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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by 박진우

왜 열정을 요구하는 조직일수록 성과와 지속가능성이 무너질까?


열정적인 사람이 조직을 가장 먼저 떠난다.


많은 조직에서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채용 과정에서 “열정적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 1~2년 내 가장 먼저 지친다.

반대로 처음엔 조용하고 신중해 보였던 사람이 더 오래 버티며 성과를 낸다.

이때, 조직은 이렇게 해석한다.

“초반 열정은 있었는데, 끈기가 부족했다.”

하지만, 조직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는 완전히 잘못된 진단이다.

문제는 개인의 열정이 아니라, 열정이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이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정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왜 열정은 원인처럼 보일까?


열정은 관찰 가능하다. 표정, 말투, 에너지, 헌신적인 행동은 눈에 잘 띈다.

반면 열정을 만들어내는 조건인 통제감, 피드백, 보상 구조, 역할 명확성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조직은 결과를 원인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이는 후행 신호를 선행 원인으로 오해한 전형적인 인지 오류다.


열정은 성과의 선행 변수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열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직 및 동기 연구들은 일관된 메시지를 보여준다.

열정을 찾는 것보다 바람직한 것은 열정을 발휘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1) 자기결정성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Deci & Ryan의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인 몰입과 동기는 세 가지 조건에서 발생한다.

- 자율성(autonomy):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 유능감(competence): 잘하고 있다는 근거

- 관계성(relatedness): 의미 있는 연결감

이 조건들이 충족될 때,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에너지를 투입한다.

즉, 열정은 이 조건들의 결과다.


2) 열정의 이중 구조: 조화적 vs 강박적 열정

Vallerand의 연구는 열정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 조화적 열정(Harmonious passion): 삶과 균형을 이루며 지속 가능한 몰입을 가능하게 만든다.

- 강박적 열정(Obsessive passion): 과몰입과 연결되며, 통제력을 상실하고, 번아웃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런데, 강박적 열정은 단기 성과를 낼 수는 있지만, 이직, 소진, 성과 변동성을 크게 높인다.


3) 열정과 성과의 관계는 비선형이다.

열정과 성과와의 관계를 밝혀낸 메타연구들은 열정이 일정 수준까지는 성과와 연결되지만,

그 이후에는 효과가 둔화되거나 오히려 역전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즉, 열정이 부족해도 문제지만, 열정이 과도해도 문제다.


무엇보다 조직에서 '열정'이라는 말이 등장하는 순간을 유심히 보면,

대개 보상이 불분명하고, 역할 경계가 모호하거나,

추가 업무를 요청할 일이 있거나, 장기적인 성장 경로를 제시하지 못할 때다.

이때 열정은 보상의 대체물, 설명의 대체물, 책임의 대체물로 사용된다.






그래서, 열정을 요구하지 말고, 조건을 설계하라.


조직이 성과와 몰입을 원한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왜 요즘 열정이 떨어졌을까?”가 아니라,

“열정이 생길 조건이 지금 존재하는가?”다.


구체적으로 점검해야 할 것은 다음이다.

- 이 일의 의사결정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성장과 학습의 경로는 실제로 보이는가

- 성과 기준은 명확한가, 아니면 감정적으로 평가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열정을 요구하는 것은 동기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소진을 앞당기는 일이다.


열정과 몰입은 개인 특성이 아니라 조직 시스템에 대한 반응이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열정은 소진된다.


열정은 원인이 아니다.

열정은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일 뿐이다.


열정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열정이 발생할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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