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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잉제이 Nov 23. 2019

돈 훔쳐가신 승객님을 찾습니다

그날 미국 비행에서 일어난 일

나는 승무원을 하면서 미국이 싫어졌다. 정확히 얘기하면 미국 '비행'이 싫어졌다.12시간의 비행은 몸을 지치게

끊임없는 승객들의 요구는 우리들의 멘탈을 붕괴시켰다. 콜벨 소리는 마치 하나의 비트마 비행 내내 귓가를 렸고, 들을 당나귀처럼 뛰게 만들었다.


시카고 피자랑 아울렛은 좋은데...


미국 비행 중에 승무원들이 가장 꺼려하는 비행은 단연

'시카고'였다. 확한 이유를 진단할 수는 없지만 여러 개의 미국 노선 중에 유독 '시카고'악명이 높았다. 누군가가 이번 달 시카고 비행이 세 개 나왔다고 고백(?)하면  다른 이들은 이런 식으로 반응했다.


-지난달에 인도 비행 콜식(call sick) 한 거 회사에서 이런 식으로 다시 되갚는 건가?
-너 혹시 블랙리스트에 이름 올라가 있는 거 아니지?
-폭탄을 제대로 맞았네. 불쌍해서 어쩌냐. 하나는 콜식 때려.

※ 콜씩(call sick):Crew Control에 나 아파서 비행 못해요라고 전화하는 행위 ※



시카고는 이 정도 평판의 비행이었다. 리들 사이에서는 거의 벌칙으로 여겨졌다.  비행에서는 신기하게도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났다. 크고 작은 승객의 컴플레인은 기본이었고,  응급 의료 상황은 덤이었다. 동료끼리의 말싸움 같은 일들이 뭐라도 하나 발생했다. 시카고 비행은 런 비행이었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 비행은 카고가 아니었다.





아부다비에서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생긴 일이다. 인도 할아버지 승객이 나를 다급하게 부른다. 그리고 상황을 설명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서 청바지 뒷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지갑을 빼놨다. 큰일 볼 때  불편하니까. 자리로 돌아와 한참 뒤에 지갑을 화장실에 두고 나왔다는 게 기억났다.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보았지만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지갑을 찾아달라. 지갑 안에 1200달러와 신분증, 운전 면허증, 신용카드도 여러 장 있다.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샅샅이 살펴보았으나 승객의 말대로 지갑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 승객에게 언제 화장실을 나왔냐, 세면대 위에 올려둔 것이 확실하냐고 물었다. 승객은  내가 늙었다고  기억력이 그  정도도 안될 것 같냐고 하면서 버럭 짜증을 냈다.



나는 장갑이 없어서 휴지통 안을 못 들여다봤어!
넌 장갑도 있고
승무원이니까 네가 한번 찾아봐줘.



그렇게 요구하는데, 휴지통은 님이 직접 뒤지세요 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보기보다 착한 나는 그 길로 라텍스 장갑을 찾으러 갤리(Galley: 주방)로 갔다. 무슨 일이냐며 묻던 동료는 내가 휴지통을 뒤지겠다고 말하자 미쳤냐면서 승객한테 장갑을 주고 직접 하라고 말하면 된다고 했다.




아니야. 그냥 내가 하게. 난 나이스 한 승무원이잖아.(찡긋)



그 동료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나를 불쌍히 쳐다보았다.

장갑과 비장함을 장착하고 화장실로 진입했다. 휴지통 뚜껑을 열고 오른손을 넣어서 뒤적이기 시작했다. 순간 수많은 휴지 덩이들 사이에서 딱딱한 질감의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지갑이었다.




화장실 문 앞에서 나를 지켜보던 그에게 지갑을 보이면서 이게 맞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제야  미소를 지으며 땡큐를 남발했다. 그리고서 지갑을 열어보는데... 그래 보는데... 그의 표정다시 암흑이 드리워졌다.



지갑 안이 텅 비었잖아!



전 아닙니다. 방금 지갑 찾아서 바로 드렸잖아요?




승객은 가 범인이 아닌 건 알고 있다면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난 뒤에 한 세명 정도가 더 들어갔을 거야. 그중에 하나가 얼굴은 기억 안 나지만 저쪽 즈음에 앉았어. 가서 한번 물어봐!



네에??
(제가 가서 뭐라고 물어봐야 할까요?)



혹시 이렇게?



승객님~혹시 지갑에서 돈 빼고 카드 챙기시고 지갑 휴지통에 버리신 승객님 맞으십니까?


or


승객님~ 실례가 안된다면 제가 몸수색을 해봐도 될까요?  승객님이 도둑 같아서요.(찡긋)


or


승객님 목격자가 있는데, 선처해 드릴 테니 훔쳐가신 것 돌려주시겠습니까?




할아버지 승객은 자꾸 내 등을 떠밀며 가보라고 부추긴다. 잠시 고민을 한 끝에 나는 일단 윗선에 알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결론 내렸다. 어딜 가냐며 나를 쫓아오는 그 승객을  어디 안 도망갑니다라고 안심시키고, 곧장 사무장을 찾아갔다. 부사무장은 당시 벙커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나니 사무장이 딱 한마디 한다.



할 수 없지 뭐


네에?



휴지통도 찾아봐주고, 노력을 한건 잘한 일이야. 근데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다른 승객들 불심검문을 할 거야 어쩔 거야. 이따가 내가 지상으로 전화해서 그 승객 도와주라고 말해둘게. 승객 좌석번호는 알려주고 가.
내가 한번 얼굴은 보고 얘기할게.



그 승객에게는 나의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고, 그 역시 나름의 노력을 해준 나에게 고마워했다. 그리고 이저런 이야기로 흘러가던 중... 그는 대뜸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내가 미국 시민권자야. 인도는 38년 전에 떠났지. 당시에 인도라는 나라랑 인도 사람들한테 아주 질렸었거든. 근데 인도는 아직도 하나도 안 변했어. 지겹다. 지겨워. 돈만 빼가지 남의 신분증이랑 운전면허증은 도대체 왜 훔쳐가는 거냐고!



할아버지는 범인을 인도 사람이라고 확신하시고는 모국에 대한 맹비난을 시작했다. 맞장구를 쳐줘야 하나 듣고만 있어야 하나 난감해하고 있던 사이 TOD(Top Of  Decent :착륙을 위한 하강을 시작하는 시점)를 알리는 기내방송이 나왔다. 나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며 할아버지에게 행운을 빌어주고 왔다.




모든 서비스가 끝나고 료들과 수다를 떨면서 아까의 '지갑 사건'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 태국 승무원이 그 이야기를 듣더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왜 기내방송을 하지 않았느냐고 따져 물었다. 무슨 기내방송? 그녀는 주먹을 입 근처에 갖다 대고 그것을  MIC삼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승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지금 기내에서 도난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화장실에서 지갑의 돈과 카드를 훔쳐가신 승객님께서는  속히 가까운 승무원에게 자수해주시기 바랍니다. 시카고 공항에 도착하면  대기 경찰들이 한분 한분 검문을 할 예정입니다. 돈을 훔쳐가신 승객께서는  미국 감옥에 구금될 수도 있음을 알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방송했으면 범인이 진즉 자수했을 거라고 덧붙였다. 아니야. 그러면 우리도 공갈죄로 잡혀갈 거라고 가볍게 받아쳤다. 비행이 끝날 때까지도 범인은 찾지 못했고, 그 승객은 지상직 직원의 도움으로 일단 분실물센터에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그날의 시카고 비행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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