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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우 Jan 20. 2021

좁은 세상에 사는 운 좋은 사람들

좋은 관계를 만드는 심리학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The Six Degrees of Kevin Bacon)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단 6단계만 거치면 대부분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한마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생각보다 작은 세상(small world)임을 보여주는 사회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가끔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서로 지인이 일치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이때,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참 좁네요”


실제 세계 인구는 점점 늘고 있지만 관계의 단계는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1994년 MTV의 유명한 토크쇼인 ‘존 스튜어트 쇼’에 3명의 대학생들은 배우 케빈 베이컨(Kevin Bacon)이 단 여섯 단계만 거치면 세상 모든 사람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편지를 보냅니다. 이에 흥미를 느낀 방송사는 이 대학생들을 케빈 베이컨과 함께 쇼에 출연시켰습니다. 청중들은 자신이 아는 배우를 말했고 이 대학생들은 단 몇 단계 안에 그 배우가 케빈 베이컨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후 미국에서는 케빈 베이컨과 자신을 최소 단계로 입증하는 게임이 대유행을 했고 급기야 코넬대 연구진들은 1998년 세계적인 과학 저널인 네이처(Nature)에 헐리우드의 모든 배우는 케빈 베이컨과 평균 3.65단계에서 연결된다는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페이스북은 자사의 네트워크를 분석한 결과 당시 전세계 16억명의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3.57 단계를 거치면 모두 연결된다는 결과를 발표하여 다시 한 번 좁은 세상을 증명했습니다.


실제로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좁은 세상이 여러분의 행복이나 행운을 좌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장을 선택하는 장면에서도 여러분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좁은 세상은 우리의 예상보다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세상 참 좁네요



1960년대 미국의 한 신문에 좁은 세상을 의미하는 현상에 관한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 조사에 응했던 사람들 중의 대략 70%는 우연히 지인이 겹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고 했고 약 20%의 사람들은 자주 지인이 겹치는 사람들을 만난다고 했습니다.


이 현상에 흥미를 가지고 실제 좁은 세상을 증명하고 싶어했던 심리학자가 바로 하버드 대학교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입니다. 심리학 연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흰색 가운을 입은 권위자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전기충격을 치명적인 수준까지 가했던 사람들에 관한 실험을 한번쯤 들어보셨을텐데요, 그 유명한 복종 실험을 실행한 통찰력 있는 학자가 바로 이 밀그램입니다.


1967년 밀그램은 자신의 실험에 참가한198명의 네브라스카 주민에게 편지 한 통씩을 보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직장은 보스턴에 있고, 집은 매사추세츠주 샤론에 있는 증권중개인(목표 인물)에게 편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직접 우편으로 부쳐서는 안되고 자신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 목표 인물과 친분이 있을 만한 사람에게 부탁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다시 같은 방식으로 그 편지를 부쳐야 했습니다.


그리고 몇 단계 안에 목표 인물까지 편지가 도착했는지를 조사했는데 당시 대략 2억 명이라는 미국 인구를 감안했을 때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최대 6단계 내에 모든 편지가 전달된 것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케빈 베이컨 게임을 고안한 대학생들은 사실 밀그램의 실험 결과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케빈 베이컨과 세상 모든 사람들은 여섯 단계로 연결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해 쇼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후 이들은 ‘케빈 베이컨의 6단계(Six degrees of Kevin Bacon)’라는 책을 발간했고 곧바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심리학 실험 하나만 알아도 부와 명성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밀그램의 실험 결과는 우리 사회가 예상보다 좁고 긴밀한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음을 의미했고, 이후 사회 네트워크(Social Network) 이론으로 발전해 입소문이나 루머, 유행, 가짜 뉴스 등이 어떻게 순식간에 퍼지는지 설명하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인맥이나 관계로 표현되는 네트워크는 단순히 정보 전달의 경로를 넘어서는 효과를 발현하기도 합니다.


상식적으로 비만은 전염성 질환이 될 수 없지만, 사회 네트워크 관점에서 보면 전염성이 매우 강합니다. 만약 당신의 친한 친구가 비만이라면 앞으로 2~4년 내에 당신의 체중이 늘어날 가능성은 45% 높아집니다. 친구의 친구가 비만이라면 20%,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비만이라면 10%가량 살이 찔 확률이 높아집니다.


관계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서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고기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과 친하다면 자주 고기를 먹게 될 것이고 가족 중에 야식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면서도 함께 먹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관계에 의해 식습관과 건강 행동이 영향을 받게 되고 그 결과 비만도 전염처럼 확산될 수 있습니다.


흡연의 경우는 비만보다 더 심각합니다. 당신의 친한 친구가 흡연자라면 당신이 흡연자일 가능성은 61% 높고, 당신의 친구의 친구가 흡연하는 경우는 29%, 친구의 친구의 친구가 흡연자인 경우에는 11% 더 높습니다.


네트워크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경로가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기준점으로 예상보다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처럼 3단계의 관계에서 영향은 밝혀냈지만 4단계 이상에서는 유의미한 결과를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IT, 교통, 사회적 발달로 이 단계가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데 있기 때문에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주는 영향력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좁은 세상에 사는 운 좋은 사람들의 비밀



수년 전 영국 BBC 방송국에서는 행운에 관한 비밀을 밝혀낸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 중 한 장면은 불운아에 속하는 사람들과 행운아에 속하는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관한 실험이었습니다. 


스스로 운이 없다고 말하는 브렌다와 행운아로 생각하는 마틴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 같은 커피숍에서 방송사 관계자와 미팅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송사는 2가지 우연한 행운의 기회를 미팅하기 전에 설계해 두었습니다.


하나는 커피숍 입구에 5파운드 지폐를 놓아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약속된 테이블 옆에 유능한 사업가를 앉혀 놓고 방송사 관계자는 일부러 미팅 시간에 늦게 도착해 실험 참가자가 이 사업가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었습니다.


관찰 결과, 행운아라고 생각했던 마틴은 지폐를 발견했고 옆 자리의 유능한 사업가에게 공짜로 얻은 지폐로 자신이 커피를 사겠다고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반면에, 브렌다는 지폐를 지나쳐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으며 유능한 사업가 옆에 앉았으나 사업가가 건넨 인사에도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실험이 끝나고 실험자는 마틴과 브렌드에게 오늘 특별히 운 좋은 일이 있었냐고 물었습니다. 브렌다는 그럴만한 일이 전혀 없었다고 답했고 마틴은 오늘 정말 행운이 겹쳤다며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습니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상황과 기회는 똑같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평소 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강박적이지 않고 생활태도가 느긋하기 때문에 시야가 넓고 주변 곳곳의 뜻밖의 기회를 잘 알아차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우연한 관계적 기회를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 사회학과 마크 그래노베터(Mark Granovetter) 교수는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이라는 논문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행운이 평소 잘 아는 강한 관계에서가 아닌 약한 관계에서 나올 수 있다는 점을 증명했습니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친한 친구, 가족, 친척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의외로 이러한 관계에서 도움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고, 오히려 평소 연락도 잘하지 않았던 약한 관계에서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에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다는 것은 삶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노베터 교수는 직장인들에게 지금 일자리를 소개한 사람이 누구인지와 그 사람과 얼마나 자주 연락했는지를 조사했습니다. 1주일에 2번 이상 만난 친한 사이가 17%, 1년에 한 번 이상 만난 사이가 5%였던 반면, 1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한 사이가 무려 27%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또 다른 연구에서 사람들은 사실상 휴면상태의 관계에서 얻은 조언이 현재 친한 인맥에서 얻은 조언보다 가치가 높았고 통찰력을 줄 확률이 더 높았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디어나 도움이 절실할 때 약한 관계의 힘은 우리의 예상보다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2003년 영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와이즈먼(Richard Wiseman)과 에마 그리닝(Emma Greening)은 앞서 소개해드린 밀그램의 실험을 재현해보기로 했습니다.


영국 첼튼엄에 사는 27세 공연 기획자인 캐티 스미스를 목표 인물로 골라 전국적으로 100명의 실험 자원자에게 소포를 전달해 달라고 했습니다. 결과는 62개의 소포가 최대 4단계 안에 목표 인물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밀그램 때보다 더 좁아진 세상이 입증된 것이죠. 그런데 실험자들은 좁아진 세상 외에 하나를 더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실험에 자원한 100명에게 자신이 평소에 스스로를 얼마나 행운아라고 생각하는지를 응답하도록 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참가자 100명 중 38명은 처음부터 소포를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았는데, 이 38명 중 대다수가 바로 스스로의 운이 나쁘다고 평가했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자발적으로 실험에 참여했으면서 왜 보내지 않았는지 확인해보니 이들은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소포를 부탁하기 어려웠다는 답을 했습니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더 좁은 세상에 살면서 넓은 시야로 약한 연결의 소중함을 즐기고 있었던 반면에, 운이 나쁘다고 말한 사람들은 더 넓은 세상에서 좁은 시야로 기존 관계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일상에서 행운아가 되려면




먼저 느긋한 태도로 날마다 찾아오는 기회를 포착해야 합니다. 아이처럼 편견 없이 세상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인맥을 포함한 관계를 자신의 업무나 사적인 목표에 부합하는 사람들로만 축소할 것이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실제 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다수는 느긋한 생활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이나 명상, 운동 등 자신만의 긴장완화요법을 활용해 스트레스를 꾸준히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경험이나 학습에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늘상 마음 속으로는 해보고 싶었는데 시도하지 못한 활동이 있다면 실행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새로운 외국어를 배운다거나 대학원에 등록하는 등의 무리한 시도보다는 새로운 음식이나 식당을 경험하는 등의 단순한 행동부터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느슨한 관계에 있던 사람들과 안부를 전하며 서로 근황을 묻고 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때, 미소와 개방형 태도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운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미소가 생활화되어 있었으며 대화를 하면서 다리를 꼬거나 팔짱을 끼는 폐쇄적인 태도를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상대를 비판하거나 충고하는 식의 대화보다는 자연스럽게 호감을 끌어내는 태도를 유지하면서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지금 나의 생각과 행동은 자신만의 판단에만 근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명시적으로 때로는 암묵적으로 관계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좁은 세상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지혜는 1단계에 속하지만 약한 관계를 더욱 소중히 대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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