학과 버나드 리스타드(BERNARD A. NIJSTAD) 교수 등의 연구진은 사람들이 브레인스토밍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브레인스토밍 그룹이 성과에 대한 만족도가 더 높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참가자들은 쉬운 과제와 어려운 과제를 받게 되는데, 쉬운 과제의 경우 "어떻게 하면 건강을 유지하거나 증진할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를, 어려운 과제는 "어떻게 하면 네덜란드 사회에 이민자들이 더 잘 통합될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를 고민한다.
쉬운 과제보다 어려운 과제일 때 브레인스토밍 그룹은 덜 실패하고 더 만족하는 경향을 보였다. 어려운 과제를 풀 때, 혼자 아이디어를 낸다면 아이디어의 양은 많지만 실패할 확률 역시 높다. 그러나 함께 아이디어를 낸다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영향을 받아 아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기는 어려워지지만 실패할 확률 역시 줄어든다. 실패를 많이 경험할수록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지기 마련이다. 또한, 어려운 과제의 경우 상대도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쉽게 목도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실패를 자신의 능력부족이 아닌, 과제의 난이도 때문이라고 외부 귀인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만족도는 높아진다.
출처: Nijstad, B. A., Stroebe, W., & Lodewijkx, H. F. (2006). The illusion of group productivity: A reduction of failures explanation.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36(1), 31-48.
또 다른 연구에서도 조직에서 브레인스토밍을 쓰는 이유에 대해 생산성은 낮지만, 집단 응집력(group cohesiveness)을 높여주기 때문에 사용한다고 말한다. 함께 문제를 고민하고 있으면 비록 아이디어의 양과 질은 떨어질지 모르나, "우리는 하나다"는 인상을 받기 쉽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좋을까?
카네기 멜론 대학교 테퍼 비즈니스 스쿨(Tepper School of Business)의 아니타 울리(Anita Williams Woolley) 교수 등의 연구진은 1,300개 이상의 그룹의 연구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집단 지성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룹 전체의 숙련도가 가장 중요하다. 또한, 각자의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수집, 공유, 조정하는 규칙이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한 마디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서로가 합의한 프로세스에 따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집단지성이 발현된다는 말이다.
출처: Riedl, C., Kim, Y. J., Gupta, P., Malone, T. W., & Woolley, A. W. (2021). Quantifying collective intelligence in human group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8(21), e2005737118.
집단 지성은 사람들을 모아서 브레인스토밍을 한다고 생겨나지 않는다. 그럴 바에야 각자에게 주제를 주고 언제까지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수 있다. 집단 지성에는 전문가들이 모여 협업 프로세스를 자발적으로 구성하는 사전 단계가 반드시 필요하다. 협업 프로세스에는 앞서 언급한 사회적 태만, 평가 불안, 사회 부합 효과, 집단 생산성 착각 등을 경계하고 이를 보완하는 절차를 구성해야 한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적합한 프로세스를 통해 논의할 때, 아이디어의 양과 질은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