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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 취하다 Apr 09. 2024

연저지인 ; 상대의 마음을 얻다

사자성어로 돌아본 직장 20년, 앞으로 20년

연저지인 (吮疽之仁)


남의 몸에 난 종기를 빨아주어 고쳐 주는 인자함
 ※ 장군이 부하를 극진히 사랑하여 덕을 얻음.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서 험하거나 추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정성. 부정적인 의미로도 많이 사용된다.


  연저지인.  입으로 병사의 종기 고름을 빨아 약을 발라주던 오기 장군 같은 팀장과 함께했던 때가 있었다. 20년 직장생활 동안 힘들게 했던 동료, 상사가 많았지만 좋은 분들도 함께 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민팀장님은 한 달째 야근을 하고 있다. 먼저 퇴근하는 것이 눈치가 보여 팀원들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팀장이 직접 문서 작성할게 뭐가 있다고?'

  최근 요청하는 자료도 많아져 살짝 짜증이 나기도 했다. 팀장님과의 보이지 않는 거리감과 불편함이 이어졌다. 한 달이 흘렀다. 내 자리로 팀장님이 오셨다.
 '뭐지? 또 일 시키려고 하나? 오늘 저녁 약속 있는데...'

  책상 위에 두툼한 보고서를 수줍게 올려놓으신다. 얼핏 보니  50~60 페이지 달하는 PPT 보고서다.
  "현 대리. 사인해."

  두둥!  『 OO 사업 종합 현황 보고 』

  결재 표지에는 담당 / 팀장 / 실장 / 본부장 / 사장님 5칸이 있다. 사업 개요, 사업이력, 고객사 현황, 사업장 현황, 중점과제, 조직도 등 한눈에 사업을 파악할 수 있는 보고서다.
  '아! 사장님 보고 자료로 매일 야근을 하셨구나. 한 달 동안 늦게 퇴근한 이유가...?'

 "아니, 제가 이걸 어떻게 사인해요? 팀장님이 다 만드신 건데..."

  나는 우물쭈물 당황한다.

  한 달 전 기억이 떠올랐다. 팀장님이 지나가며  가볍게 말했다
  "현 대리. 요즘 바빠?"

 이 숙제 때문에 물어보신 거였구나. 나의 업무가 얼마 중요한지, 많은지 어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쁜 척, 중요한 일이 많은 척했다.  부끄러움과 죄송한 마음이 몰려왔다.

  "현 대리가 준 자료도 포함되어 있어. 사인해"
  팀장님은 인자한 표정으로 볼펜을 건넨다. 서명을 했다. 이 보고서는 내가 주도적으로 작성한 보고서로 둔갑한다. 그렇게 팀장님은 한 달 동안 야근을 하며 손수 만든 사장님 보고서를 팀원인 나에게로 공을 돌려주셨다. 내가 한 일을 사수, 부서장, 팀장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있었다. 민팀장님 덕분에 그동안에 차곡히 쌓였던 피해의식을 지울 수 있었다. 동료와 협업, 성과를 나누는 미덕을 배웠다. 사랑을 받아본 자가 더 잘 사랑할 수 있다고 했던가? 연저지인을 실천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었다.  기획, 보고서 작성의 능력자로 인지도를 얻었다. 다음 해 진급도 걱정 없이 하였다.

  10년이 더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후 그분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더 굳건해졌다. 팀의 선임으로서 팀장님이 하기 어려운 아쉬운 소리를 대신 대변하였다. 지금은 함께 하고 있지 않지만 내 마음속 최고 팀장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분을 뛰어넘을 자신은 없다. 후배와 동료를 사랑하고 도움을 베풀기도 하지만, 나의 마음속엔 아직도 보상심리가 있다. 이만큼 해 주었으니 감사해하겠지? 나중에 도와주겠지라는.


[연저지인_직장인 해설]

  후배를 아끼는가?
  후배로부터 존경받고 싶은가?
  동료의 진심 어린 마음을 얻고 싶은가?

 일꾼으로 상대의 마음을 얻는 방법 두 가지.

  첫째, 늘 한결같음이다. 본인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하고,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늘 함께하는 것이다. 언제 가는 마음을 얻을 수 있으나 시간이 오래 걸린다.

  둘째, 상대를 위한 희생이다. 남이 꺼리는 일을 하거나 어려고 힘든 일을 기꺼이 주저 없이 도와주는 것이다. 남의 몸에 난 종기를 입으로 빠는 험한 일도 거리낌 없이 하는 것이다.

  연저지인. 후배에게 베풀면 후배의 존경을 얻을 수 있지만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무르익어야 돌아온다. 지금 당장의 보상을 원하다면 상사에게 연저지인을 하라. 바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동료, 후배들의 시기와 질투는 감내해야 한다.

 진정한 마음을 얻는 연저지인이냐?
 당장의 눈앞의 이익 연저지인이냐?

  일꾼의 선택이다. 누구를 향한 연저지인인가는 선택의 자유지만, 지속 가능한 일꾼을 위해 연저지인은 필수 아이템이다.

 연저지인을 료를 떠올리며
 앞으로 행할 연저지인을 그려본다.

일꾼으로서의 행복은 연저지인을 행하거나, 받았던 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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