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초가 되면 오타니의 만다라트가 여기저기서 소환된다. 오타니의 아름다운 성공 서사는 그가 고교시절에 적은 만다라트에서 비롯됐다는 스토리다.
오타니는 고교 시절 목표를 적었고, 그 목표를 결국 이뤘다.
이 서사는 매력적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위험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다라트를 써도 성과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목표 설정이 중요한 것은 맞다.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목표는 평균적으로 성과를 높인다. 하지만, 이 효과에는 전제가 있다. 그 목표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수십 년간의 자기조절 연구는 놀라울만큼 일관된 결론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목표를 세운 뒤, 언제 시작할지 망설이고, 예상하지 못한 방해 요인에 흔들리며, 피로하거나 감정적으로 소진된 상태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 실패를 다시 의지의 문제로 해석하며 포기한다. 이 과정은 반복적이고, 구조적이며, 개인의 목표나 결심과는 무관하다.
문제는 만다라트가 이 중요한 지점에서 하는 역할이 없다는 사실이다. 만다라트는 계획을 잘 세운 느낌은 주지만, 실천 실패를 막아주지는 못한다.
답은 만다라트에 있지 않다. 오타니가 이미 그 도구를 ‘쓸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만다라트가 작동하려면 몇 가지 선행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높은 자기조절 능력이다.
목표를 적는 것과 목표를 실천하는 것은 전혀 다른 과제다. 오타니는 고교 시절부터 훈련, 수면, 생활 리듬을 외부 통제 없이 유지할 수 있는 자기조절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자기조절 연구들이 보여주듯, 이 능력은 목표 설정의 효과를 결정짓는 핵심 조절 변수다.
둘째, 낮은 정서 변동성과 높은 자기효능감이다.
만다라트의 구조적 문제다. 만다라트는 목표가 서로 연동되어 있다. 그래서 실패 시, 신경증성이 높거나 자기효능감이 낮은 사람에게 만다라트는 동기 강화가 아니라 자기비난을 촉발한다. 반면, 실패를 정보로 처리할 수 있는 정서적 안정성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경우, 만다라트는 피드백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셋째, 행동 중심의 사고 습관이다.
그의 만다라트는 추상적 덕목이 아니라 훈련, 루틴, 빈도처럼 행동 단위로 채워져 있었다. 이는 목표가 아니라 이미 형성된 실행 스키마를 정리한 것에 가깝다. 즉, 만다라트가 행동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행동이 먼저 있었고 만다라트는 그것을 구조화했을 뿐이다.
결국 오타니에게 만다라트는 성과를 만들어낸 원인이 아니라,
이미 작동 중이던 자기조절 시스템을 가시화한 도구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효과가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도구를 모방하지만, 그 도구가 전제하는 심리적 조건까지 함께 갖추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성과를 예측하는 연구들은 공통된 방향을 가리킨다. 잘 되는 사람들은 목표를 더 잘 세우지 않는다. 대신 실패하지 않도록 설계한다.
1. 실행 의도(Implementation Intention): 실행을 자동화하는 설계
Gollwitzer와 Sheeran(2006)의 메타분석에 따르면, “만약 X 상황이면, 나는 Y 행동을 한다”라는 실행 의도는 목표 달성 효과크기 d ≈ .65를 보인다. 이 수치를 야구로 치면, 타율 .230 안팎의 타자가 .280~.300 타자로 올라가는 정도에 가깝다. 이는 평범한 타자와 팀의 중심 타선의 차이다.
핵심은 '무엇을 해야지'가 아니라 '그 상황이 오면 자동으로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실행 의도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기법은 사람을 더 의욕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대신 의사결정이 필요한 순간 자체를 줄인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지’라고 매번 결심하게 만드는 대신, 특정 상황이 오면 행동이 자동으로 시작되도록 상황 단서와 행동을 미리 연결해 둔다. 그래서 실행 의도는 동기 전략이 아니라, 자동화 전략에 가깝다.
오타니의 만다라트 하위 항목들을 보면, 상당수가 사실상 이런 구조를 띤다. 오타니는 목표를 구체화했다기보다는 어떤 상황이 오면 어떤 행동을 할지 이미 정해둔 사람에 가깝다.
2. 프리모텀(Pre-mortem): 실패를 먼저 떠올리는 설계
실행 의도가 행동의 시작을 자동화한다면, 프리모텀은 실패를 자동으로 떠올리는 기법이다.
Gary Klein이 제안한 프리모텀 기법은 간단하다.
“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왜일까?”
Gary Klein(2007)에 따르면, 이 질문만으로도 사람들은 계획 단계에서 놓치기 쉬운 위험 요인을 30~40% 더 많이 식별한다. 프리모텀의 효과는 비관주의가 아니라, 성공을 전제로 생기는 낙관 편향을 줄이는 데서 나온다.
만다라트가 성공 경로를 정리하는 도구라면, 프리모텀은 그 경로가 무너질 지점을 미리 표시하는 도구다. 그래서 프리모텀은 동기 전략이 아니라, 실패 확률을 관리하는 설계에 가깝다.
오타니의 사례에서도 핵심은 같다. 그의 계획에는 다짐보다, 컨디션 저하나 루틴 붕괴처럼 성과를 무너뜨릴 수 있는 변수를 관리하려는 의도가 들어 있다.
대부분의 성과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실패를 미리 대비하는 구조의 문제다.
3. 비목표(Anti-goal): 하지 않기로 한 것의 힘
자기조절 연구들이 반복해서 보여주는 사실은 단순하다. 사람들은 새로운 행동을 못 해서 실패하기보다, 늘 하던 잘못된 선택을 반복해서 실패한다.
그래서 고성과자들은 목표 리스트보다 ‘하지 않기로 한 것’을 더 명확히 관리한다. 피로한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지 않거나, 마감 직전에 새 아이디어를 추가하지 않기, 즉각적 회신 요구에 바로 응답 금지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회피 기준은 행동 변동성을 줄이고, 성과의 안정성을 높인다.
4. 제약 설계(Constraint-based Design): 싸울 필요 없는 환경
실행 의도, 프리모텀, 비목표가 개인의 판단과 선택을 다룬다면, 제약 설계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판단 자체가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드는 전략이다.
Duckworth와 Hofmann의 연구들은 자기조절 성공을 설명하는 핵심 변수가 의지의 강도가 아니라 유혹에 얼마나 자주 노출되는가임을 보여준다. 자기조절에 강한 사람들은 충동을 더 잘 참는 사람들이 아니라, 애초에 충동을 자주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에 가깝다. 제약 설계의 핵심은 의지를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쓸 필요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다.
오타니의 루틴 역시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그의 일상은 훈련 외 다른 선택을 허용하지 않도록 설계돼 있었다.
정리하면 실행 의도는 행동을 자동으로 시작하게 만들고, 프리모텀은 실패를 미리 감지해 대비하도록 하며, 비목표는 반복되는 실수를 줄이고, 제약 설계는 아예 싸울 필요 없는 환경을 만든다.
연초의 목표를 말할 때 가장 흔한 오해는 이것이다. 목표가 있어야만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다.
행동이 언제 자동으로 시작되는지, 어디서 반복해서 무너지는지, 어떤 제약이 있어야 덜 흔들리는지는 우리는 대부분 과거의 행동과 실패 패턴만으로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수준의 구조 설계에는 목표가 꼭 필요하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목표 없이 결정할 수 없는 것도 분명히 있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새롭게 시작할 때다. 자동화된 행동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무엇을 실패로 볼 것인지, 제약이 무엇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지는 목표 없이 정의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생각보다 그렇게 새롭지 않다. 그래서 목표의 역할도 달라져야 한다. 목표는 행동을 만드는 출발점이 아니라, 이미 설계된 구조의 방향과 조정 기준이 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따라서, 연초의 목표는 이렇게 써야 한다. '올해는 무엇을 이루겠다'가 아니라, '이 구조가 유지된다면, 나는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다.
연초의 목표는 새로운 다짐이 아니라 기존 목표와 행위에 대한 조정점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