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살인은 괜찮고, 안전벨트 미착용은 불편하다?

by 박진우

지난 주 매불쇼 시네마 지옥에서 흥미로운 질문이 나왔다.


똑같은 영화 속 장면인데,
왜 사람들은 살인은 아무런 문제 없이 받아들이면서,
안전벨트를 안 매는 장면에는 불편해할까?


표면적으로는 둘 다 허구다. 둘 다 스토리 속에서만 벌어지는 사건이다. 그런데도 관객의 도덕적 기준은 다르다.


이 질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도덕 판단을 행위의 절대적 심각성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신 사람들은 그 행동이 현실에서 얼마나 재현 가능한가를 기준으로 도덕적 기준을 적용한다.


살인은 안전벨트 미착용에 비해 훨씬 심각하지만, 현실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는 극단적 사건이다. 반면, 안전벨트 미착용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 행동이다.


살인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과 무관한 이야기적 사건이다. 우리는 영화 속 살인을 서사의 필수 기능으로 받아들인다. 피해자는 내 주변에 존재하지 않고, 그 결과도 스크린에 갇혀 있다. 즉, 살인은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순간 현실성과 규범성이 완전히 제거된 사건이 된다.


하지만 안전벨트는 다르다. 관객은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자동적으로 현실을 떠올린다. 현실 속 감각 기억들이 소환되면서, 그 장면은 ‘영화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선택’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같은 허구임에도 살인은 심리적 거리가 멀어 규범이 사라지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 거리가 0에 가까워 현실 규범이 그대로 적용된다. 사람들은 도덕적 판단 장면에서 행동의 심각성보다 그 행동이 나에게 얼마나 가까운가에 의해 결정한다.




그렇다면 이 차이를 만드는 심리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1) 심리적 거리(Psychological Distance)


사회심리학자 Trope & Liberman의 Construal Level Theory는 사람들이 심리적 거리가 먼 사건은 추상적으로,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건은 구체적으로 처리한다고 설명한다. 영화 속 살인은 현실성이 거의 0에 가깝다.

관객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인식하기 때문에 살인은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이야기로 변한다.

반면 안전벨트는 다르다. 그 장면이 등장하는 순간 관객의 뇌는 현실 기억을 재생한다. 안전벨트는 허구가 아니라 내가 매일 마주하는 실제 위험이다. 심리적 거리가 줄어들면 규범은 즉각 강화된다.


2) 예방 가능성(Preventability)에 대한 분노 반응


행동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예방할 수 있었던 위험에 가장 강한 비난을 가한다. 영화 속 살인은 맥락적 해석이 필요하지만, 안전벨트는 단 1초의 설명도 필요 없다. '저건 1초면 예방할 수 있는 위험이다.'라고 여길 뿐이다. 예방 가능성은 도덕적 분노를 촉발하는 가장 강력한 조건이다. 그래서 허구 속에서도 '저건 하면 안 된다'라는 현실 규범이 그대로 소환된다.


3) 실제 피해의 생생함(Perceived Vividness)


Slovic의 Risk Perception 연구는 사람들이 위험을 확률이 아니라 머릿속 이미지의 선명도(vividness)로 판단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살인은 영화적 장면, 스토리의 일부지만, 안전벨트 미착용으로 인한 실제 사고 장면은 즉시 떠오른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살인은 허구의 세계로 격리되지만, 안전벨트는 허구 속에서도 현실로 침투한다. 그래서 똑같은 영화 속 장면이더라도 살인은 규범이 제거되고, 안전벨트는 규범이 활성화된다. 살인은 스토리고, 안전벨트는 현실의 선택이다. 스토리는 한발짝 떨어져 감상하지만, 선택은 잘잘못을 평가한다.


조직도 유사한 패턴이 나올 때가 있다.


사람들은 심리적 거리가 먼 예측 불가능한 극적인 위기보다 심리적 거리가 먼 예방 가능했던 사소한 위험에 더 민감하다. 리더라면 이 심리적 메커니즘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사람들이 규범을 적용할 때는 사건의 심각성이나 크기가 아니라 심리적 거리가 가까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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