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 없어도 잘 굴러가잖아’가 조직을 망칠 수 있다.

by 박진우

‘나 없어도 잘 굴러가잖아’, '나 하나 없어도 회사 잘 굴러간다', 조직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G5UJ87TbMAANMcD.jpg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사람이 떠나도 아무 일 없다는 구조에서는,
누구도 서로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연구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됐다.


왜 어떤 팀에서는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할 때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돕고, 또 다른 팀에서는 각자 생존에만 집중하며 협력이 사라질까? 그리고 이런 차이는 사람의 성품 때문일까, 아니면 구조의 문제일까?




한 제조기업의 생산혁신 TFT 사례를 떠올려보자. 설비 엔지니어 김대리는 가족의 응급 상황으로 일주일간 자리를 비워야 했다. 신규 설비 테스트가 막바지였고, 일정 지연은 회사 전체의 손실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누구도 여유가 없었고, 팀장은 해법을 찾지 못했다. 그때 품질 담당 박과장이 나섰다. 그는 업무 연결성이 거의 없는 파트였고, 이 행동에 대해 어떤 보상도, 인정도, 심지어 팀 내부 공유조차 없었다. 자발적이고 익명에 가까운 도움, 그야말로 ‘보이지 않는 손길’이었다.


어떻게 이런 행동이 가능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Aleta Pleasant와 Pat Barclay는 2025년,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Mutual Cooperation Gives You a Stake in Your Partner’s Welfare, Especially if They Are Irreplaceable”라는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반복된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진행했다. 게임을 여러 라운드 진행하며 협력 또는 배신 여부를 선택하게 했고, 반복 경험을 통해 관계 감각을 형성하도록 설계했다. 그런 다음 참가자들에게 파트너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익명으로 제공했다.


도움의 형태는 두 가지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 첫 번째는 ‘조건 유지 도움(Condition-help)’으로, 도움을 준 사람은 일정 비용을 지불하지만 그 대가로 파트너는 다음 라운드에 다시 참여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 두 번째는 ‘수익 증가 도움(Payoff-help)’으로, 비용을 지불하면 파트너의 점수가 증가하지만 다음 라운드 참여 여부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즉, 협력 관계 유지에는 무관한 단기적 이익만을 제공한다.


그리고, 세 번째 실험에서는 파트너의 대체 가능성(replaceability)을 조작하여 조건을 달리했다. 어떤 상황에서는 파트너를 쉽게 다른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게 만들었고, 다른 조건에서는 현재 파트너가 유일하며 대체 불가능하도록 설정했다.


연구 결과는 명확했다.

참가자들은 협력적 경험이 있었던 파트너에게 압도적으로 Condition-help를 선택했다. 단순히 점수를 올려주는 Payoff-help는 거의 선택되지 않았다. 이 선택은 익명으로 이루어졌으며, 보상을 기대할 수 없었고,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나타났다. 더 중요한 것은 ‘대체 불가능성’이 이 선택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20251208_201935.png

출처: Pleasant, A., & Barclay, P. (2025). Mutual cooperation gives you a stake in your partner’s welfare, especially if they are irreplaceabl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Interdependence Condition, 즉 파트너가 절대 대체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도움 행동(Condition-help)이 다른 어떤 조건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했다. 구체적으로, “좋은 대체 인력이 준비된 상황(Good Replacement)”과 비교했을 때 도움 행동은 35배(OR=35.01) 더 많았다. “협력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관계(Asocial Condition)”와 비교하면 무려 66배(OR=66.06) 많이 나타났다.


흥미로운 점은 대체 인력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Bad Replacement vs. Good Replacement 조건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즉, 대체할 사람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상대에 대한 이해관계(stake)가 사라지고, 도울 이유도 사라진다.


즉, 문제는 파트너가 좋은가 나쁜가가 아니라, 대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이다.

이 결과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남긴다. 조직에서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돕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사라지면 나에게 손해이기 때문에’ 돕는다. 협력은 감정이나 도덕의 결과가 아니라, 구조적 상호의존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다. 상대가 내 미래 성공의 조건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익명 상황에서도 비용을 지불하고 상대를 보호한다. 도움 행동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미래 협력을 위한 투자다.


따라서 이 행동은 조직시민행동(OCB)과 다르다. OCB는 규범, 도덕성, 이미지 관리, 평판 고려, 인정 욕구 등 사회적 기대를 동기로 한다. 대상도 조직 전체 또는 불특정 다수다. 그러나 Condition-help는 특정 파트너에게만 나타나며, 동기는 착함이 아니라 이해관계 투자다. 이 행동은 친절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발생한 것이다. 즉 OCB가 착한 구성원의 행동이라면, Condition-help는 관계 유지 전략으로서의 행동이다.


강한 협력이 일어나는 조직은 조직문화, 슬로건, 교육이 아니라
구조를 바꾼 조직이다.


협력이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인 구조, 즉 상호 의존성이 설계된 구조를 가진 조직이다. 구성원이 스스로를 대체 가능한 부품으로 느끼면 조직은 최소한의 수행만 얻게 된다. 반대로 구성원이 스스로를 없으면 조직이 무너지는 존재로 느끼면, 협력은 수직적 지시나 공식 보상 없이도 깊어진다. 진짜 강한 팀은 감정적으로 친한 팀이 아니라, 서로의 성과가 연결된 팀이다.


당신의 조직에서 당신은 교체 가능한 번호표인가, 아니면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인가?


협력의 깊이도, 신뢰의 강도도, 조직의 생명력도 그 답에서 시작된다. ‘나 없어도 잘 굴러가잖아’가 조직을 망칠 수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조직 내 나르시시스트를 대하는 현실적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